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환상문학과역사의식의접목,한국인들에게공감대를부를소설들
수록작중「역사에종지부를찍은사람들」은과거의정보와기억을그대로체험할수있는기술을통해,731부대의희생자유족을과거로보내과거의진실을밝히는과정을다큐멘터리형태로풀어낸소설이다.작중731부대의행위를적나라하게묘사하는한편,관련자의증언과일본의로비,미국정치계의대립등을실제처럼구성하여네뷸러상과휴고상수상후보에오르기도할만큼큰화제가되었다.저자는코멘트를통해수많은실제관련자인터뷰와기사,서적,특히미국하원‘종군위안부관한하원결의안121호’를의결하기전에개최한청문회를참고하였다고밝히면서731부대의모든희생자들을추모하는뜻에서집필했다고밝힌다.또한‘스스로가장아끼고자랑스러워하는이야기’라고여러인터뷰에서밝힌바있다.그러나이작품은켄리우의단편집이일본에서정식출간될때수록되지않았으며,중국역시공산당에비판적인내용이나오는곳을삭제한불완전판본으로출간되었다.
대체역사소설「태평양횡단터널약사」은만일2차세계대전대신일본이미국,중국과우호관계를맺고조선과만주를지배했다면?이란설정에서시작되는소설로,강제징용을통해불법적으로노동력을갈취하고비밀을숨기기위해징용자들을몰살시키는충격적인내용을다룬다.대만2.28사건을소재로한「파자점술사」에선한국전쟁당시‘미국’을‘megook’으로받아들인미군에의해‘gook’이동양인을비하하는용어가되었다는유래를얘기하기도한다.이작품은미소냉전시대의대만을소재로함으로써한국인에게도역사적공감대를제공한다.이렇듯켄리우는동북아시아역사에관한관심을작품에적극반영한다.2019년국내에출간예정인그의또다른선집엔임진왜란을배경으로명나라장수이여송의평양성전투를다룬단편과한글의모양을소재로한작품이실릴예정이다.
“욕구를도저히참을수없는남자들은조선출신위안부를찾아갔다.하루치품삯을지불해야하기는했지만.나는딱한번갔다.피차너무지저분한몰골이었고,여자쪽은죽은생선처럼꼼짝도하지않았다.나는두번다시위안부를찾지않았다.동료한테듣기로위안부중에는자기가원해서온게아니라제국육군에인신매매를당한여자도있다던데,내가산여자도그런경우였던것같다.그여자한테딱히미안한기분은들지않았다.나는너무피곤했으니까.”ⓘ「태평양횡단터널약사」중
“그런이야기를떠벌리는사람들은그냥관심을받고싶은거예요.그왜,2차대전때일본군한테납치당했다고주장하는한국인매춘부들처럼.”ⓘ「역사에종지부를찍은사람들」중익명의인터뷰
SF환상문학장르로서이상적이고독특한아이디어로대중을사로잡다
켄리우의작품은SF나환상문학이대중에겐어렵다는통념을깨는작품들로구성되어있다.각기독특한소재를다루고있음에도,일반대중이누구나실생활에서생각해볼만한소재이기때문이다.「시뮬라크럼」은어린시절,특수한장치로가상외도를하던아버지를목격한딸이평생을그를멀리하게된사건을소재로,아버지와딸의입장을인터뷰형식으로풀어낸작품이다.「천생연분」은인공지능에의해만날상대자,음식점,업무까지모두맡겨버린미래,인공지능을운용하는기업이국가보다더강력해진미래를다룬다.인공지능없이는아무것도못하는인류의모습은현재의스마트폰이삶의중심이된현대인들에게흥미로운메시지를전달한다.이외에도다양한장르적상상력을가미한작품들이가득한데,「즐거운사냥을하길」은강시나구미호를잡던도사의아들과구미호의딸이20세기초반,판타지시대가사라지고증기과학시대로넘어가며새로운미래세상에적응하는이야기를다뤄판타지와SF스팀펑크장르의흥미로운결합을보여준다.네뷸러상최고소설부문후보에올랐던「파(波)」는영생을살게된인류의머나먼미래를폭발적인상상력으로다룬다.휴고상단편부문대상을수상한「모노노아와레」역시우주로나온인류에대한작품이다.
