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아홉수

$17.00
저자

추필숙

저자 : 추필숙
시와 청소년시, 그리고 동시를 쓰고 있다.
펴낸 책으로 시집 『골목 수집가』, 청소년 시집 『어제, 생일』, 『햇살을 인터뷰하다』, 동시집 『일기장 유령』, 『새들도 번지점프한다』, 『얘들아, 3초만 웃어봐』 등이 있다.

오늘의동시문학상, 방정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목차

작가의 말_왜 아홉수인가?

1부 꽃과 잎에 말을 걸다

수양벚꽃
너의 뱅갈
풀도 나무도 아닌 시간
꽃 자리
지금은 별일
작약
한 방
홑숲에 들어서다
우리도 탱자

2부 사물에 말을 걸다

첫 장
이어폰
어떤 초대
정글은 멀고 곰은 가깝다
돌아도 그 자리
묶었다 풀면 끈에도 자국이 남는다
리모컨이 따뜻하다
지붕들
해와 아이들과 나

3부 몸에게 말을 걸다

세 개의 안경
우두두둑 아구구구
혹
탔네, 탔어
시옷만큼
일손
빨강이 다녀가다
오늘 자다
여명과 연명

4부 맛이 내게 말을 걸다

격자무늬
파전과 파김치
그놈이 그놈
무슨 맛으로 남을까
버찌와 체리
쓰담쓰담의 맛
수박씨
군고구마
국시촌

5부 길에게 길을 묻다

아홉수
봉자
자락길
엎드리다
캐다
빈집
물에 안기다
공기압
나의 제철

출판사 서평

아홉, 끝이 아니라 다음으로 건너가기 전의 쉼표

아홉수는 민간에서 나이의 끝자리가 9인 해를 일컫는다. 10이라는 새로운 단위로 넘어가기 직전이라는 점에서 변화의 문턱이자 불안정한 경계로 여겨지는 시기다. 결혼이나 이사처럼 삶의 큰일을 앞두고 아홉수를 조심하라는 풍습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추필숙 작가의 수필집 『아홉수』는 이러한 통념에서 한 걸음 비켜선다. 작가에게 아홉은 불길하거나 피해야 할 숫자가 아니라 열에서 하나가 모자란 숫자, ‘거의, 하지만 아직’의 자리에 놓인 숫자다. 완성에 이르기 직전이기에 가장 흔들리고, 그만큼 삶의 솔직한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작가는 숫자 9에서 쉼표를 발견한다. 손으로 9를 쓰면 동그라미를 그리고 아래로 꼬리를 내린다. 멈추는 듯하면서도 완전히 닫히지 않은 모습이다. 작가는 이 모양에서 삶의 한 시기를 지나 다음으로 향하는 사람의 모습을 읽는다. 머무르고 싶은 마음과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서로 등을 맞대는 순간이다. 수필집 『아홉수』는 바로 그 경계에서 쓰인 기록이다.

꽃과 사물, 몸과 맛, 길에 말을 걸며 발견한
삶의 다정한 순간들

책은 ‘꽃과 잎에 말을 걸다’, ‘사물에 말을 걸다’, ‘몸에게 말을 걸다’, ‘맛이 내게 말을 걸다’, ‘길에게 길을 묻다’ 등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꽃과 잎, 사물, 몸, 맛, 길처럼 일상에서 늘 마주하지만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존재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이 되돌려주는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작가에게 꽃과 사물은 단순한 관찰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몸도, 맛도, 길도 저마다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작가는 그 목소리를 받아 적듯 자신의 기억과 상처, 흔들림과 위로를 한 편 한 편의 수필로 펼쳐 놓았다. 시와 청소년시, 동시를 써 온 추필숙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산문 곳곳에 배어 있다.

