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달을 보는 사람 (김기찬 시집)

멀리 달을 보는 사람 (김기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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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고(忍苦)와 수심(修心)의 시학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수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기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멀리 달을 보는 사람』이 시인동네 시인선 173으로 출간되었다. 김기찬의 작품들은 기록은 기록이되 역사적인 그것이 아니라 마치 익숙하지만 낯선, 혹은 잘 알지만 생경한 지역의 지리지(地理志)처럼 다가온다. 일반 지리지가 특정 지역의 형세와 특징을 주요 기술 대상으로 삼는다면, 김기찬 시집의 시는 ‘변산’이라는 지역의 인물과 상품과 교류 등 생활상을 더 자세히 기술한 인문지리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저자

김기찬

전북부안에서태어나서울디지털대학교문예창작학과를졸업했다.2008년한국문화예술위원회창작지원금을수혜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바닷책』,『피조개,달을물다』,『채탄부865‐185』가있다.〈석정촛불시문학상〉,〈전북시인상〉,〈한국미래문화상〉을수상했으며,현재변산유유마을에서시창작지도를하고있다.

목차

제1부

눈꺼풀이라면몰라도ㆍ13/찻잔에매화가오면ㆍ14/참기름비명ㆍ17/오월ㆍ18/매미네철근공장ㆍ20/선퇴(蟬退)ㆍ22/바닥의높이ㆍ24/시골집은안녕하시다ㆍ26/멀리달을보는사람ㆍ28/밥심거룩ㆍ30/겨울수묵화(水墨畵)ㆍ34/청양ㆍ36/우리동네매미는모음으로운다ㆍ38/노릇노릇발록발록ㆍ40

제2부

나만모르는이야기ㆍ43/흰방ㆍ44/오래된집ㆍ46/씨할놈ㆍ48/어머니와호박잎ㆍ49/축일(祝日)ㆍ52/고요한고요ㆍ54/눈으로먹는밥2ㆍ56/씨감자ㆍ58/내몸의나뭇잎ㆍ60/집중하는지렁이ㆍ62/나만아는이야기ㆍ64/요양병원ㆍ66/순례의시간ㆍ68

제3부

36.5ㆍ71/부르면대답할거리에두고ㆍ72/가을골짜기에적벽강을들이고ㆍ74/너의가을이나의봄에게ㆍ76/숯불동백ㆍ77/누가또울러간다ㆍ78/울지못하는것들은다산으로갔다ㆍ80/변산마실길ㆍ82/미끈도마뱀ㆍ84/변산바람꽃1ㆍ86/변산바람꽃2ㆍ87/아내의기도ㆍ88/나는시간보다빨리간다ㆍ90/그대이름에밑줄그으면ㆍ92

제4부

직소폭포ㆍ95/늙다리총각고씨ㆍ96/격포(格浦)ㆍ98/깨꽃ㆍ100/간지럼타는나무ㆍ102/화무십일홍ㆍ107/내눈썹은변산이다ㆍ110/매미와초록구두ㆍ112/구암리고인돌ㆍ114/자갈들은자갈자갈웃는다ㆍ118/퇴고ㆍ120/지퍼ㆍ122

해설백인덕(시인)ㆍ123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시를일종의‘기록’으로이해하자면,미시사(微示史)의범위안에서다룰수밖에없다.그러면그기술이사람중심(기전체)이냐연대별변천(편년체)이냐일회성사건의구체화(기사본말체)냐를우선생각해볼필요가있다.아니,없다.한개인사를거대서사처럼기술양식까지바꿔가며기록할리가만무하기때문이다.그러나기록으로본다는관점은중요한함의가있다.그것은일정부분‘표현’의위력을무시하고,그장막안의사정에관심을기울이겠다는뜻이다.또한어떤변화의원인과현상까지다이해하고자하는바람의의지적표출이기도하다.
김기찬의이번시집의작품들은기록은기록이되역사적인그것이아니라마치익숙하지만낯선,혹은잘알지만생경한지역의지리지(地理志)처럼다가온다.일반지리지가특정지역의형세와특징을주요기술대상으로삼는다면,김기찬시집의시는그지역의인물과상품과교류등생활상을더자세히기술한인문지리지에가깝다고할수있다.제안하자면,인문이아니라육신(肉身)의지리지라고칭할수도있지않을까.물론이용어또한‘육체’라고하면‘정신’과의대비가너무두드러지고,‘몸’이라하면근친(近親)과의관계가휘발되는느낌이강해궁여지책으로붙인명칭일뿐이다.
시인이이지리지를기술,편찬하는이유는“삶을견딘다는것은마음을닦는일과같”(「멀리달을보는사람」)다는일반진리를널리알리고자하는목적과그자신으로서는“바닥의높이는얼마나아득한가.//이제겨우뒷짐지고멀리달을보게되었다.”(「시인의말」)라는사실확인때문으로보인다.인고(忍苦)와수심(修心)이같다는것은단순히표현의등치가아니라어떤인식의결정,어쩌면지혜의범주에속하는것이다.“아직몇십년은더올라야하는생의절개지”(「바닥의높이」)로,즉생을갑자기직벽앞에몰아세운김기찬시인의사태에먼저귀기울여본다.