“봤지요?틸리가없으면당신은일을할수가없어요.자신의삶조차기억못하고,어머니한테전화한통못겁니다.이제인류는사이보그입니다.우리는이미오래전에의식을전자(電子)의영역으로확장하기시작했고,이제는자아를두뇌속으로다시욱여넣기가불가능합니다.당신들이파괴하려고했던당신의전자복제판은문자그대로실제의당신입니다.”ⓘ「천생연분」중
▶수록작및수상내역
ⓣ종이동물원:휴고상,네뷸러상,세계환상문학상단편부문대상,시어도어스터전상결선작
ⓣ천생연분
ⓣ즐거운사냥을하길
ⓣ상태변화
ⓣ파자점술사
ⓣ고급지적생물종의책만들기습성:네뷸러상단편부문후보작
ⓣ시뮬라크럼
ⓣ레귤러:로커스상,네뷸러상최고소설부문후보작,시어도어스터전상결선작
ⓣ상급독자를위한비교인지그림책
ⓣ파(波):네뷸러상최고소설부문후보작
ⓣ모노노아와레:휴고상단편부문대상,로커스상단편부문결선작,시어도어스터전상결선작
ⓣ태평양횡단터널약사(略史):로커스상결선작,사이드와이즈상대체역사물부문후보작
ⓣ송사와원숭이왕:네뷸러상결선작
ⓣ역사에종지부를찍은사람들.동북아시아현대사에관한다큐멘터리:네뷸러상,휴고상최고소설부문후보작,시어도어스터전상결선작
▶옮긴이의작품해설
■종이동물원ThePaperMenagerie
잡지《판타지&SF(Fantasy&SF)》2011년3,4월합병호에처음발표한단편이다.
읽고나면누구나찬탄하게되는「종이동물원」의아름다움은그구조와상징에서기인한다.먼저구조를살펴보면,주인공잭은홍콩에서결혼을통해미국으로이주한중국인어머니와미국인아버지사이에서태어난소년이다.어머니와함께지내는집안이곧세계였던시절,잭은어머니가선물포장지로접어준마법의종이동물을벗삼아지낸다.그러다가집바깥의학교및교우관계로세계가넓어지면서잭은어머니와어머니가접어준종이동물,즉‘중국적인것’들로부터멀어진다.사춘기를겪는동안‘미국적인것’을즐기는미국아이로자라난잭은집을떠나대학에진학하면서어머니를잊다시피한다.어머니가사망한후잭이종이호랑이의안쪽면에적힌편지를발견하면서소설은지난세월을어머니의관점에서들려주는이야기로변신한다.
상징면에서주목할점은어머니가맨처음접어주었던가장오래된종이동물인‘라오후’가편지를전달하는매개체라는사실이다.구겨지고찢어져서테이프로수선한,오랜세월동안먼지가끼고너덜너덜해진라오후[老虎,중국어로‘호랑이’]는잭을곁에서가장오랫동안지켜본어머니의사랑그자체이다.그라오후가펼쳐지면서드러난편지는어머니가잭에게한번도들려준적없는과거의사연,언젠가들려주고싶었지만결국하지못한이야기였다.
아들에서어머니로화자가변하는구조속에어머니의변치않는사랑의상징인라오후가풀어지면서말하지못했던회한은폭포수처럼쏟아져내린다.그편지에적힌어머니의글씨위에아이[,‘사랑’]라는글자를빼곡히겹쳐적음으로써잭은늦게나마어머니와연결된느낌을받는다.이는곧어머니가겪은과거의역사를자신안에받아들이는것,중국계인자신의정체성과중국인인어머니를자신의일부로인정하는것을상징한다.
