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말씀들 (정성희 시집)

사라진 말씀들 (정성희 시집)

$10.25
Description
사라진 말씀들, 다시 소환하기
2005년 계간 《모던포엠》으로 등단한 정성희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사라진 말씀들』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54로 출간되었다. 정성희가 말하는 ‘사라진 말씀들’은 세상에 남겨진 자의 ‘가슴에 남은 그리움’이며, 그 그리움을 알아차리고 음미하는 일이야말로 시를 읽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누군가가 그리울 수 있음은 정성희의 시를 읽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될 것이다.
저자

정성희

시인
경북영천에서태어나2005년《모던포엠》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저서로6인동인지『한그루나무를심다』『궁궁이』등이있다.현재〈비익조〉동인과울산작가회의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꽃이피기까지13/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14/코끼리발등을읽다16/시절자화상18/달에게상처받은밤19/가해자가될수밖에없었다20/크리넥스티슈22/개누므새끼들24/그날나는노브라였던거야26/당신은손님인가요28/몸시질하다29/물억새32/깨어진찻잔34/밥전쟁35/업둥이36/무량한바위책입니다38


제2부

마른억새가살점을베어문다41/집은죽었다42/죄다가해자44/선운사엔사시사철동백꽃피더라46/부추께서물으신다47/내꼭꼭숨었지48/세상에서가장궁금한안부50/바다를심는아낙들52/증언53/수의입은나방54/하약국에서조제받은김치56/소가우는밤58/그때59/옥수수가걸어간다60/폐타이어62


제3부

나는엄마다65/달도앓는밤66/살갗이먼저그립다고운다68/이팝나무를바라보며69/대통70/엄마의부처72/평생걱정73/내게도만만한길이있다74/감자꽃이웃고있어요76/한그루나무가되셨네77/샘샘입니다78/어머니가살아있는집80/아버지의작별을보다81/사라진말씀들82/나는백수다84


제4부

조금가난할뿐입니다87/사랑의표절88/오동나무꽃그늘아래서90/봄날의기도92/개미는집을잃었다94/꽃의장례식95/물의혀96/고문98/돌풍앞에서99/죽음을돌보다100/뱀에게빼앗긴행운102/벌레먹은사과처럼103/그립다는것104/업구렁이106/바람이었으면107/무지개는사라졌다108

해설신상조(문학평론가)109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사라진말씀들』은정성희시인의첫번째시집입니다.총4부로이루어진이시집의1부와2부는장삼이사에해당하는다수의시적대상들이때론왜소하고때론천연덕스러운삶의주인공으로등장합니다.주목할건찰나의생을포착하는순간의시학이1부의주를이루고있다는점입니다.철학자들의말에기대자면세계의진실성을접촉하는일혹은세계의‘유동적전체성’을포착하는일은자기안에내재된인식체계를포기하고세계가전체적으로자신에게드러나도록기다리는일입니다.마음의텅빈상태가세계를있는그대로수용하는관조가매우비밀스럽고찰나적일수있음이그래서입니다.시집의2부는삶의진솔한양상들이보다극적(劇的)으로그려집니다.미리말씀드리자면이삶의양상들에는과거삶의방식이자연스러운형태로남아있습니다.매체에의해재현되는호들갑스러움에서비껴있는,자본과속도를지향하는시대현실이알고도모른척하는실제적삶의한축이기도합니다.3부에서는시인의모습이어떠한지를짐작케하는시편들이주를이룹니다.엄마로서의화자이거나딸로서의화자를통해우리는시인의개인적삶을함께경험하는행운을누릴수있습니다.삶의구체적일상성에바탕을둔보편적삶의양식화는거친노출과생생한형상화사이의미학적거리를유지할때,언제든주목할가치가있습니다.정성희의시는삶에대한애정과시의열정이빚어내는미적감각에의호소를통해삶의자명성이라는아픈속살에한겹,한겹부드러운치유의막을입힙니다.
흔히우리는시의본래적기능이삶의자명성을폭로하는거라고오해하기일쑤지만,삶의단단한껍질을거칠게벗겨내는것만이시의능사는아닙니다.우리를묶는틀로부터의일탈이아니라,때로는결핍과부재의일상으로귀환할줄아는시야말로진정의미와가치를지니기도하니까요.그래서이시집의마지막4부가세계에대한시인의수용이깨달음의형태로드러남은자연스러운귀결이겠습니다.문학이독자개인이나공동체내부와공명하지않는다면‘문학’이라는기표의존재적의미를무엇이라이름할수있을는지요.정성희의시는공허하고현란한이미지의재생을소비하는안락한삶으로부터벗어나인간이탁월한사유의주체임을정직하게드러냅니다.다음은크리넥스티슈두장에얹힌시인의사유가탁월한작품입니다.

