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당에서 고산을 그리다 (양장본 Hardcover)

녹우당에서 고산을 그리다 (양장본 Hardcover)

$19.01
Description
고문서는 민간의 생활문화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의 보고
민간에 전승되는 고문서는 이미 한국학중앙연구원을 통해 파악된 것만도 30만 건이 넘는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의 4배, 승정원일기의 8배가 넘는 분량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민간 기층 생활문화사’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문서는 한국식 한문과 난해한 흘림체의 초서, 난수표와 같은 숫자 배열, 전후 설명 없이 제시된 명단 등으로 해독 자체가 어려워 접근이 어려웠다. 이 책은 고문서 중에서도 해남윤씨가에서 남긴 600년의 기록을 한글화하여 1차적 연구를 마친 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여 발간한 것이다.
저자

김덕수

한국학중앙연구원책임연구원,한국한문학전공

목차

책머리에

1.정조,윤선도의후손을수원으로초대하다-김덕수
해남으로띄운정조의초대장
정조,윤선도의풍수론에매료되다
수원에서정조를알현한윤선도의후손
잘생긴사람이벼슬하면조정에도움이된다
기대에못미쳐실망하다
수원부과거에도전한윤선도의후손
역적과같은항렬로세상에설수없다
윤선도후손의입시기록

2.고산윤선도의예학-김백희
윤선도가올린논예소에담긴예론
예법으로다스린나라,조선
예법을둘러싼논쟁,예송
예법을지켜야사람이다

3.어수지교(魚水之交)-김학수
덕문의감언지사
왕자들의멘토,대군사부
윤선도에대한왕실의무한신뢰
윤선도를향한세상의비난과질시
임금의은혜로운내림,은사
위문,물품에인정을담고
군왕의미안함,그표현의방식
임금의어릴적사부,질시와근시

4.친정제사를모신해남윤씨가며느리-이현주
유정린이해남윤씨가누이에게보낸편지
분재의원칙
친정에서상속받은윤인미처의몫
팍팍한형편의동생에게상속분을양보하다
해남윤씨가에서지낸전주유씨돌림제사

5.고신을통해본윤복의벼슬살이-임선빈
윤복의고신
우수한과거성적으로벼슬길에나아가다
부정한권력과타협할줄모르는소신행정
전라도도사로금의환향
목민관으로서기개를보이다
안동향교를중수하다
퇴계이황에게아들을맡기다
멀고도먼당상관의길
가문의영광,충청도관찰사제수

6.자운매답기-전영근
한승려의토지거래와소송
자운,논을사다
글을아는승려
승려의사유재산
부동산이중매매의덫
동냥중형색으로관가문에기대어서서
법은멀고주먹은가까운지라
자운,논을팔다
승려의신분

7.윤두서의집사,일복이의토지매매-정수환
해남윤씨녹우당종가토지매매명문
토지를판,상전이씨와노출생과의호
토지를산,윤진사댁노일복
17세기해남윤씨토지매매이야기

8.해남윤씨가와미역-조영준
미역주산지에자리잡은해남윤씨가
미역을기준으로수취한소작료
미역상납의기록
해남윤씨집안의미역밭
돈도되고,선물도되고,영양가도높은미역

9.봉림대군이사부윤선도의생일에보낸음식-주영하
1629년생일,집앞에줄지어선상노들
봉림대군이1629년생일에보낸음식
전해보다풍성해진,1630년생일음식
전년같지않은,1631년생일음식