「종이동물원」을‘다문화(多文化)시대의알레고리’로서읽을때중요한역할을하는인물은바로잭의아버지이다.종이동물대신갖고놀도록아들에게스타워즈장난감을사주고아내에게는영어로얘기하라고하는잭의아버지는,사실상이이야기를읽는독자일반의사고방식을구현한인물이라고할수있을것이다.다른문화권에서태어나자란이주자가우리사회에들어올때우리는그/그녀가우리언어와문화를받아들이기를기대하고장려한다.그러한기대와장려는설령선의또는호의에서비롯되었다할지라도결과적으로는잭의아버지가그러했듯이억압으로,때로는방관으로표출되기도한다.이를감안하면「종이동물원」의이야기는결코먼나라를배경으로한판타지에머문다고할수없을것이다.
지은이가어느인터뷰에서밝힌바에따르면미국에서는「종이동물원」을읽고부정적인반응을보인독자도많았다고한다.주로“중국계미국인들은인종차별을겪지않는다”라거나“영국이지배한홍콩처럼‘자유로운’식민지에서주인공의어머니가경험한것같은인권유린이일어났을리없다”같은이유때문이었다고한다(이러한독자들의사회적배경은굳이깊이생각하지않아도추측할수있을듯싶다.).주인공의어머니가미국으로건너온수단이된‘우편주문신부(mailorderbride)’는오늘날국제결혼중개회사의형태로우리에게도익숙하므로한국독자들이이해하기에무리가없으리라생각한다.
작품을처음발표한《판타지&SF》의인터뷰에서켄리우는‘작가들은대개자기작품이사적인이야기라고하는데,「종이동물원」은어떤점에서사적인이야기인가’라는질문에아래와같이밝힌바있다.
“작년에첫째딸이태어나면서부모되기에관해여러가지생각이들었다.아버지로서느끼는한가지불안은내아이가나를어떻게볼것인가,나를이해할것인가,내삶에서의미를발견할수있을것인가하는점이다.내생각에부모라면누구나자기아이에게이해할수없는존재로보이지않을까하는불안을느끼는것같다.그또한이이야기의주제이다.”
영미문학에관심이많은독자라면이미짐작했겠지만,제목의동물원이‘zoo’가아니라‘menagerie’인까닭은테네시윌리엄스의희곡「유리동물원(TheGlassMenagerie)」와관련이있다.일본어판인「紙の動物園」에실린옮긴이후기를보면두작품사이의연관성을묻는일본어판번역자에게지은이는이렇게답했다고한다.
“이단편의제목은실제로윌리엄스의희곡에대한암시입니다.이야기속에서(「유리동물원」의등장인물로라처럼)한결같이약하고여리기만한존재로보이는어머니가종이동물들과마찬가지로마음속에크나큰힘을지니고있다는것이분명히밝혀지기때문이지요.”
2012년SF판타지문학계에서최고의권위를자랑하는휴고상,네뷸러상,세계환상문학상의단편부문최우수상을모두석권한사상최초의작품이다.2013년에는‘스페인의휴고상’으로불리는이그노투스상의해외단편부문최우수상을수상하기도했다.
■천생연분ThePerfectMatch
잡지《라이트스피드(Lightspeed)》2012년12월호에처음실렸다.
거대기업이개발한AI에지배당하는미래사회는오래전부터SF의단골소재였던점을감안하면고전적인분위기의SF단편이라고할수있다.작품속에서(아무리봐도페이스북이떠오르는)거대IT기업센틸리언이개발한인공지능‘틸리’는현실세계에존재하는애플의‘시리’나아마존의‘알렉사’를연상케한다.
발표시기를감안하면‘여러나라의독재정권을무너뜨렸다’라는센틸리언CEO의말에서SNS가큰역할을한아랍권의재스민혁명이떠오르지만,2016년미국대통령선거에서페이스북을통해전파된가짜뉴스가어떤효과를거두었는지밝혀진오늘날에는섬뜩하게다가오는이야기이기도하다.자사의인공지능을무력할방법을생각해낸젊은이들에게입사해서함께일하자고제안하는센틸리언CEO를보면오싹하면서도씁쓸한느낌이든다.
■즐거운사냥을하길GoodHunting
잡지《스트레인지호라이즌스(StrangeHorizons)》2012년10월호에처음실렸다.
