그곳에 그리움이 있었다

그곳에 그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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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가 있는 산문집
산문에 시가 어우러져 두 배의 읽는 재미를 준다. 책에는 촌부(村婦)로서, 한 문중의 종부로서의 삶이 따듯하게 담겨있다. 지난하던 시절의 가족사와 집성촌에서의 이웃, 소소한 생에 대한 참견, 조상을 숭상하는 마음은 읽는 이를 경건하게 한다. 특히 장애를 타고난 손녀를 여덟 살까지 키우다 하늘로 보낸 후의 심정을 담은 글에서는 사랑과 뼈를 깎는 아픔이 녹아있다.
저자

허정분

저자:허정분

강원도홍천에서태어났다.

지은책으로는시집『바람이해독한세상의연대기』,『아기별과할미꽃』,『울음소리가희망이다』,『우리집마당은누가주인일까』,『벌열미사람들』이있으며,산문집『왜불러』,『그곳에그리움이있었다』등이있다.

목차


1부첫눈이내렸다
천사의나팔/청량산/첫눈이내렸다/개똥수박이라고불렀다/시래기를삶으며/내노래오페라곡/뱀,그리고천적/두릅나무를캐내다/눈내리는저녁/개꿈을꾸다/청국장/휘청거리는오후/검둥이

2부그소년이온다
샛강에서서/…라고만남아서/그소년이온다/선善,치사량의눈물/꽃으로도때리지말라/낯선죽음앞에서/양반장은이사회의엑스트라였다/어느무신론자의한때/각본에없었다/3번국도가환하다/반려동물이천오백만이라고…/내마지막희망목록/술에절다

3부이름이낯설다
어머니의요강/이름이낯설다/그리움이란짐승이동거한다/오빠의뻥튀기/나무꾼아버지/생의흔적,그대가혹은내가피운꽃/강원도의힘/술거르는아내/맨발의꿈/약혼사진/신神의이름으로

4부하룻밤꿈에라도
한시대에이별을하는/하룻밤꿈에라도/벌열미마을에산다/옛집을가다/음복술/사진만남기고간아기별아/울음소리가희망이다/느티나무뒤주/오랑캐꽃/너를두고왔다/마을에600년을사신어른이계시다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유명하다는교수가강단에서고지역인사들과강당을가득메운수강생들이교수님의강의에젖어드는시간,십여분을버티던내의식은가물가물무아경을향해눈을감는다.그런순간환호와박수소리에정신을차리고보면꼭…“라고…”하는인용사가귀청을울려댔다.무슨내용을들었는지기억에도안남는다.그럼에도남는“라고…”라는언어…,나보다나이어린교수님께는죄송하지만석달을한주일에두시간씩여러강사님께배운강의중에이‘라고’가가장인상적인언어였다.

“숨소리죽인아낙들의거룩한시선을받으며/유창한생의경전을읊는교수님말씀이/밤잠설친내귓전에는/졸음을부르는최면처럼달콤해/깜빡깜빡눈꺼풀이보초를서는초복날//하필이면교수님말씀중간중간/걸어나와한옥타브높인/…라고,/…라고,/인용어를강조하는소리만주워들은/知天命도로아미타불의공염불”(-시「…라고만남아서」중에서,시집『우리집마당은누가주인일까』(2005))
-p.71~72,2부‘…라고만남아서’중에서

“한마디말도없이별이된아가야,/한번이라도좋으니생시처럼만나/내손으로따듯한밥한그릇먹여봤으면/꿈자리마다보고싶은비몽사몽간에도/야속해라허무해라애만타는나날들/할미곁떠난지반년이지나도/지구별찾지못해못오시는가,/아픈몸더아파서못오시는가,/무연히눈뜨는아침마다/허망한애상에젖는할미마음”(-시「하룻밤꿈에라도」중에서,시집『아기별과할미꽃』(2019))

