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박윤근 시집)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 (박윤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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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상상의 자유, 생산의 시학
2015년 《문예바다》로 등단한 박윤근 시인의 첫 시집 『그러나 너무 늦지 않게』가 시인동네 시인선 185로 출간되었다. 박윤근 시인이 펼쳐놓은 이 시집을 읽어보면 상상력의 천국이고 자유의 유토피아임을 알 수 있다. 박윤근 시인은 초현실주의자가 아니라 초현실적 상상력의 소유자이다. 그의 기발한 상상력이 그려내는 화려한 그림을 보려면, 독자들도 새와 별이 되어 대척적인 공간들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

박윤근

전북부안에서태어났다.2015년《문예바다》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제12회〈수주문학상〉우수상,제14회〈시흥문학상〉대상을수상했다.《뉴스1》에이어현재《아시아투데이》호남본부부국장으로재직하고있다.

목차

제1부

달빛고삐ㆍ13/시조새ㆍ14/아쿠아맨ㆍ16/허방ㆍ18/도마ㆍ20/새발의문장ㆍ22/텃밭ㆍ23/삐비꽃ㆍ24/달빛감는고양이ㆍ26/스텝ㆍ28/각ㆍ30/쇄빙선ㆍ32/안녕,피시맨ㆍ34/귀제비집ㆍ36

제2부

사진ㆍ39/85호크레인나무ㆍ40/시간과둥근모자ㆍ42/칸나ㆍ45/감자꽃이피는것은ㆍ46/미늘ㆍ48/습(習)의통로ㆍ50/새의입술은ㆍ52/안단테ㆍ54/뾰족부리늙은새ㆍ55/흠집난안경ㆍ56/발자국무덤ㆍ58/거위벌레ㆍ60/제빵골목ㆍ62

제3부

빵위에쓰는편지ㆍ65/거울그림자ㆍ66/말티즈와아내ㆍ68/달빛족속ㆍ70/나무이름저장소ㆍ72/물방울퍼즐ㆍ73/바다의어원ㆍ74/청과물16호ㆍ76/비등점에대해ㆍ78/흰섬하나그리며ㆍ80/여름의끝ㆍ81/구피ㆍ82/구천동능금ㆍ84/쌀의무게ㆍ86/그녀의소금레시피ㆍ88

제4부

어둠한채ㆍ91/한때장미ㆍ92/장미와태양ㆍ94/날아라,골목ㆍ96/자전ㆍ98/단팥빵과바게트ㆍ100/협궤열차ㆍ102/등(腰)의감정ㆍ104/자꾸만별이생긴다ㆍ106/섬ㆍ108/1200령사과ㆍ110/신황조가ㆍ112/토르소ㆍ114/피아노포르테ㆍ116

해설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교수)ㆍ117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프랑스초현실주의의리더였던앙드레브르통(A.Breton)에게아나톨프랑스(A.France)와같은사실주의자는비난과손가락질의대상이었다.브르통은「초현실주의선언」(1924)에서사실주의를“순순하고단순한보고문체”의문학이라적시하고,“일체의지성적,정신적비약에자못적대적인”“개떼의삶”이라고야유하였다.초현실주의자들이볼때,가장한심한예술은현실의외양을있는그대로베끼는‘재현’의예술이었다.그들이볼때예술은(현실의)복제가아니라새로운세계의창조혹은생산이어야했다.브르통이볼때예술은“정신의가장위대한자유”를실현하는것이지현실의실증적재현이나메시지의노예가아니었다.그는“자유라는낱말하나가아직도나를열광시키는모든것”이라고백했으며,“오직상상력만있으면나는있을수있는것이무엇인지알수있다”고말하였다.
박윤근의첫시집『그러나너무늦지않게』는이런점에서상상력의천국이고자유의유토피아이다.그에게가장중요한것은“순순하고단순한”현실의재현을거부하고,현실을전혀다른언어로재가공하는것이다.그는분방한상상력으로범용한세계를파괴하고그폐허위에상상력의새로운집을짓는다.사물의실증적재현에익숙한자들에게그의시는잘읽히지않는다.그의시를이해하려면상상력의물꼬를자유롭게열어놓아야한다.사랑하는사람을안고고향하늘을훨훨날아가는샤갈(M.Chagall)의그림을실증적시선으로어떻게이해할것인가.당나귀와물고기가하늘을날거나악기를연주하는풍경을만드는것도상상력이고그것을이해하는것도상상력이다.이시집은자유로운연상으로일상의인과성을파괴한다.시인의언어적붓칠이시작될때,낡은관습의세계가무너진다.그러나상상력이있다면독자는그굉음속에서부활하는새의날갯소리를들을수있을것이다.불에타는죽은나무위로붉은화염의새가날듯,박윤근의언어는낡은재현의죽음위에서날리는꽃이다.

종이는모두둥근각의성채를입고있다
날카롭지만
달콤한수액을가진파인애플처럼,

가령,책상위저종이를
가로와세로반대각선으로수만번곱접으면
붉게물든저녁노을이나물방울을볼수있다
동화를들려주는별들과
풀잎끝풍경을모을수도,지을수도있다

하지만접는이의의도에따라
달리접히거나생략되는순간
멍든사과처럼흠집이생기거나구겨진채버려진다

어둠속,긴포물선을그리며
지구를스쳐지나는저유성도
실은우주의뭇별들과각을이루기위해
지상끝저모서리로내리는것이다

저녁별이가득앉은과수원,
또펀펀하게무슨축제가열리고있는지
입안가득침이고인다
문장의한쪽각이또불안하다

막계곡틈사이로
사과한알떨어지는참이다
-「각」전문

시인은(원할때면)아무때나평면을구체(球體)로만든다.“둥근각”이라는형용모순은상상력의왕자에게는거짓이아니다.평면의종이는둥근“파인애플”이될수도있고,잘“곱접으면”“붉게물든저녁노을이나물방울”,혹은별을바라보는풀잎의풍경이될수도있다.상상력의궤도에따라종이는“멍든사과”를만들기도한다.이렇게종이를자유자재로가공하는상상력이한바탕지나간자리에“과수원”이생기고거기에“저녁별”이내려앉는다.시인의공감각이성급한단맛을느낄때,“입안가득침이고인다”.이시는그의상상력이어떻게세계를재가공하는지,그독특한과정을잘보여준다.글이써지고문장이이어지는동안시인은메시지의전달에얽매이지않고자유로운상상력에자신을온전히맡긴다.종이가접히면서주름을만들듯이문장들이마주쳐둥근각을이룬다.모든만남은“각을이루기위해”존재한다.각과각이만나서하나의세계,즉“둥근각”이이루어진다.각들의만남은각의날카로움을어르고달랜다.각이둥글어지는것은,다른각을만날때이다.“문장의한쪽각”이“불안”할때,그각은다른각이필요하며,다른각을만나둥글어질때그각의불안은사라진다.그러므로시쓰기란평면을접어구체를만들듯,불안한상상의각들을만나게해서둥근각을만드는것이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교수)

■시인의산문

정상을가기위해서는희망이든우울이던바둑알처럼어느한쪽으로쏠려있는건위험하다고생각했다.언제나불안한온도와습도가손끝에잡혔다.

그곳을벗어나기위해액셀을밟았다.마음이먼저보낸풍경은이미마을곳곳에끼워져있다.오래전집에서내려간거위들은나를알아보고다가오기시작했다.양에서음으로천칭축이기울며그곳공기와가까워지고있었다.

내가본정상은내가사는도로위에서상당히가까운곳에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