마음을다치고맘조리하느라
몇년째눈시리게매화를들여다보지못했다
한사흘만딱사흘만조용히앓다가일어나려했으나
서너알의이빨이사리처럼쏟아졌다
그러는사이많은것들이안팎으로나를다녀갔다
뼈아픈절망이갔고,
치욕이왔고,
증오가갔고,
다시악에받친분노가치밀어왔고,
손가락이길어질대로길어진세상은나를죽일놈으로내몰았으므로
해변에밀려온통나무처럼마르거나젖은채로한시절을견뎌야했다
한번상한마음을다시일으켜세우기란
한주먹의모래알을씹기보다한말의소금물을마시기보다어려웠으므로
여러해가지나갔고내색은안했지만그녀의말도아프게잊혀졌다
-「찻잔에매화가오면」부분

어떤사건이있었나보다.사실,‘구체적사건’은아무의미도없다.그것은육신의심각한부상이나질병이아니라‘마음’을다친‘상심(傷心)’이었다.그래서“한사흘만딱사흘만조용히앓다가일어나”리라스스로요량했다.하지만사태는예상과는달리흘러‘절망,치욕,증오,분노’와같은어둡고억센감정들이“안팎으로나를다녀갔”던것이다.인용하지않았지만,시인이“몇년째눈시리게매화를들여다보지못했다”는진술은‘봄’이올때마다자학이라는방법으로그봄을견뎌내는것외엔도리가없었음을토로한다.
이작품에서“몇년째눈시리게매화를들여다보지못했다”라는부분은시인이시집뒤표지에적은“내가다시매화를보는데/내가나를보는데꼬박7년이걸렸다”는진술과호응하여최소한시인이스스로상심에서벗어났음을암시한다.나아가‘7년’이라는기간을‘선퇴(蟬退)’로치환하여이후마음을닦는삶의상징으로형상화해드러내는탁월한시적능력을보여준다.
아마도그‘7년’은“봄은피었다지는일이계속되었지만/바다를건너는나비처럼봄날의깊이를다건너기위해서는/더는비열해지지말자고,모든것이나의잘못이라고/나는나에게주먹가슴질을해대며쌍시옷의욕을내뱉어야만했”(「찻잔에매화가오면」)던시기였나보다.하지만견디고나니“7년막장의긴터널을뚫고날아간흔적”(「선퇴(蟬退)」)만눈물겹게남았다고시인은토로한다.이런인식은자학을통해서일시적으로해소할수있는슬픔이아니다.이제시인의슬픔은맹렬한울음에가닿아마음껏울수있는구원의슬픔을느끼는지경에이른다.이는“아무래도저질기디질긴울음끝은내생의밑바닥에가닿을것이다거기,내울음집인어머니지금도거적때기몸으로바싹풍화되어있을것”(「선퇴(蟬退)」)임을더는외면하지않는데서비롯한결과이다.
-백인덕(시인)

■시인의산문

내가다시매화를보는데
내가나를보는데꼬박7년이걸렸다.

서둘러먼길돌아온것처럼허기가졌다.
무슨이유로든누군가를지겹도록경멸할생각은없었다.

자꾸만하늘을올려다보게되었다.
평생괴로운몰골로살게될것같았다.

내가나에게내린형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