괴이한이야기를다룬중국의전통적인단편장르인전기(傳奇)소설로시작해서증기기관의힘을이용하는대체역사소설인스팀펑크(steampunk)로마무리되는특이한구조를지닌단편이다.아편전쟁직후서양열강에침탈당하는중국을배경으로한이야기의주인공은,우리에게는강시영화로익숙한‘영환도사’의아들과후리징[狐狸精,여우요괴]의딸이다.
작가는이들을통해두가지전복을시도한다.하나는과거부터‘남자의정기를빨아들이는요사스러운괴물’로정의된후리징전설을뒤집어생각하는것이다.이이야기속에서후리징은신비한힘을지닌주체적이고독립적인존재이지만,그들에게매혹당했으나소유하지못한남성문인들에의해요물이라는비난을받는다.조국의땅이서양열강에점령당하면서요술의힘을잃고착취당하는존재로전락한이후몸까지기계로바뀐후리징은자신의기계몸에깃든힘을새시대의요술로서받아들여다시금주체적인존재로거듭난다.
다른하나는제국주의의침략이라는주제를제국주의역사의산물인스팀펑크장르로그려내는것이다.스팀펑크는주로19세기영국을배경으로삼아증기기관이고도로발달한가상의역사를다루는대체역사소설을가리킨다.「즐거운사냥을하길」에서제국주의열강에침탈당하여마법의힘이사라진동양을상징하는등장인물들은서양문명의상징인크롬과증기기관을이용하여자신들만의새로운요술을손에넣는다.요괴사냥꾼은기계요괴제작자로,후리징은증기기관심장을품은기계요괴로거듭나는것이다.‘난무서운일을당했지만,나스스로가무서운존재가될수도있었던거야’라는등장인물의대사를보면작가가과거식민지로서수탈당했던홍콩과중국의역사를어떻게그리려했는지알수있다.
이야기의모티프는작품에등장하는여우요괴의이름으로보아중국청대의문인포송령이지은환상소설집인『요재지이(聊齋志퐹)』(김혜경옮김,민음사,2002)가운데1권에수록된「영녕(쪱寧)―귀여운영녕」으로추정된다.
2016년일본의판타지SF문학상인세이운[星雲]상의해외단편부문최우수상을수상했다.
■상태변화StateChange
장르를넘나드는단편소설을모아출판하는선집《폴리포니(Polyphony)》의4호(2004년)에처음실렸다.
모든사람이저마다물질로구현된혼을지니는세계를배경으로각얼음이영혼인주인공의성장을다룬특이한이야기이다.지은이의말에서작가가설정에영감을얻었다고밝힌마사수컵의단편소설(「WakingBeauty」)은틀에박힌행동패턴을살짝변주함으로써남들에게안보이는공간을현실에구현하는능력이있는사무직여성이동료직원과단한번의밀회를갖는다는이야기이다.작가는여기에역사적인물들이저마다특이한혼을지녔다는가상의기록을군데군데삽입하여독특한분위기를자아낸다.
■파자점술사TheLiteromancer
잡지《매거진오브판타지&사이언스픽션(TheMagazineofFantasy&ScienceFiction)》2010년9/10월호에처음실렸다.
미국인소녀와중국인점술가의우정을통해타이완현대사를그린판타지단편이다.주요소재인파자점(破字占,Literomancy)은주로한자를여러부분으로나누어각각의뜻을조합하거나획수를따져사람의명운을점치는점술로서,중국에서는처즈[字]라는이름으로오랫동안전해내려왔다.이야기속에서는중국과타이완의현대사를그대로경험한중국인노인이미국인소녀에게복잡한영어단어로파자점을쳐주는장면이나오는데,이를통해동서양의기호를자유자재로활용하는작가의솜씨를엿볼수있다.
작품에서중요한소재로등장하는‘2·28사건’은허우샤오시엔감독의영화「비정성시(非情城市)」(1989)를통해대중적으로알려진바있다.작품속에중국고전시가를인용하여독특한분위기를자아내는것또한켄리우의장기인데,‘들불이일어나초원에살아있는것을모조리태워버린다해도비가내리면들꽃은다시마법처럼피어나지’같은부분에서는당(唐)대시인백거이의시「부득고원초송별(賦得古原草送別)」의구절(野火燒不盡,春風吹又生)이떠오르기도한다.
