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깊은골목에서카페를한다고요?”
폐가에서복합문화공간으로…
고목이품은재생과지역문화의기록
대구중구원도심의깊고좁은막다른골목,오랜시간방치된한옥한채가새로운문화공간으로재탄생해시민들의복합문화공간으로활용되고있다.오래된라일락나무가지키고있는복합문화공간,라일락뜨락1956이다.
『봄이오면꽃은다시핀다』는디자이너이자화가인저자가복합문화공간을꾸며운영하면서겪은이야기를엮었다.낡은공간은저자의손길을통해개인을넘어모두를위한공간으로재생된다.저자는모든문화는공동체를위한것이라는신념으로공간을운영한다.지역사회와함께성장해온다양한문화활동과실천사례,문화예술인들의야사,고증자료를찾아이일대가시인이상화의생가터임을증명한다.
문무학시인은“권도훈은장르의경계를넘어위대한예술과예술가들에게깊은오마주를바치는사람”이라며“말이아닌삶자체로예술의가치를보여주고있다”고평가했다.또이동훈시인은“세상의상처를안고오래된라일락나무아래찾아온권작가는이일대가이상정·이상화등4형제의생가터라는사실을알게됐다”며“추적과고증을통해이곳이독립운동과지역예술의중요한산실이었다는사실을밝혀가는과정은놀라울정도”라고말했다.
책은1부에서는공간매입과정부터8년간진행한다양한복합문화운동을,2부에서는이상화현진건이인성서동진등대구의근대인물에대해알려지지않은이야기를찾아들려준다.3부는서문로에서계산동일대가이상화시인의생가터임을확인하는과정과생가터임을알려주는자료를찾아밝힌다.저자가버려진공간을복합문화공간으로되살려운영하면서골목에새로운활력을불어넣는모습은공간의가치와지역문화의의미를다시생각하게한다.
책속에서
대구의달성은최근정밀발굴조사를통해흙과돌을정교하게섞어쌓은토석혼축의고대성곽임이세상에드러났다.5세기중엽,주변달서천의점토와해자를파내며나온돌을엮어축조된성벽은신라권역에서경주월성에비견될만큼막강했던고대대구세력의위상을증언한다고한다.
1,500여년의깊은역사를지닌이달성공원한편에이상화시비가자리하고있다.1948년3월14일죽순문학회와수필가김소운의주도로건립된이비석은우리나라에최초로세워진시비라는상징성뒤로세대를뛰어넘은각별한만남을품고있다.비석의얼굴인전면의「나의침실로」시구절은당시열한살이었던상화의막내아들태희의글씨로새겨졌다.비석의격을완성하는상단의제호‘상화시비’는당대최고의서예가였던위창오세창이붓을들었고,뒷면에새겨진건립취지문은수필가김소운이짓고영남의서예대가죽농서동균이글씨를썼다.
그렇다면상화시비에는왜「빼앗긴들에도봄은오는가」가아닌「나의침실로」가새겨졌을까.
1948년잡지『무궁화』에실린이문기의회고에따르면,생전의상화는자신의대표작으로「나의침실로」가오르내리는것을불쾌하게여겼으며,오히려“「빼앗긴들에도봄은오는가」와「동경에서」를더아낀다.”라고밝혔다.
시비건립취지문을기초했던백기만역시상화의뜻을받들어“시비에마땅히「빼앗긴들에도봄은오는가」를새겨야한다.”고고집했다.하지만시비건립발기인대표였던김소운등에의해그의의견은끝내받아들여지지않았다.가장위대한저항시인이정작자신이가장아끼던시가아닌시로최초의시비에남겨지게된역사의아이러니다.
이곳달성토성의시비와더불어상화를기념하는대표적인공간이수성못의상화동산이다.많은이들이「빼앗긴들에도봄은오는가」의배경을수성못일대의상화동산이주는상징성때문에으레‘수성벌’로알고있다.
그시절수성벌역시청정한보리밭풍경이끝없이펼쳐진들녘이었고,시인도그곳을거닐며풍경을가슴에담았을것이다.하지만2017년지역연구자들이발굴한시인의아우이상백박사의칼럼「꿈같이희미한기억」(〈동아일보〉,1962.3.11.)은시의무대에대한보다명확하고실증적인근거를제시해준다.
“사중舍仲상화의‘빼앗긴들에도봄은오는가’라는시는아직앞산밑이일면청정한보리밭일때의실감實感이다.”
이기록에따르면식민지현실에답답함을느끼던둘째형상화는본가에서앞산까지종종산책을나섰다고한다.
