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위기도 막지 못한 아흔 살의 열정 “2015년 녹내장 수술 다섯 번에도 별무효과였다. 다시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하며 대수술을 받고 나서 드디어 확대경으로도 안 보이던 글씨가 이제는 확대경으로 보이게 됐다는 것이 아닌가. 이건 기적이 아니다. 노력의 보답이다. 이제 푹 쉴 나이 89세에 재도전이란다. 제 3시조집을 내겠노라며 서문을 부탁해온 것이다.” 20대에 남편과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아메리카 드림’의 선두 주자가 된 현원영은 50여 년 만에 찾은 고향에서 만난 시조로 일생이 바뀌는 경험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하던 일도 그만둘 고령에 시조 창작을 시작한 시인의 노력은 이제 세 권의 시집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미국에 시조를 전파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도 큰 업적이지만 시인의 일생이 우리 고유한 음률에 녹아내린 시조 작품이야말로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육신의 한계에 부딪힌 아흔 살에도 여전히 펜을 놓지 않는 시인의 작품을 우리말과 영어로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길 없는 길 위에서 “칠흑 같은 밤이어도 아스라이 새벽 오듯 심지 돋은 촛불로 단을 쌓아 엎드릴 뿐 하늘에 오롯이 기댑니다 길 없는 길 위에서” 현영원의 시조는 전통의 명맥을 분명히 이으면서도 내용이 고색창연하거나 독야청청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인의 가장 진솔한 일상과 마음이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시조를 읽으면서도 마치 요즘의 시를 읽는 듯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데 시조의 보존과 전파에 매진한 시인의 노력이 꽃을 피우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앙겔라 메르켈’과 같은 시사적인 인물에서부터 두 살짜리 손녀의 일화까지 시인이 다루는 소재는 폭이 넓을 뿐만 아니라 깊이도 깊다. 또한 평생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된 시인의 생애도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늦깎이 시인의 원숙함 “시인으로서 그는 늦깎이이고 그런 만큼 살아온 세월에 비해 문학인으로서의 연륜이 길지 않다. 그러나 올곧은 삶이 이룩한 강한 방벽, 시간의 축적이 부양한 세계관의 원숙성은 그의 문학 현장에 유익한 자양분으로 기능한다.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들리는 맑고 천진난만한 동시조가 있는가 하면, 육탈을 넘어선 언어로 세상사를 달관한 노경의 시조가 함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자양분의 효력이다.” 문학평론가 김종회의 평가처럼 현원영의 시조는 천진난만함과 원숙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시인이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기에 글로벌한 관점까지 더하고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시조란 그릇에 천진난만함과 글로벌한 관점이라는 음식을 맛깔나게 담는 것은 쉬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조집을 통해 그 맛을 음미해보시길 권유드린다.
길 없는 길에서 (松韻 현원영 제 3시조집(한영) | Paperback)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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