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랜 이웃의 문장들 (이희정 시집)

내 오랜 이웃의 문장들 (이희정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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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점묘법으로 펼쳐진 내 이웃들의 이야기
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로 등단한 이희정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내 오랜 이웃의 문장들』이 시인동네 시인선 180으로 출간되었다. 나와 이웃, 나와 타자, 나와 사물과의 교감을 통해 삶의 페이소스를 이끌어내는 이번 시집은, 이희정 시인의 오랜 습작의 역량이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으며, 젊은 시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신선한 안정감이 시집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시인의 산문

내 안에 없는 길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지나친 속도로 색은 지워지고
너무 일찍 사라진 그녀를 생각한다.
무수한 여름을 그렇게들 돌아섰다, 그렇다 해도

다시 여름이다.
저자

이희정

경남김해에서태어나대구교육대학원문예창작스토리텔링석사과정을졸업했다.2019년《경상일보》신춘문예에시조「스크랩」이당선되어등단했다.〈더율〉동인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꿈과꿈ㆍ13/최후의만찬ㆍ14/대화의기술ㆍ15/비,창ㆍ16/적막한이웃ㆍ17/보들레르평전ㆍ18/은화과(隱花果)ㆍ20/폭포의신화학ㆍ21/내시경의역설ㆍ22/인사ㆍ24/스크랩ㆍ25/여자傳ㆍ26/터널비전ㆍ28/벚꽃만남ㆍ29/시인ㆍ30

제2부

오원(悟園)을재생하다ㆍ33/책갈피의기분ㆍ34/눈높이우화ㆍ36/금달래ㆍ37/나의2월ㆍ38/봄,불면ㆍ40/짖고있다ㆍ41/고양이보법ㆍ42/피아노는죄가없다ㆍ43/72년생프로필ㆍ44/코스모스사회화ㆍ46/가끔씩나가기를누르고싶다ㆍ47/여름화법ㆍ48/냉장고를부탁해ㆍ49/함지박ㆍ50

제3부

방문객ㆍ53/절대로,라는말ㆍ54/아침일기ㆍ55/청동의시간ㆍ56/알코올성저녁ㆍ57/실리콘을떼어내다ㆍ58/화생방展ㆍ60/보부상,박씨ㆍ61/맞춤법검사기ㆍ62/어떤이력ㆍ63/미생의꽃말ㆍ64/노인의해변ㆍ66/완벽한방언ㆍ67/연민에부쳐ㆍ68

제4부

비대칭ㆍ71/도둑맞은날ㆍ72/손을그리는손ㆍ74/가을바게뜨ㆍ75/붉은콩빵ㆍ76/선물의질감ㆍ77/런치타임ㆍ78/곤드레읽기ㆍ80/해상누각ㆍ81/바라지ㆍ82/아마드의표류기ㆍ84/골목의플롯ㆍ85/아낌과궁상ㆍ86

제5부

건조기ㆍ89/아날로그감성카페ㆍ90/마더ㆍ91/일요일오후ㆍ92/빨래들ㆍ93/보온병ㆍ94/하회종가길ㆍ95/연천ㆍ96/공간의단상ㆍ97/피데기만장ㆍ98/아침,포구를지나다ㆍ99/어시장랩소디ㆍ100/아이덴티티ㆍ101/칸나ㆍ102

해설이강엽(대구교대교수)ㆍ103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시인이살금살금다가옵니다.고양이걸음입니다.“발자국도없이우울만찍고다녀요”(「고양이보법」)라말하죠.우울의근원은아마“겨울속”이거나“빈가지”일텐데요,여름속이거나무성한가지였다면그런걸음걸이는군더더기입니다.표시내고가서느긋하게먹고나오면그만일테니까요.그러나시인은“밥그릇물어뜯는개들을/무심하게지나요”라고말합니다.다먹고나서도성에차지않는식탐일듯한데,고양이는그런곳에눈을두지않습니다.
시인이시를쓰는자리가바로거기가아닐까합니다.늘무언가를갈구하는,그래서허기질수밖에없는,갈빗대가보이는고양이한마리가앞을지납니다.“흘린말줍는놈이임자,/보법아닌묘법이죠”라고무심히말하는가운데시인의비책(?策)이들어있습니다.흘린말을주울수있게되기까지,남모르게슬쩍취할수있을때까지숱한고비들이있었겠고요.또,고비가높으면골도깊겠고말도깊겠지요,아마.그래요,시인의고양이보법을,아니‘묘법(猫法)’을따라가보기로합니다.