대구시의부지연혁과향토사기록은이를뒷받침한다.현재캠프워커가자리한앞산아래보리밭일대는1921년일제가강제로징발해일본군경비행장과군사시설을조성한곳이다.농민들이대대로일구던농토가일제의군사기지로바뀐것이다.
생가대문을나서웃방망치길을지나계산성당과성모당을거쳐앞산자락으로향하던산책길.청년이상화가그길끝에서마주한것은바람에흔들리던보리밭대신군용기활주로가깔리고있는훼손의현장일수밖에없었다.고향의흙이군사기지로파헤쳐지는과정을눈앞에서목격한경험은1926년「빼앗긴들에도봄은오는가」의구체적인모티브가되었다.
물론당시전국토가‘빼앗긴들’이었지만,시속의‘빼앗긴들’은단순한관념적은유를넘어물리적으로징발당한고향의보리밭이라는명확한실체였다.시의발화점이어디였는지아는것은시인의숨결을온전히이해하는데중요한단서가된다.
1921년일제에징발되어일본군경비행장으로처음조성된이후미군기지‘캠프워커’가들어서며100년가까이일반인출입금지구역으로묶여있었다.굳게닫혀있던철조망은2020년12월에야걷혔다.헬기장(H-805)과동측활주로일부를포함한약2만평(66,884㎡)의부지가마침내반환된것이다.전체캠프워커터의10%에채못미치는규모다.
최근미군헬기장터로쓰이던2만8967㎡에‘대구대표도서관’이완공되어시민의품으로돌아왔다.100년전시인이빼앗겼다며탄식했던그들판의일부를오랜세월이지나서야돌려받아비로소시민들의서가로자리잡게되었다.
하지만시의모티브가된이장소에는아직작은표지석하나세워지지않았다.언젠가시인의생가대문을나서웃방망치길을지나계산성당과성모당을거쳐앞산으로향하던발자취를따라온전한‘상화시의길’이조성되기를바란다.그길을걷는이들이100여년전빼앗긴들을바라보며시를써내려갔을시인의마음을가만히헤아려볼수있기를바란다.
이기록들이대구의잊힌역사를다시잇고이터를지켜내는단단한초석이되기를바란다.그확신을품고100년전이집마당을거닐던거인들과오늘날대문을열고들어선방문객들의이야기를본격적으로시작해보려한다.
-p.35,‘잃어버린지번을찾아서:지적도와토지대장이증언하는진실’중에서
대구의막다른골목에서도4월의라일락은어김없이피었다.4월초개화부터낙화까지약보름동안나무는온힘을다해사람들을불러모았다.그지독한향기에빠진사람들은이성을잃을듯한감흥에휩싸이기도했다.매일같이찾아오는이들은완전히라일락의마법에걸려버린셈이었다.더강력한주술에걸린단골방문객한분은꽃이피는날에맞춰쑥떡을해오기도했다.
평소지인들에게“라일락꽃피는보름동안벌어서일년을먹고산다.”는농담을던질정도로라일락철에는정신이없다.정신이없다는것은육체적으로바쁘다는뜻이기도하지만하루종일코를찌르는짙은향기에취해말그대로정신이아득해진다는뜻이기도하다.
어느봄날,이웃에사는할머니께서라일락나무아래서약10분정도바라보다가돌아서며한마디하셨다.
“미치겠다.”할머니의말씀이한편의시처럼느껴졌다.
-p.97,‘4월의향기와보랏빛연대:상화와진건을기리는석잔의술’중에서
이상정은투사인동시에대구에서양미술을처음도입한예술가이자현대시조의선구자였다.망명전인1923년12월14일,그는이여성,박명조,황윤수,상계도,정유택과함께‘푸른눈동자’라는뜻의우리나라최초서양미술연구소‘벽동사碧瞳社’를창립했다.
벽동사의흔적을찾은과정은마치잃어버린보물을찾는탐험과도같았다.1923년〈매일신보〉기사에는벽동사의주소가‘대구부서성정1정목89번지’라고명시되어있었다.생가터를찾던방식대로1920년대의낡은지적도를펼쳐현재의위치를대조해나갔다.
“세상에,벽동사가바로여기였단말인가.”
나도모르게탄성이터져나왔다.89번지.그곳은현재라일락뜨락의대문을열면바로마주보이는앞집자리였다.이상정은대문바로앞에대구미술사의구심점이될연구소를차렸던것이다.비록지금은사다리창고용도의5층건물이그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불과몇년전까지만해도그곳은옛한옥의정취를품고있었다.
-p.131,‘용봉인학:거인들이태어난마당,서성로11번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