각티슈두장이
오월햇살로눈부신
그늘하나없는심심한공터를뒹굴고있다
마치사랑놀음하듯붙었다떨어졌다
한몸되어한방향으로뒹굴다간떨어져
서로어긋난방향으로달아나듯
낮게날다멈추었다간또만나함께뒹굴고결국은
바람에떠밀려바람의방향으로움직인다
면밀히지켜보니
우리네삶이얼비친다그러하기에
떠돌다어느한계기로가시에걸려혹은
양지바른언덕에닿아자리잡게될때까지
겹겹장애물이앞을가로막더라도
혼자보다는이왕이면둘이한몸으로엉겨
활발하게사랑하며넘어보라고
주례사읊듯조용히생각을얹어보는순간
껑충껑충바빠진한생이내머릿속에서
바람의급물살을타고
족보에한획을그으며
행진곡에맞춰먼길떠날채비를한다
공터에널브러져길게누웠던고요가
눈부신하객되어
일제히손뼉치며일어선다
-「크리넥스티슈」전문

미국중산층가정의민낯을파헤치는영화〈아메리칸뷰티〉에는비닐봉지가바람에날리는장면이나옵니다.영화를본어떤이는감독이‘이것이야말로진정한아름다움이라고꺼내놓은것이바로비닐봉지’라고까지말합니다.예비역대령의아들릭키는캠코더의뷰파인더로세상을바라보는아이입니다.그의영상에찍힌것은바람에이리저리날리는비닐봉지로,그것은바짝마른낙엽위를무심하게떠다닙니다.바닥에앉으려다다시바람에일어서고,떠올랐다가다시가라앉는비닐봉지를보여주며그는친구에게이렇게얘기합니다.“그날난느꼈어.눈에보이지않는세상과신비롭도록자비로운힘을.내게두려울것이없다는걸깨우쳐줬지.너무나아름다운것들이존재해.이세상에는말이야.”라고요.영화는비닐봉지가바람에날리는소소한일상속평범한장면이진정한‘아메리칸뷰티’라고말해주는거지요.
릭키의캠코더뷰파인더안에비닐봉지가담기듯,시인의눈에들어온것은심심한공터에서바람의방향대로이리저리힘없이떠밀리는각티슈두장입니다.비닐봉지가자신과춤을추는것같았다고느낀릭키와달리,시인은붙었다떨어졌다하는각티슈두장이마치자기들끼리사랑놀음을하는것같다고느낍니다.시인은이두장의각티슈에인생을투영해봅니다.한몸이되었다가서로어긋나기도하고,세파에떠밀리듯바람의방향따라움직이다가시에걸리기도하는모습이영락없는인생의축소판으로여겨졌기때문이지요.시인은각티슈의움직임에인생을빗대어비유하는데서한걸음더나아가자유로운연상을펼쳐나갑니다.시인의연상에따라이제이작품의상황은두장의각티슈가수많은하객앞에서한쌍의부부가되어인생의새로운출발을알리는결혼식으로바뀝니다.시인은신랑과신부를향해“겹겹장애물이앞을가로막더라도”한몸이아니라둘이니“활발하게사랑하며넘어보라고”축사를읊습니다.급기야시의분위기는행진곡이흘러나오는등“바람이급물살을타”듯생동감이넘칩니다.급히하객으로동원된공터의고요가부부가된각티슈두장의앞날을축복하며일제히일어나손뼉을칩니다.각티슈두장에얹는시인의상상력이시를읽는우리에게흡족함과즐거움을안겨줍니다.문장을과시하거나낭비하지않고자연스럽게술술흘러나오는시상은신산한세상살이의경험과심미적인능력없이는펼치기어려운연상이고상상력이지요.
-신상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