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이불

조각이불

$16.00
저자

이정혜

저자:이정혜
경남합천에서태어나대구교육대학교를졸업했다.이후경북과대구에서초등학교교사로아이들과함께생활하며동화와수필을써왔다.
동화「꽃잎속의아이」로부산문화방송신인문예상을수상했으며,제40회아동문예작품상(동화)을받았다.《한맥문학》수필부문에당선되며수필가로도작품활동을이어왔다.
동화집으로『꽃잎속의아이』,『달님을닮은꽃』,『하얀크레파스』가있으며,수필집으로『햇살이쌓이는뜰』,『쑥한줌의시간』이있다.
상처받으면서도또사랑하기위해,오늘도산책길여기저기를기웃거리며삶의작은이야기들을만나고있다.

목차


서문_조각이불처럼

1부자리를빛내주십시오

사색의뜰
고향의봄
길위의식탁
나를잃다
가훈
때가되면
사랑의매
인연
애환
오직집이목표
자리를빛내주십시오
해거리
기다려!

2부인생의모래시계

성공이란무엇인가
금지된것을욕망한다
수단껏
날파리의입장에서
걷는자만이산다
내인생의부사
이순
시험
잠시쉬어가도괜찮아
행복의기준
사랑의짐
인생의모래시계
유언

3부이름을불러준다는것

아버지의유턴
살아가는일에서사랑을빼면
손편지
이름을불러준다는것
영혼이담긴눈맞춤
삶과음악
꽃수필
별맛
동전의힘
하필이면
선물
이삿날

4부행복을여는열쇠

해거름
행복을여는열쇠
사슴섬이야기
마지막소원들어주기
나를버리십시오
겨울비속의탁발승
일용할걱정거리
살아야할이유
1그램의용기
카르페디엠
기도
은총
까치밥

출판사 서평

사는행위가별것아니다
인생의모래시계가멈추는날까지먹는것이다
매일밥을먹듯누군가의사랑을먹고기도를먹고용서를먹고
그렇게살아가는것이다

서로다른색깔,다양한무늬,조금씩다른촉감의자투리천들이조화를이루어예술적감성을품은조각이불이된다.존재감을잃어버린작고보잘것없는자투리헝겊이모여버려질위기를극복하고누군가의추위를덮어주고외로운이의마음까지감싸주는소중한이불이된것이다.

이정혜작가도버려질뻔한소소하고하찮은이야기라는날줄에감사와사랑과희망이라는씨줄로수필이란베를짰다.쓸모없는자투리조각들이모여조각이불이되듯이,각기다른주제의조각들로정성을다해빚었다.

작가는일용할걱정거리만있기를기도할정도로별의별남걱정을다하는사람이다.그런성격탓일까,주변모든크고작은존재에관심을기울인다.난전위노부부의식탁에서아름다움을발견하고체리한통에다시출근할힘을얻는다.감나무꼭대기에달린까치밥을지키고꽃을사올때는이름을꼭알아온다.

오직집이목표라는택배아저씨,살기위해걷는다는택시기사,겨울비속탁발승의뒷모습,할머니와함께소쿠리를갖가지채소로채웠던어린시절의해거름,하루가다르게자라는손자와먼인생길에서유턴하듯점점느려지는아버지…산다는건애환의연속이지만그속에또행복과사랑이있다.『조각이불』은바쁜일상을보내며자주잊게되는이사실을다시한번일깨워준다.마음이문득서늘해지는날펼쳐보면좋을책이다.

책속에서

B는절규하며그작은주먹이망가지도록벽을쳤다.이쯤되면복도로아이들이몰려왔다.B는뭔가억울한일을당한것처럼악을썼다.고작초등학교2학년이었다.아버지는고등학교선생님으로B를보통아이와조금다를뿐문제아로보지않았다.이세상의부모는다그럴것이다.대부분자녀를문제아로인식하지못한다.그래서B의부모님마음이이해되기도했다.잠시문제가있어보여도자라면서극복되기도하며모범생이돌변하여문제를일으키는예도주변에서많이보았다.아버지도고등학교에근무하며그런경우를많이보았을것이다.그러니귀한아들에게문제아라는가혹한딱지를붙일이유가없는것이었다.
B는수업시간이면수업내용자체를부정하며큰소리를질러대서다른아이들이제대로수업을하지못하는경우가허다했다.다행히그반학부모의인심이좋은지아무도B를전학보내야한다는민원은들어오지않아고마웠다.교장과교감이B를관찰하느라수시로복도에들락거려본의아니게공개수업을많이했다.그냥눈높이를낮춰그아이말을들어주고사랑으로품으면좀나아지려니하고희망을가졌는데갈수록담임이병이난이유가이해되었다.
퇴근시간이면‘오늘도나름열심히했다’는뿌듯함보다자책감이목에걸린가시처럼나를괴롭혔다.피할수없으면즐기라고했다.고통을한번즐겨보기로마음을다잡으며산책길에나섰다.걸으며생각했다.‘그아이는왜보통아이들처럼살지못할까?교사는왜그런아이에게도움이안될까?교사자격증이무슨소용이있을까?’온갖생각이밀려와착잡했다.그때단골과일가게앞을지나고있었다.순간보암직하고먹음직스러운빨간열매가내눈에꽂혔다.그게체리였다.그열매를한입베어물면새힘이생길것같았다.보석상자를안고오듯체리한통을사서집으로가는발걸음은가벼웠다.
집에와서체리몇알을먹고나니살기운이났다.체리의붉은과즙에꼭링거를맞은듯기운이났다.그후퇴근길에수시로체리를샀다.행복을사는마음으로.나에게체리한통의의미는애주가의술한병,흡연자의담배한갑과도같았을것이다.체리한줌을먹는시간은참행복했다.
-p.41,‘인연’중에서