■고급지적생물종의책만들기습성TheBookmakingHabitsofSelectSpecies
잡지《라이트스피드(Lightspeed)》2012년8월호에처음실렸다.
가상의외계인다섯종이기록을남기는방식에관해쓴이특이한단편에는SF를과학소설(ScienceFiction)보다사변소설(SpeculativeFiction)로보는지은이의관점이잘나타나있다.이야기에등장하는종족들은서식하는환경과신체특징에따라저마다다른매체를사용하여기록을남기고,이기록을이용하고후대에전하는과정에서사고와행동양식이변화한다.인류역사에서글쓰기전통이여러차례상이하게발생하여발달했으면서도기본적으로는‘문자’를이용했다는점을떠올리면,사고를기록으로남기는기술의형태가사용자를물질및정신면에서모두변화시킨다는설정이더욱흥미롭다고하겠다.
가상의문명에관한관조적묘사와전체적분위기를보면이탈로칼비노의『보이지않는도시들』같은작품에서영향을받았으리라추측할수있다.
2013년네뷸러상과시오도어스터전기념상,2017년이그노투스상단편소설부문의최종후보에올랐다.
■시뮬라크럼Simulacrum
잡지《라이트스피드(Lightspeed)》2011년2월호에처음실렸다.
피사체의인격을기록하고재현하여관람자와소통하도록하는가상의촬영장치‘오네이로파기다’를소재로한단편이다.‘기억의보존과재현’이라는주제와‘부모가자녀에게느끼는보편적불안’을한데엮은이야기이기도하다.지은이인터뷰에따르면원래는여러인물이등장하는더긴이야기를쓰려고했지만어느날문득『리어왕』4막7장의대사가떠올라(‘부디이제는잊고용서해다오,나는늙고어리석으니.’)가떠올라아버지와딸의이야기로고쳤다고한다.
같은인터뷰에는발표전에먼저읽은독자들이성별에따라다른반응을보였다는말도실려있다.남성독자는아버지의일탈을목격한한순간의기억때문에평생아버지를경멸하는딸에게아쉬움을표한반면,여성독자들은딸의관점에훨씬더동질감을느꼈다고한다.
‘기억의재현과보존’이라는주제를거시사가아니라개인의역사속에서다룬점은이책맨끝에실린중편『역사에종지부를찍은사람들』과대칭을이룬다고볼수있겠다.
2017년일본세이운상번역단편소설부문에서최우수상을수상했다.
■레귤러TheRegular
2014년사이보그가소재인SF중단편소설을모은선집『업그레이디드(Upgraded)』에처음실렸다.이후SF전문편집자로유명한가드너도즈와의선집『2015최우수SF단편선(TheYear’sBestScienceFiction:Thirty-SecondAnnualCollection)』에실리기도했다.
이책에실린다른작품들과조금은이질적으로보이는하드보일드SF느와르중편이다.소재가된가상의장치레귤레이터(regulator)는착용자의내분비계통을조정하여감정을조절하는보조장치로,작품속에서법집행기관의종사자는누구나의무적으로착용해야한다.주인공루스는경찰로재직하던시절레귤레이터를무시했다가딸을잃은기억때문에지금은항상레귤레이터를켜놓고지낸다.그러나이야기의결말에이르면정상적인(regulator)세상의모습은레귤레이터에게조정당하는의식과전혀다르다는진실에마주하게된다.
여성들이피해자인일련의사건을여성사립탐정이해결해가는이야기로,루스를웃으며무시하는남자형사들의모습이나사건희생자들에게연민을느끼는주인공의모습등에서작가의여성관이드러나는작품이기도하다.제목인‘레귤러’는‘정상적인’,‘보통의’,‘일반적인’등을가리키는형용사로서정상성을강제하는장치인레귤레이터와함께작품곳곳에서공명하는효과를만들지만,한국어로옮길때공통적으로적용할역어를찾지못해어쩔수없이괄호안에원어를병기하기로했다.
■상급독자를위한비교인지그림책AnAdvancedReaders’PictureBookOfComparativeCognition
이단편집에처음으로발표한작품이다.