책 속에서

아홉이라는 평범한 숫자가 특별한 일상으로 다가온 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눈에 빨강이 찾아왔던 날도, 새 혹이 생긴 걸 알게 된 날도, 모두 여기 한 장씩 펼쳐놓는다. 누구나 자신의 아홉을 마주한다. 당신이 지금 서있는 자리와 닮아있을지 모른다. 당신의 아홉수도, 쉼표도, 그 목소리도 모두 다르겠지만, 그것이 결국 당신의 나날 위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홉은 불길한 숫자가 아니었다. 삶이 가장 다정하게 속삭이는 시간이었다. 아홉수를 건너는 동안 실컷 흔들렸다. 그러다 조금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어서 썼다. 다음 문장을.
- 머리말

꽃이 지는 순간도, 그 꽃을 피워낸 준비의 시간도, 모두 한 생명의 일부다. 이제는 남아있는 것을 본다.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남아서 빛을 받으며 묵묵히 숨 쉬는 것들. 아무도 바라보지 않아도 제 시간을 살아내는 것들.
그렇다. 잎이야말로 진짜 아홉일지 모른다. 열이 되지 않아도 괜찮은 자리, 주목받지 않아도 그저 제 몫을 다하는 마음. 아홉에 멈출 줄 아는 것. 그게 잎의 일이고, 어쩌면 나의 일이다.
-p. 39, ‘작약’ 중에서

요즘 아버지는 말수가 부쩍 줄으셨다. 그러면서 잠은 많이 느셨다. 전에는 깨어있을 때만 보던 텔레비전을 잘 때도 그냥 켜두실 때가 많아졌다. 화면이 대신 떠들고, 아버지는 그 소리 한가운데서 주무신다. 자다 깨도 화면이 켜져있으면, 안심이 되시는 듯하다. 그래서 함부로 끄지 않는다.
손에 든 리모컨이 아직 미지근하다. 이 작은 플라스틱 안에 아버지의 시간이 들어있다. 어떤 버튼은 수백 번 눌렸고, 어떤 버튼은 단 한 번도 눌리지 않았다. 그것을 아버지 베개 옆, 손이 닿을 만한 곳에 내려놓는다. 잠든 아버지의 손 위에 내 손을 잠시 얹어본다. 마디만 남은 손, 손톱조차 더디 자란다. 손등이 아직 따뜻하다.
-p. 87, ‘리모컨이 따뜻하다’ 중에서

엄마는 결국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엄마의 봄은 오지 않았다. 연명치료는 그저 고통을 연장했을 뿐이었다. 치료가 뭔지, 연명이 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것을 감수했다. 어쩌면 그 기억들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일지 모른다. 엄마를 보내고 나서야, 내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서명한 종이를 다시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엄마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했을까. 짐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물어볼 수 없다. 대신 오늘, 내 몫의 선택을 했다.
-p. 139, ‘여명과 연명’ 중에서

세상에는 있기만 해도 좋은 것들이 있다. 유리병 속의 모과처럼, 굳이 말하는 것도 증명하는 것도 없이 거기 있기만 해도 한 계절을 따뜻하게 하는 것들. 늦가을이면 코끝이 먼저 옛 골목을 기억해 낸다.
-p. 157, ‘그놈이 그놈’ 중에서

엄마가 나를 품었을 때, 담장 맡에 서있던 벚나무 곁을 내내 서성였다고 했다. 버찌가 익기만을 기다렸던 거다. 산달을 앞두고 버찌만큼은 실컷 먹어서 행복했다는 엄마. 그 나무가 엄마와 나를 살린 셈이다.
나는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들을 때마다 버찌보다 엄마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배를 안고 마당을 오가며 열매가 익어가는 걸 기다리던 젊은 엄마. 그 시절의 엄마는 지금 내 딸보다 어렸다. 그런데 기억 속 엄마는 늘 어른의 모습이다.
-p. 163, ‘버찌와 체리’ 중에서

화살표를 따라 한 바퀴 돌고 나오면서 다시 거북이를 바라봤다.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곳에 온 뒤로 하늘을 기억하고 있는지 잊어버린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기억이 때로 너무 무겁다는 건 안다. 그래서 나도 가끔 엎드리는 거다.
-p. 206, ‘엎드리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