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능합니다 (조영란 시집)

오늘은 가능합니다 (조영란 시집)

$10.21
Description
그렇게 슬픔은 생활로 나아간다
2016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조영란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오늘은 가능합니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195로 출간되었다. 조영란의 시는 슬픔이 문장으로 바뀌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삶의 기쁨으로 재탄생한다. 그렇게 슬픔은 문장이 되면서 생활로 나아간다. 그것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이자, 현재진행형인 삶에 대처하는 조영란만의 방식이다. 조영란의 슬픔은 문장 너머 또 다른 세계에 닿아 있다.
저자

조영란

서울에서태어나2016년《시인동네》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나를아끼는가장현명한자세』『당신을필사해도되겠습니까』가있다.2021년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창작지원금을수혜했다.

목차

제1부

이면지ㆍ13/몽상에가까운ㆍ14/당신이라는무늬ㆍ16/상상밖의불안에게ㆍ18/봄꿈ㆍ20/간주ㆍ21/슬기로운측만ㆍ22/싹ㆍ24/꾸준한생활ㆍ26/개별포장ㆍ28/손톱ㆍ30/고무줄놀이ㆍ31/오늘은가능합니다ㆍ32/나의산책ㆍ34

제2부

텍스트ㆍ37/오르간주법ㆍ38/보편적ㆍ40/눈부신역린ㆍ42/저녁무렵ㆍ44/생일케이크ㆍ45/플랫화이트ㆍ46/스마일마스크증후군ㆍ48/불면에기대어ㆍ50/혀ㆍ52/빈병ㆍ53/신용카드ㆍ54/발효커피ㆍ56/침묵활용법ㆍ58/방부ㆍ60

제3부

발칙한상상ㆍ63/곁ㆍ64/그림자ㆍ66/거기ㆍ68/당분간엘리베이터ㆍ70/이상한내비게이션ㆍ71/돛ㆍ72/마음은두고간다고했다ㆍ74/등ㆍ76/심부름ㆍ78/아카시잎하나씩떼어내듯이ㆍ79/대숲에서ㆍ80/뭐가들어있나귀를열어봤어요ㆍ82/구절리역ㆍ84

제4부

사랑ㆍ87/균열ㆍ88/솜사탕을녹이는밤ㆍ90/구간단속ㆍ92/꼬리ㆍ93/우산에게ㆍ94/꽉다문입들의노래ㆍ96/마르지않는샘ㆍ98/주름의이유ㆍ99/더딘알람ㆍ100/나프탈렌을생각하는밤ㆍ102/이탈ㆍ104/믿을만한경작ㆍ106

해설장예원(문학평론가)ㆍ107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어떤이가대체적으로무사한관계와일상을유지하고감정에휘둘려상처받고있지않다면,그것은둘중한가지이다.타자가나의삶속에너무깊이개입하게되는상황을미연에방지하거나본인이한없이관대한사람이면된다.그러나효율성과이해타산적인현대사회에서대체적으로전자가많을수밖에없다.우리는이미생존을위한균형감각으로타자를비롯한세계와자신에대한거리감각을수없이반복해서연습해왔기때문이다.효율성을최우선으로하는사회적분위기에서보이지않는과정과경험에대한가치는평가절하된다.우리는과정보다는결과를중시하고이때문에충분히성찰하는만큼드러내는것이아니라드러내는만큼만사유하고있다.각종SNS를활용하여생활의구질구질함은생략한,추상화처럼잘정돈된일상만을드러내보이는유행이이를증명한다.이러한현상은어떤측면에서자신감의표현이라기보다는오히려그어느곳에도안주할수없는불안의투영이다.또한투명하고청정한일상에대한집착은삶의시간적인서사들을생략하고젊음에대한과도한강조로나아간다.이는인간이언제나‘절정’의순간만을유지해야한다는그릇된욕망과환상을심어준다.그것은감정의표현에있어서도그대로적용된다.사람들은청정한생활만큼이나속된말로쿨하고심플한관계를유지하기위해자신의‘상처받음’을드러내지않고문제제기하지않는다.어쩌면“그건이별보다더잔인한일”(「마음은두고간다고했다」)일수도있지만누군가는끝나는순간까지관계의균열에대해어떤질문도하지않았음을다행으로여긴다.서로의차이를건드리지않고관계의거리감각을유지한채로관계를마무리하는것이다.
서로를불쾌하게만들지도모르는차이에대한안전거리를미리확보하는이러한행위의기저에는관계의균열로인한위기와불안을배제하려는의도가숨어있다.「개별포장」에서우리는이러한현대인의불안과그로인한단독성에대한역설을구체적으로파악할수있다.

저것은이데올로기다
아니다,저것은관계의역설이다

크루아상은걸핏하면부서지려하고
크로켓은설탕묻은꽈배기를꺼려하고
도넛은혼자열심히공허를외치고

과도한불안이과대한벽을세우듯이
개별이라는단어앞에서면자꾸포장하고싶은기분

너는너대로
나는나대로

경계와구분만이가능한세계에서
멀어진거리가불러온안도감을아름답다할수있을까

나는포장을뜯어내고빵들을한바구니에쓸어담는다

속을알수없는빵들이
너도나도아닌
우리가되기위하여
서로를끌어안는상상을한다

체온을나눠야하겠지만
짓눌리고부서지겠지만
-「개별포장」전문

조영란은타자와세계를변화시키는거대한일보다일상에서타자의차이를참아내는것이고통스러울수있다는사실을간파하고있다.그고통을회피하기위한가장쉬운방법은“너는너대로/나는나대로”개별화하여적당한거리를유지하는것.하지만그녀는이지점에서익숙한방법을뒤로하고“멀어진거리가불러온안도감을아름답다할수있을까”라고되묻는다.그리고스스로답한다.“짓눌리고부서지겠지만”,“너도나도아닌/우리가되기위하여”“서로를끌어안는상상”이라도시도해봐야하지않겠냐고.그녀는‘나는너다’라는당위를내세우지않는다.또한너도나도아닌“우리”를지향하면서도그것조차도우선“서로를끌어안는상상을한다”고말할줄아는타자에대한섬세한배려가있다.모두가‘서로를끌어안아야한다’고생각하지는않기때문이다.
강박적으로위기와불안을배척하는시도는고정된자아안에‘나’를가두는행위이며이는결국새로운‘나’를차단하는태도이기도하다.위기를감수하지않겠다는것,혹은불안을보유하고싶지않다는것.그것은달리말하면내가아닌타인의공간을남겨두지않겠다는의미이다.물론이러한단독성만추구하는태도를우리는이해한다.그러나그사람을안쓰럽게여기거나걱정하지는않는다.세상의기준이“세워둔벽”앞에서시름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경계를지우려는“환한일”을시도하는이에게우리의감정은흐르게되어있다.그리고그러한“용기를주고받았”을때“미래로통하는곧은선과길들이있는문”(「오늘은가능합니다」)이열리는우연의기적은발생한다.
-장예원(문학평론가)

■시인의산문

소중한것들을지우며슬픔의자리를만들어야하는어쩔수없음이있다.그어쩔수없음이나를여기까지오게했다.
설명할수없는것들을가슴속에밀어넣고최선을다해봉인했던순간들이잔상으로남아나를괴롭혔다.그것들을꺼내쓰고지우고덧쓰며황홀한계절을앓았다.이제나는아무것도꿈꾸지않는행복을꿈꿔도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