옛날중학교다닐때국어선생님은수시로우리들에게물었다.
“너거들은살기위해먹나?아니면먹기위해사나?”
그때우리들은‘먹기위해산다’고하면식충이로취급받을까봐좀고상한척‘살기위해먹는다’고소리를높였다.나는살기위해걸을까?걷기위해살까?어느게고상한지모르겠다.집근처에택시승강장이있는데손님을기다리면서기사아저씨들은모여서여담을나누기도하고자판기에서커피를뽑아마시기도한다.
대부분칠팔십대의고령으로보인다.그중유일하게한기사아저씨는매일걷고있다.손님이언제올지모르니멀리는갈수없고개미쳇바퀴돌듯매일그주위를빠른걸음으로걷는다.한번은내가말을건넸다.
“아저씨,매일걷던데진짜부지런하시네요.”
아저씨가웃으며말했다.
“예,살기위해서걷습니다.”
걷는자만이산다는숲속나무판의글귀가마음속에윙윙울렸다.
-p.79,‘걷는자만이산다’중에서

얼마전경주여행중갑자기비가왔다.빗방울이굵어졌고우리에겐우산이없었다.“어쩌지?”아이는하늘을힐끔올려다보며걱정하더니빠른걸음으로걸었다.나는서둘러아이를업었다.업는다고비를피할순없었지만조금이라도빨리갈수있을것같았다.아이는등에업히자하늘을올려다보며내리는비를즐기는표정이었다.엉덩이를들썩이며콧노래까지불렀다.
“엄마,원우내려놔요.얼마나무거운데.”
딸이뒤따라오며몇번이고채근했지만나도손주도못들은척하며빗속을걸어갔다.
‘손주가아닌18킬로그램의짐을내가등에지고간다면….’
문득이런생각이들었다.기쁨으로지기는커녕얼마못가서고꾸라졌을것이다.사랑으로지는짐은가볍다.오늘도손주를통해사랑을배운다.18킬로그램의사랑을업고간다.
-p.102,‘사랑의짐’중에서

지금90세가훨씬넘은친정어머니가80세중반쯤됐을때조심스럽게물었다.
“엄마는유언에대해생각해본적있어?”
어머니가곧돌아가실것같아물어본것은아니다.그냥궁금했기때문이다.유언속에는평소어머니가르침의정수가들어있다고믿었기때문에살짝궁금했다.‘어머니의유언은뭘까?’를상상하고있는데어머니는한치의망설임도없이말씀하셨다.
“유언이뭐가필요하노.평소할말을다했는데.”
살아있을때할말을다못한얼간이들이나하는게유언이라는칼마르크스의말이생각났다.뜻밖의말에다소실망했지만그냥맞장구를쳤다.
“맞아,엄마.평소에하는말이돌아가시면다유언이되지뭐.”
-p.108,‘유언’중에서

“할아버지눈썹귀여워요.할머니고마워요.대구에놀러갈게요.사랑해요.하트.원우가.”
아이는편지끝에‘하트’라고쓰고그것도부족한지편지지전체를하트모양으로도배했다.손주는특이하게도남편의눈썹만지기를좋아한다.까끌까끌한눈썹의촉감이좋은지만나자마자손이가는곳도눈썹이며헤어질때도아쉬워하며눈썹을만진다.무슨심리에서인지도저히알수없지만아이는애착인형처럼할아버지의눈썹에애착을가진다.눈썹만지기를좋아하니아이는‘눈썹이귀엽다’라고표현했다.눈썹때문인지할아버지가그냥좋은건지손주는“할아버지는귀여워.”라고말하기도한다.남편은아이의순진한말에너무나흐뭇해하며말한다.
“이세상에나보고귀엽다는말을하는사람은원우밖에없을거다.허허허.”
-p.119,‘손편지’중에서

여름날해거름이면큰대소쿠리를들고할머니와방앗간옆밭으로갔다.낮에는너무더워아마할머니가그시간을택하신것같다.그밭에는고추,오이,호박,가지,깻잎,동부콩등갖가지채소들로풍성했다.우리집은10명도훨씬넘는대가족이어서소쿠리한가득채소를채워왔다.친구들과운동장에서놀다가도해거름이면집으로달려와으레소쿠리를챙겼다.남을칭찬하기를좋아하고인정많은할머니를참좋아했다.그래서할머니와밭에가는걸힘든일이라여기지않았다.같이소풍가는기분으로갔다.
지금도해거름이면할머니가제일많이생각난다.모두가궁한시절식솔들의먹거리를걱정해야하는할머니의해거름은어떤의미였을까?텃밭에서가족의허기를채우는먹거리를챙기는기쁜시간이었을까?아니면갖가지채소로소쿠리를채워야하는부담감을가졌을까?황톳길보릿고개를넘어야할때를고려하면후자일것만같다.
-p.159,‘해거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