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수다 : 국군포로들의 삶과 죽음

막장 수다 : 국군포로들의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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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반도 최북단 지역 아오지 탄광, 국군포로 탄부들의 40여 년 망향 이야기. 대표적 탈북작가(소설가)이자 ·통일교육 전문 강사 림일이 신작 장편소설 《막장 수다》를 세상에 내놓는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본래 남한 사람이었으나 북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에 주목한다. ‘아오지 탄광’은 북한에서도 오지 중에 오지이고 험지의 대명사인데 이곳에 바로 국군포로들이 산다. 차마 현실이라기에 너무 가혹한 상황이 계속되지만 서로를 보듬는 수다와 삶의 나눔이 있는 이곳이 바로 ‘막장’이다.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은 잊힌 이름이 되었다.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에서조차 언급되지 못한 그들의 이름은 이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자

림일

·1968년평양출생
·1984년대동강남자고등중학교졸업
·1993년사회안전부13처근무
·1996년쿠웨이트건설노동
·1997년서울도착
경력·대표적탈북작가(소설가)
·《김정은께보내는림일의편지》집필자
·《림일작가의통일인터뷰》진행자
·통일교육전문강사
저서·《평양으로다시갈까?》
·《평양이기가막혀!》
·《평양보다서울이…》
·《소설김정일》(전2권)
·《소설황장엽》(상·하권)
·장편소설《통일》
·《나는김일성이고맙다!》
·《탈북영웅33인특별인터뷰》
·《탈북여성30인특별대담》

목차

처녀로꽃필때
정부내각정령143호
기러기떼날으네
석탄은공업의식량이다
둥근달밤,동구길…
막장에서기막힌수다
검은금유치원
무너진갱안의사람들
안마기술은동무가최고요
보위부조사실
농태기가참좋재오
고난의신혼살림
아이들의군사놀이시간
낙서,자살,유서…
배낭에담긴석탄밥
깊은밤중에체포영장
아오지버럭
부부싸움끝에
인민의이름으로처단한다
풍산개…국군포로

부록

출판사 서평

43호의비밀

“그게말이오야.1956년내각정령143호에따라전쟁때이북으로올라온남조선군대출신사람들에게공민증을부여한다는것임매.어버이수령님과노동당의배려로…”“정부내각정령은143호인데왜43호임까?”“그냥줄여서‘43호’라고하는검매.”

대표적탈북작가(소설가)이자·통일교육전문강사림일이신작장편소설『막장수다』를세상에내놓는다.전작인『탈북영웅33인특별인터뷰』와『탈북여성30인특별대담』으로대한민국에서살면서활발히활동중인탈북민의현실을고스란히그려낸그의노력은영어로번역출간될정도로국내외의관심을받았다.이제작가의시선은본래남한사람이었으나북으로끌려가돌아오지못한국군포로로향한다.어렵고쉽지않은이야기지만누구나관심을가져야하는중요한사안이기에흥미롭게읽을수있도록소설로썼다.그냉엄한사연은우선‘43호의비밀’부터출발한다.내각정령143호에의거한안전부주민등록번호중두자리로불리는이들은기구한삶을이제부터만나보자.

험지의대명사아오지

“어느해인가김일성수령이수행원들과함께함경북도를현지지도하던중관계부문일꾼들에게전기생산과관련해여러탄광과아오지탄광에대한교시를했고그날은6월13일이다.이후아오지탄광이‘6·13청년탄광’으로개칭되어불린다.”

우리에게‘6·13청년탄광’은낯선이름이다.하지만‘아오지탄광’은누구나안다.심지어한동안개그소재로쓰일정도로친숙한편이다.북한에서도오지중에오지이고험지의대명사인이곳에바로국군포로들이산다.어쩌면남한과가장먼험지에이들이있을것이라는사실이역설적으로당연한지도모른다.그런데일상이힘겨울수밖에없는탄광지역이기도하지만알게모르게받는차별로인해국군포로들에게여기는지옥과같은곳이다.그와중에서겪게되는다양한사건과눈물과웃음,그리고지울수없는고향에대한그리움을잊어서는안될것이다.

막장에서기막힌수다

“이막장이우리인생막장이재오?”“엉?~그게무슨소림까?”“갱도끝지점인이막장이나.인생끝지점인우리들의신세나똑같다는소리임매.아이그렇소?내말이틀리오야?”
“하하!그거아주신통한비유임매.”“막장!~연극의종장?매우비슷하오야.”

우리는‘막장’하면‘드라마’가자동으로연상된다.한마디로현실적이지않다는뜻이다.그런데차마현실이라기에너무가혹한상황이계속되는이곳에도서로를보듬는수다와삶의나눔이있다.그러지않아도힘겨운‘고난의행군’시기에북한에서가장힘겨운곳에서제일차별받는존재들이겪어낸간난신고가드라마〈사랑의불시착〉보다더리얼한북한의삶으로인도할것이다.어쩌면막장보다더기막힌그들의삶에서남모를애수를느끼며눈물을훔칠지도모른다.

잊힌그이름국군포로

“안시현을포함한국군포로출신들은그동안이곳6·13청년탄광이나사회(은덕군)에서‘국군포로’라는말조차도못하고살았다.공식적으로‘포로’라는용어자체가공화국정부의‘남조선군포로는없다!’는정책에위배가되기에그랬다.그냥뭇사람들로부터‘남조선것들’혹은‘괴뢰군출신’등으로불린자신들이었다.”

6·25전쟁의마무리중가장중요한사건은바로‘반공포로석방’이었다.다양한해석과의미부여가가능하지만누가뭐래도당사자들에게는광명의빛줄기였다.반대로북한에억류된국군포로들은잊힌이름이되었다.망부석처럼고향을그리는마음에지쳐하나둘씩세상을떠나가는그들에는유일한희망을고향을다시방문하는것이다.하지만이러한간절한바람에도불구하고소설의말미에나오는최초의남북정상회담에서조차언급되지못한그들의이름은이제우리가반드시기억해야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