가장좁은통로로가장깊게들어왔다

광경이아니라
전망이기다리는

누구든부분을사는것
전부란없는거야

폴리스라인을뚫고결핍을조준한다
모종의단서가숨어사는지층아래

소심한갈망을본다
전지적시점으로

이것은비극을엿보는한방식이다

수직의질문이
징후를파고들면

막다른무의식의말
아파도아프지않다
-「내시경의역설」전문

우리는언제나속을궁금해합니다.속을알수없는사람이라답답해하면서말이지요.그런데그답답함을풀기위해들어선내시경의시야에뜻밖의장면이들어섭니다.“광경이아니라/전망이기다리는”사람에게애석하게도전망이들어오질않는거죠.애써“폴리스라인”을뚫고“수직”으로내리꽂은내시경앞에드러나는것은허탈한“징후”일뿐입니다.그래서“아파도아프지않다”고뇌는지도모르겠습니다.
그러나이것은내시경의숙명입니다.작은징후로많은것을풀어보려는열망이,어쩌면어차피“전부란없는거야”라일러줄듯합니다.전부를알고싶지만부분에머물게될때누구나좌절합지요.문제는이좌절이상처로만남느냐도약의발판이되느냐의여부일것입니다.내시경에관한흥미로운내용이하나있는데,바로‘역설반응’이란겁니다.보통내시경검사를하기위해진정시키는약물을투입하는데요,소수의사람에게서는거꾸로평소보다각성이커져서과격한반응을보입니다.시인이란그역설반응이일어나는소수의사람이아닐까생각해봅니다.그래서“아파도아프지않다”는각성이더욱소중합니다.아픈지안아픈지도모르고지나는많은사람들에게,아파도안아픈척,남의아픔이내아픔이아닌척지내온지난시절들에작은고양이발자국이찍힙니다.그러나다행스러운것은,그아픔을아는순간,환자로확인되는것이아니라온전한삶으로한발나갈수있다는사실입니다.내시경의역설은그렇게우리에게구원의손길을건네줍니다.
이러한시인의눈은세상의아픈곳에두루미칩니다.취업준비생,공공근로노인,어렵게사는가족,떠돌이잡화상등등이그런예입니다.아직피지않은꽃을보며“언젠가,꼭,반드시”(「미생의꽃말」)꽃말을붙여주는가하면“쓸어도담기지않는/망각의파도”(「노인의해변」)로위무하기도하며,가난한집의문틈으로“초록이햇살을물고까치발로구른다”(「바라지」)며희망을잃지않게다독여주지요.“엔진은목이쉬어도/제갈길열며가는”(「보부상,박씨」)에서보듯앞의절망이채가시기도전에희망으로되치기를해냅니다.이는시인이예각화된시각못지않게,남다른온정을지녔다는한표징이겠습니다.
온정의눈길로길을나설때,보이는것이죄다안쓰럽습니다.군대가는아들을군사분계선에“부려놓고”는“긴장이부푸는고요와동요사이”(「연천」)를포착해냅니다.‘비무장’지대의‘완전무장’이주는아이러니입니다.피데기말리는포구를지나면서“철조망건조대마다만장으로내걸린”(「피데기만장」)으로읊는데요.납작하게펼쳐진오징어를만장으로표현한것도그렇지만,“먹빛의쓰라린내장/다비워내고널린몸”인오징어를“바람이뱉어낸해조음늑골에걸고”로어부아낙을병치한게절창입니다.피데기신세의오징어나,오징어를말리는아낙이나,그걸보는시인이나너나나나매한가지죠.타자의고통(passion)과함께(com?)할때,연민(compassion)이일고,그가운데들어앉은시인이라야온우주를울리게됩니다.
-이강엽(대구교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