앞쪽에실린『고급지적생물종의책만들기습성』과유사하게논픽션글쓰기의분위기를차용한SF단편이지만,어머니가딸에게남긴작별의편지(이자그림책)을아버지가읽어주는형식이라는점이특이하다.기본설정은인간의의식이사고,그중에서도‘기억’의압축이라는설정에서출발한다.전반부에서는가상의외계생명체들의생태를묘사하며만남과헤어짐의의미를탐구하다가후반부에이르러화자가족의이별과모성애에관한이야기로바뀌는점에서지은이의탁월한솜씨가엿보인다.
■파(波)TheWaves
《아시모프사이언스픽션(Asimov’sScienceFiction)》2012년12월호에처음실렸다.
환경이악화되면서외계이주를목적으로한개척대가지구를떠난미래,인류는영원한생명을손에넣는다.죽음을초월한인류가진화를거듭하여마침내빛의형태로까지나아가는이이야기에는세계각지의창세신화가중간중간삽입되어있는데,이신화가각장면의내용과엮여독특한분위기를자아낸다.제목인파(波)는지구를떠나우주로나아가는각세대의인파(人波)를가리키기도하고,인류의최종진화형인파동(波動)을가리키기도한다.
2015년제1회캐노퍼스(Canopus)상단편부분최우수상을수상했다.캐노퍼스상은특이하게도미국의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과항공우주국(NASA)이공동으로설립한성간(interstellar)여행연구개발프로젝트인‘100년스타십(100YearStarship)’에서제정한상으로,성간여행을다룬기출간SF소설을대상으로한상이다.
■모노노아와레Mononoaware
2012년『미래는일본풍(TheFutureIsJapanese)』에처음실렸다.
소행성충돌로멸망한지구를뒤로하고살아남은인류1021명이우주선한척에올라태양돛의동력으로외계를향해나아가는미래,마지막한명남은일본인이주인공으로등장하는이야기이다.소행성충돌전질서있게피난을가는일본인들의모습을보면2011년동일본대지진당시의뉴스화면이떠오르기도한다.미래에관해쓰면서도과거의역사와기억을중요한소재로이용하는작가의특징이잘드러난또하나의단편이다.
일본을배경으로한이야기의창작과정에관해작가는한인터뷰에서아래와같이밝혔다.
“사실「모노노아와레」에는서술상의편법을사용했습니다.모국에서보낸삶이여덟살나이에끝난일본인어린이를주인공으로삼은거죠.따라서주인공이아는일본이라는나라는어렴풋한기억과이방인들이일본에관해들려준이야기,또자신이간절히지키고싶은사랑하는사람들의기억으로이루어져있습니다.그렇다보니이상화되고왜곡되고부정확한이미지일수밖에없죠.주인공은일본을자기머릿속에서*구성*했던겁니다.”
2013년휴고상단편부문최우수상을수상했고같은해시오도어스터전기념상단편부문최종후보에올랐다.
■태평양횡단터널약사ABriefHistoryOfTheTransPacificTunnel
《매거진오브판타지&사이언스픽션(TheMagazineofFantasy&ScienceFiction)》2013년1/2월호에처음실렸다.
일본이미국과손을잡고태평양횡단해저터널을건설하여대공황을타개,2차대전이벌어지지않고식민지배를계속한가상의역사를소재로한단편이다.중간중간가상의역사자료가삽입하여나치스가역사책의주석하나에불과하다는식의설명을곁들이는식으로웃음을유발하기도하지만,이야기의화자인포모사(타이완)출신광부의사연은일제가태평양전쟁기간에자행한강제징용의역사그자체이다.1960년대인시대배경속에서흑인민권운동에참여하는백인학생들의이야기나터널개통기념비에새겨진자기이름을지워버리는화자의행동을보면개개인의용기가역사에미치는영향을묘사하는것으로보인다.
■송사와원숭이왕TheLitigationMasterAndTheMonkeyKing
《라이트스피드(Lightspeed)》2013년8월호에처음실렸다.
