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심장을 열어보고 싶은 (김호준 시집)

너의 심장을 열어보고 싶은 (김호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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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의사의 윤리와 시인의 윤리 사이에서
2014년 《시와사상》으로 등단한 김호준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너의 심장을 열어보고 싶은』이 시인동네 시인선 182로 출간되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격리된 자들이 늘어난 시대, 고통에 무감각해진 시대에 이 시집이 지닌 울림은 각별하다. 김호준의 시는, 고통에 무뎌진 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이 시대에 ‘죽음’과 대면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저자

김호준

1988년서울에서태어나2014년《시와사상》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충남대학교의학전문대학원을졸업했고,현재는을지대학교병원정신건강의학과레지던트4년차로일하고있다.

목차

제1부

달의기운ㆍ13/방안에서는무슨일이ㆍ14/삶은반쪽으로ㆍ16/내일은일어설수있을까ㆍ17/관(棺)ㆍ18/사막의파수ㆍ20/월경(越境)ㆍ22/중력1ㆍ24/중력2ㆍ25/해빙ㆍ26/치타델레의귀순ㆍ28/시참(詩讖)ㆍ30/제설ㆍ32/참례ㆍ34/심폐소생ㆍ35/미시ㆍ36/월경성기흉ㆍ38/들의장례식에는눈이ㆍ40/말ㆍ42/드레싱ㆍ44

제2부

해부1ㆍ47/해부2ㆍ48/해부3ㆍ50/해부4ㆍ51/해부5ㆍ52/해부6ㆍ54/해부7ㆍ56/해부8ㆍ58/해부9ㆍ59/해부10ㆍ60/응급실1ㆍ62/응급실2ㆍ63/응급실3ㆍ64/응급실4ㆍ66/응급실5ㆍ68/응급실6ㆍ70/응급실7ㆍ72/응급실8ㆍ74/응급실9ㆍ75/응급실10ㆍ76

제3부

어느집착ㆍ79/탑정호에묻다ㆍ80/무산(霧散)ㆍ82/금새ㆍ84/장미는세다ㆍ86/시집ㆍ87/정원사ㆍ88/위태(僞胎)ㆍ90/연가ㆍ92/다시(茶詩)ㆍ93/흔한기침약ㆍ94/탯줄ㆍ95/실조(失調)ㆍ96/코르사코프증후군ㆍ98/침습(侵襲)ㆍ99/월유(月幽)ㆍ100/아니마ㆍ101/사과ㆍ102

해설이정현(문학평론가)ㆍ103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인간은모두우연히태어나끊임없이먹고배설하다가병들거나늙어죽는다.사랑하고질투하고분노에휩싸이다가안도하는일을평생되풀이한다.인간은복잡한언어를사용하고,대부분동물보다긴생애를산다.인간들은서로돕고의지하면서도그만큼같은종족을차별하고억압하는존재이기도하다.그리고어김없이누구나죄를짓고살아간다.삶은,심각한농담과가벼운만담을닮았다.인간의신체구조는비슷하지만,삶은모두제각각이다.인간의유일한공통점은,생명이꺼진후쉽게썩어버리는단백질덩어리에불과한육신을지녔다는사실이다.김호준시인의첫시집『너의심장을열어보고싶은』에는곧썩어버릴인간의육체를응시하는자의한탄과연민이담겨있다.김호준의시집에는인간의죽음과고통을지켜보는‘의사의시선’과생명의한계를인식하는‘시인의시선’이불안하게공존한다.시적주체는날마다“병동침대시트마다겹겹이묻어둔얼굴들”을바라보면서병명으로치환되지않는그들의사연을“기도문처럼읽”(「참례」)는다.시집의1부에는시적주체가환자를마주하면서겪었던지치고무력한나날들이기록되어있다.

병동침대시트마다겹겹이묻어둔얼굴들이있다
가끔나는그언저리에쪼그리고앉아그들을꺼내고
기도문처럼읽는다
당신에게가는오늘이점점길어지겠지만
불운을메우고남겨진모서리를오래어루만진다
바다보다깊은어항을가져다당신을넣는다
시원한저녁을읊조리는당신을보며스스로를다독이듯재촉한다
병동에는가끔먼곳까지갔다가돌아오지못한자들이있지만
나는그들에게서어둠과어울리지않는계절에대해배우고
나이가들어가는시간과의공통점을찾는다
언젠가이별한친구들이보일때면
소박한노래가날아와어항의벽면을따라
눈물처럼움직인다
그렇게매일달라지는얼굴들이있고
나는당신과함께바다로떠날준비를하고있다
-「참례」전문

의사는질병을분석하고차트에환자의병명을적는다.그러나의사의차트에는개별적인주체가삶에서느끼는구체적인슬픔과고통은적히지않는다.“어려운글자들로가득한”차트안에서말들은“제자리를찾기위해발버둥”(「말」)친다.‘나’는그한계를절감한다.‘나’의직업은병든인간을치료하는일이다.그렇지만환자의환부‘너머’까지미처다가설수없다.병든인간을진단하는지식은죽어버린육신을해부하면서익힌것이다.2부에수록된‘해부’연작에는‘카데바(Cadaver,해부용신체)’를해부하면서느낀감정이적나라하게담겨있다.태어나서죽을때까지인간의심장은계속뛴다.심장의활동은생명의상징과도같다.반면움직임을멈춘채해부의대상으로전락한인간의심장은아무것도아닌사물에불과하다.‘나’는죽은자의심장을꺼낸기억을되새긴다.

나에게는오래전,죽은자의심장을꺼낸기억이있다.새로운것에대한발견은애초부터우리가원했던바가아니었으므로그심장또한새것이아니었음이분명하다.돌이켜보니거무튀튀한외연,체구에비해유난히도작았던크기를제외하고는특이한점이어디에도없었다.심장은누군가의기억도추억도울음도울림도아니었다.무엇도될수없는감정의끈이셀수도없어큰줄기에자잘한분지까지심장으로향하는길은다른생의누설일뿐이었다.
-「해부1」부분

죽은자의심장은“누군가의기억도추억도울음도울림도”(「해부1」)아니다.인체의구조와특성을암기하고,병명을파악해도,“산목숨들이죽어나가는것”을“나는막지못”(「해부2」)한다.인간의질병을공부하면서‘나’가느낀것은,질병에관한어떤지식으로도인간을완전히알수없다는사실이다.‘나’는숱하게“속절없이말라버린육체”(「해부5」)와“텅빈가죽속”(「해부7」)을들여다보지만,장기의구조와기능에대한지식으로는한때살아있었던자가느꼈던기쁨과슬픔,분노와불안등을알지못한다.
-이정현(문학평론가)

■시인의산문

생생하게도곧은당신의등줄기를따라내안에굴곡진그늘매만질때면수직으로선기둥은오히려휘어져보인다.꼿꼿함의한가운데를볼록하게만듦으로써왜곡됨을경계해왔을그런착시는모나지않은힘을빌려이끌어낸현명함이분명하다.오래도록감당해온비밀은과연어떤곡면의부드러움에있었던것일까.세상의이목이야잠시머물다떠날처지이지만나의눈은여태당신의허리께를떠나지못하고있다.어느시점부터우리는이무거운전망을짊어진채살아가야했을까.
가벼운하늘과맞닿은지붕에서땅에뿌리를내린디딤돌까지평안하다.아무런불만조차없다는듯당신은말이없다.어찌예전에는알아차리지못했던것일까.곡선으로서는결코다가설수없을것만같았던직선의고집,내가당신을만난것도따지고보면그무렵의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