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은 상처로부터 몸부림치며 바깥 세계를 새롭게 재건하는 데 다다른다. 그것은 결코 세상과의 합의점도, 한 인간의 합리화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처를 훼손하지 않은 채로 나아갈 뿐이다. 그 상처가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 궁금해 하는 사람처럼. 이토록 활달한 언어가 삶의 긍지도, 아름다움도, 그 흔한 희망도 경유하지 않고 영혼의 ‘몸부림’으로 읽히는 것은 “격하게 살아낼수록 격하게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시인의 새롭게 발명된 언어다.
“나는 매일 매일 결근한다”라는 선언이 그동안 ‘안쪽’이라고 내세울 수 있었던 세계의 견고함을 무너뜨린다. 더불어 “정신 나간 이들이 떼 지어 싸돌아다니는 곳이 바깥이라는” 사고도 박살내며 자신만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한다. 이 활달한 몸부림이 비로소 삶이 닳아간다는 절망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희망을 새롭게 합주하면서, 읽는 독자에게 묵직한 파장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유쾌하다고 불러볼 수 있는 시인의 ‘소망’은 아직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시집 『즐거운 바깥』은 어쩌면 아직 발을 내딛지 못한 먼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인이 기꺼이 ‘즐거운 외부’가 되고자 하는 것은 반복된 삶에 천착되어온 인간의 삶에 울타리를 거두는 일로 옮겨갈 것이다.
홍수연은 어둡고 불안한 내부에서 빠져나와 밝은 외부로 나가기를 소망한다. 10년 동안 정신의 고독 속에 살다 어느 날 아침 태양 앞으로 나아간 차라투스트라처럼, 그는 내부를 넘어‘즐거운’외부가 되고 싶어 한다. 넘어갈 대상이 없는 자는 초인(위버멘쉬 Ubermensch)을 꿈꾸지 않는다. 니체는 말한다. 나는 당신들에게 위버멘쉬에 대하여 가르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다. 그대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홍수연이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내부의 상처들이다. 랭보(A. Rimbaud)의 말대로“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우리들의 내부는 저마다 다른 상처들로 얼룩져 있지만, 홍수연이 지향하는‘즐거운 바깥’은 실상 우리 모두가‘소망하는 세계’의 모습이다.
?오민석(문학평론가·건국대 교수)
즐거운 바깥 (홍수연 시집)
$9.63
Choosing a selection results in a full page refr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