만주족왕조인청조(淸朝)가지배하는18세기중국을배경으로한역사판타지이다.주인공인전호리는전설속의원숭이왕과머릿속으로대화를나누는,오늘날의관점에서보면전형적인조현병환자이다.서민들의소송대리인인‘송사’를호구지책으로삼던전호리가금서(禁書)를지키기위해근대소설의주인공처럼영웅적인선택을내리는점이인상적이다.또한곳곳에서유기의장면들이인용되기는하지만,원숭이왕의정체가결말에이르러서야미후왕손오공으로밝혀지는점또한인상깊다.
만주족군대가명나라를침략하여1645년에저지른양주대학살은실제사실로서,가정지방의세차례학살과더불어‘양주십일(揚州十日)가정삼도(嘉定三屠)’로일컬어질만큼잔학한사건이었다.이야기의소재인『양주십일기』가일본에전해진것,일본에보관되어전해내려온『양주십일기』를청나라유학생들이발견하여신해혁명의불씨로삼은것또한역사적사실이다.
이야기속에서능지형에처해지는주인공이처형장에서웃는군중을보며개탄하는장면에서는중국의문호루쉰이『아침꽃을저녁에줍다』에서묘사한,사형집행광경을보며즐거워하는근대중국의민중이떠올라씁쓸한느낌이들기도한다.이야기에나오는송사의활동과아문의재판분위기는장르가조금다르기는하지만주성치가주연한영화「심사관1,2」를통해어느정도상상할수있을것이다.
2014년네뷸러상단편부문후보에올랐다.
■역사에종지부를찍은사람들―동북아시아현대사에관한다큐멘터리
TheManWhoEndedHistory:ADocumentary
2011년SF판타지중편소설을모은중편집『팬버스스리(PanverseThree)』에처음실렸다.
아마도표제작인「종이동물원」과더불어우리나라독자들에게가장관심을끌작품으로보이는이중편소설은,물리학자가발명한기술을통해과거를직접볼수있게된미래를배경으로동북아시아여러나라의‘역사갈등’을다룬다.‘현재의정부가과거의역사에영유권을주장할수있는가’라는대담한가정에서시작한이야기는다큐멘터리영화의형식을빌려각국정부관계자및학자,731부대희생자유족등의인터뷰를인용하며진행된다.과거를직접볼수있지만단한번뿐이라는점,또그시각적경험을기록할방법이없다는점은역사를둘러싼새로운갈등을낳는다.현재의권력자들은과거를마주하려하지않는다는비정한현실과그로인해과거체험기술이폐기되는결말을통해작가는‘현재를살아가는우리가과거에대해마땅히져야할윤리적의무’를이야기한다.작가는여러인터뷰에서이중편이‘스스로가장아끼고자랑스러워하는이야기’라고밝힌바있다.
무엇보다아이러니한점은,단지지어낸이야기로만끝날수도있었던이중편소설의내용이동북아시아각국의출판행태를통해현실로확장되었다는점이다.먼저일본의경우를보면,2015년과2017년에켄리우의일본어판단편집2종이출판되었다.이로써모두31편의중단편이번역출간되었지만그중에작가가가장아끼고자랑스러워하는이중편은빠져있다.다음으로중국의경우를보면간체자중국어판단편집4종을통해50편이넘는중단편(일부중복)이출간되었으며,그중에는이중편또한포함되어있다.그러나중국에서출판된간체자중국어판「역사에종지부를찍은사람들(퓾片:롒史之人)」은곳곳이삭제된불완전한판본이다.삭제된부분은‘마오쩌둥주석’,‘대약진운동’,‘3년대기근’같은단어가등장하는부분,즉중국공산당에비판적인내용이나오는곳들이다(타이완역사학자의인터뷰는아예통째로삭제되기도했다.).이로써동북아시아4개국가운데「역사에종지부를찍은사람들」을완전한형태로출판한나라는(중국이국가로인정하지않는)타이완,그리고한국이다.역사갈등을소재로한이야기가이런식으로현실에서기묘한생명력을얻는경우도드물것이다.
2012년휴고상과네뷸러상,시오도어스터전기념상의단편소설부문최우수상후보에올랐고,2014년이그노투상단편소설부문최우수상을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