이별과의동행이사람사는길위의여정이다.요즘들어부쩍죽음에대한상념이깊어졌다.사상가도아니고염세주의자도아닌나에게과연예고없는죽음이왔을때어떤모습으로가야할지또는가게될지전혀모른다.
칠십을살면서보고겪은인간사의애환중에가장힘든일이가족과의이별이다.부모님도시부모님도모두돌아가신지오래다.하늘이주신천수를다누리신세분시부모님은임종도지켜보고산소에하관까지모든과정을지켜보았다.그러나친정부모님은두분모두돌아가신후뵈었다.그래서옛말에‘임종자식은따로있다’는말이생겼나보다.자식으로부모님을보내드리는마음은비통하고가슴아프지만하늘의뜻이려니하는마음이위안을준다.
그러나자식을가슴에묻는부모의심정은억장이무너진다고표현한다.내리사랑이란나보다어린사람에게보내는애정이며내가보듬고애지중지하는자식이나손자녀에게쓰는말이다.윗사랑이란없다.좋아하고존경과따름이혹은우러러봄이최상의대우다.내리사랑이꿈이었나,할미를버리고간천사아이는아니,그아이는전생수천억겁을건너우리가족으로온,찰나에불과한이승의여린꽃봉오리였다.여덟살어린아이가맞이한첫초등학교입학식은아이의선천적장애와또래와다름을공개하는자리였다.
입학식에동반한할미마음도이렇게불안한데장애를지닌어린손녀는또래의친구들을보면서불안을온힘으로버티고있었다.집과어린이집을제외한사회생활의시작이어린것에겐극심한두려움이었다.그나이에새로시작할세상의모든행위는어린가슴을압박하는또다른공포심이다.천재성을지닌아이의두뇌가,병원문턱을닳도록드나든아이가그두려움을극복하는것은있을수없는초인적용기였을터.아이는공포심을이기지못했다.
-p.181~183,‘하룻밤꿈에라도’중에서

지금도오래된종가나이름난고택의곳간에는뒤주라고불리는궤가유물처럼하나씩은보존되어있을것이다.농촌마을집안에쌀뒤주가있는집은부잣집이었다.농사를지어두어가마쯤들어가는뒤주에쟁여놓은흰쌀,부잣집아낙들은한해의양식을뒤주와독에보관하고곳간열쇠를간수하는걸잊지않았다.그뒤주를대물림할때는집안에새며느리가들어오고시어머니의믿음이며느리에게전해져야곳간의열쇠를넘겨주는고부간신뢰의상징이었다.
우리마을에도시가스가설치되기몇년전석유파동이심해지자정부에서목재를때는보일러로설치하면혜택을주던시절이있었다.석유난방비에겨울에는찬바람이불던우리집이정부에서권장한나무보일러를놓고나서땔감을얻는과정에서시한편을건졌다.
문명의발달이농촌지역까지혜택을베풀면서우리집도난방과취사를모두도시가스로해결하고있다.그러나단하나뿐인지구별이자꾸신음하고지구별에뿌리를둔생들이아프다.문명과문화라는미명으로자연을파괴하고즐기는대가가코로나역병이창궐하는지구촌의비극으로되돌려받는현실이다.작금이기도하다.

“어른들손때가묻어/차마버릴수가없었다던쌀뒤주를/육촌형님이우리집아궁이땔감용으로주셨다//뿌옇게먼지쓴하세월의부질없음이/겹겹이쌓인몸피쌀두가마쯤은/너끈히품었을텅빈뒤주안/얼룩진창호벽을노린재두마리유영중이다//시숙님어릴때솜씨좋은할아버지가/아름드리느티나무베어다직접짜셨다는뒤주/한가족의호구지책에기꺼이몸바친나이테가/한줌다비식으로열반에들운명이다//오래전두랭이댁으로불린/퇴락한양반가문대청마루에서/달그락자물쇠열리면/아이들이뼈를세우던전성기/배부른노래에신주처럼위하던대접도있었지만//꼭닫힌수십년의적막강산,침묵으로깔려있어/한겹바람조차통과를거부하는밀봉의사연들을/뒤주에갇힌사도세자불멸의궤적으로읽고있다”(-시「느티나무뒤주」,시집『울음소리가희망이다』(2005))

육촌형님이주신땔감이놀랍게도우리집안의종가인두랭이댁큰댁에서온뒤주였다.내아이들의고조할아버지가느티나무를베어다짜셨다는뒤주,차마어른들생각에버릴수가없었다는뒤주가땔감으로사라지는시대에온갖감회가새로웠다.나도차마어른들손때가묻은뒤주를부수어땔감으로사용할수는없어서광주문화원에기증하고나서시원섭섭하다는말로위안을삼았다.‘통덕랑공’문중의큰집안인큰댁은형님과장조카가별세하신후외로운고택으로변신했다.마을에서도통덕랑공문중하면가장우애있고품위있는집안이었다고하시던시어머님도홀로되신황새울형님도고만고만한연세로황천길동무하시듯하늘길에오르셨다.어른들손때묻은뒤주한궤만문화원박물관에서빛보는날을기다리고있으리라.
-p.206~208,‘느티나무뒤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