10.해양개척자,해남윤씨-한도현
간척사업에나선해남윤씨
바다를삶의터전으로삼은어민보호론
해남윤씨가개척한해양인문학공간

11.선한지주란존재하는가?한글고문서두점으로들여다본지주가의적선과탐욕-허원영
덕부,녹우당
삼개옥문적선지가
두점의한글문서,적선의증거?
문서의실체,토지에대한욕망의실현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고산윤선도로대표되는해남윤씨가와이에얽힌사람들의삶을찾아떠나는시간여행
해남윤씨가는고려말윤광전이동정직에입사하면서관직의발판을마련하였고이후노비상속매매등을통해사회·경제적기반을마련하였다.특히16세기초사림파가문으로입지를다지면서가세와경제력이급격히신장하였다.파시조인윤효정때해남의향리였던해남정씨의무남독녀와결혼하면서재산을축적하고이지역의유력사족과혼인관계를맺을수있었다.이러한학파적·당파적관계를발판으로17~18세기초에윤선도·윤인미·윤두서시대를거치면서호남남인가문으로자리매김하게되었다.해남윤씨가문에남아있는고문서와고서가약5천점으로그속에는교육과과거를통해입신양명하려는노력,관료로서의성공과좌절,재산을증식하고이를자손에게물려주는다양한형태,바다를개척해가는모습등이담겨있다.그러나그속에는단순히해남윤씨의이야기만있는것이아니라이들과여성,향리,무인,서얼,농민,노비등과연계되어삶이유지되어갔는가가고스란히담겨있다.

선한지주란존재하는가-토지에대한욕망의실현
동서고금을막론하고토지소유를실현하는방법만변하였을뿐토지에대한인간의욕망은변한것이하나도없다.해남윤씨녹우당(綠雨堂)은경주최부자,구례운조루와더불어‘덕부(德富)’로일컬어지는대표적인양반지주가이다.조선부터현재까지격동의기간을거치면서도이처럼대지주로서가세를유지하고발전시켜왔다는사실은누대에걸쳐관용과적선을실천하고지역사회와얼마나긴밀히공존해왔는지를반영하는것이기도하다.특히지역을대표하는대지주였음에도불구하고,한말동학농민군의군세도이들을비껴갔고,심지어한국전쟁기좌익및빨치산의세력하에서도침탈을받지않았다는사실만으로도지역내이들의도덕적위상을짐작할수있다.그러나다른한편으로는관용과적선의실천속에서도양반대지주로서의사회·경제적지위가더욱높아졌다는사실은그못지않게권력과토지에대한욕망이강고히실현되고있었다는점을보여준다.또는노블레스오블리주자체의목적이그러하듯이,양반대지주로서의사회·경제적지위를공고하게하려는가장안정적인방법이덕부의실천이었다고도볼수있다.이는비단현재적관점에서만의평가가아니라선조와효종때의녹우당의토지에대한탐욕을신랄하게비판한기록에서도알수있다.〈1715년해남윤씨가패지〉와〈1850년이병관수표〉두문서도내용으로만보면적선행위로서의증거이지만,당시의상황을살펴보면토지에대한욕망의실현이잘드러난다.

외모가경쟁력이고,집안이배경이다 〈신해년도임일기(辛亥年到任日記)〉를보면정조의초대장을받고해남에서수원으로올라온윤선도후손이1791년1월16일밤에정조를만나는장면이묘사되어있다.내용중이채로운점은정조가“잘생긴사람이벼슬에오른다면조정에도도움이될것이다.”라고말하는부분이다.정조는국왕의위신에어울리지않을만큼외모에대해많이언급하며외모지상주의자와같은모습을보인다.실제다산정약용도〈외모에대하여[相論]〉에서부모조차총명하게생긴자식에게유독기대를걸고,잘생긴사람은벼슬길에나아갈때도유리한고지를선점하며,출사후에는번듯한생김새덕분에임금의신임과총애를한몸에받게된다는외모중시풍조를질타하였다.이외에도문집,족보등을보면정조와순조때‘지(持)’자항렬대부분이이름을바꾸는데윤지충·윤지헌형제때문이다.어머니의신주를불태운진산사건으로해남윤씨가문은두사람의죄상을공개적으로성토하면서“역적들과더불어하루도같은항렬로서세상에설수없다.”’며개명을요청하였다.비록역적집안이라는사회적낙인까지함께지우지는못했지만,외모나집안이한개인의출세에영향을미치는세태는지금과크게다르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