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너에게로 진다 (김병해 시집)

오늘은 너에게로 진다 (김병해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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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정시를 읽는 윤리
2010년 《서정시학》으로 등단한 김병해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오늘은 너에게로 진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198로 출간되었다. 김병해 시인은 서정의 극단으로까지 치달으며 서정시를 지키고자 하는 시인이다. 자기 표현의 발화인 서정시가 그의 독백에 그치지 않고 외부로 반향하는 것은 이것을 듣는 이가 있어서다. 그의 목소리가 공허하지 않은 것은 삶의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시의 본류라 믿기 때문이다.
저자

김병해

대구에서태어나2010년《서정시학》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그대가나를다녀가네』가있다.〈미래서정〉동인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생선ㆍ13/꽃ㆍ14/수렁ㆍ15/눈으로들어온그대ㆍ16/무게의호기심ㆍ18/변신에대한몽상ㆍ19/적소일기(謫所日記)ㆍ20/슬픈것들의감옥ㆍ22/미안ㆍ23/어둠도상속된다면ㆍ24/어떤위로는저녁이다ㆍ26/입춘ㆍ27/북을돋우다가ㆍ28/의자ㆍ30/재회ㆍ31/무한화서(無限花序)ㆍ32

제2부

동백ㆍ35/덫과닻ㆍ36/중이염ㆍ37/누군가를물들인다는건ㆍ38/유품ㆍ40/앉은뱅이꽃ㆍ41/그리움의생김새ㆍ42/한식(寒食)ㆍ44/삭망(朔望)ㆍ45/모듬살이ㆍ46/철새ㆍ48/홀연,봄꽃ㆍ49/지나가고있다ㆍ50/지금아니더라도ㆍ52

제3부

달빛문장ㆍ55/홍매화,화엄이불콰하다ㆍ56/혁명이그러하리ㆍ57/잔치국수ㆍ58/몸ㆍ60/완벽한통역ㆍ61/커피미학ㆍ62/병법(兵法)ㆍ64/어둠길ㆍ66/세월ㆍ67/못갖춘마디ㆍ68/미운평등ㆍ70/통증ㆍ72/활어회ㆍ73/지하철,혹은묘비명ㆍ74

제4부

아침고요ㆍ77/순긋ㆍ78/봄은늦어서ㆍ80/들ㆍ82/우주정거장ㆍ84/신동역연가(戀歌)ㆍ86/상강(霜降)무렵ㆍ88/화병(花病)ㆍ90/쑥대밭ㆍ91/감꽃,진다ㆍ92/유월텃밭ㆍ94/콩나물기르기ㆍ95/수화(手話)ㆍ96/대낮의홍두깨ㆍ98

해설김효숙(문학평론가)ㆍ99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삶이란막막한것이어서세속사들조차번번이난감하다.숱한질문을던지며살아왔으나점차궁금증이사라지면서이미‘지식’이된것을지키기에바쁘다.이것이야말로삶이부실해지는조짐임을모른채‘앎’을숭앙하게된다.번연히살아있는오감으로도다알수없는세계를후경에두고,보이지않는것은믿지않겠노라는현실주의자들은세속에서의안정과행복을최상의가치로여긴다.과거를추억하는시간속으로밀려나살다보면미래를꿈꾸는일이허황하게여겨지기도한다.
인간은어째서앎과지식의절대성을신뢰하는가.관념으로만진리를궁구하는학문의능력안에서자신을포위한문제를벗어나려는시도를하는것일까.이것이야말로차갑기짝이없고추상적인데말이다.하지만시인은이와다른방식의삶을기꺼이살아간다.비논리의정서를지닌채방황하고,현존재로서충실한삶에머물지않고저너머의‘다른’삶과세계를갈망한다.오히려학문을망각할때,식자의언어를부술때비로소시언어를만난다.시인은학문과대결하지도등거리를두지도않으면서삶의진실을사유하고,학문의힘을빌리지않고도독해할수있는순연한시언어를창안한다.자문자답하는형식속에서끝없이난처해지고초라해지고슬퍼지는사람이시인이며,이러한감정이지속하지않기를바라면서답을써보는것이시작(詩作)이다.
김병해시인은『오늘은너에게로진다』에서무수한삶의질문들을껴안고있다.방향성이없는사유를펼치고이것이막막함으로이어진다할지라도바로그곳이‘시’의자리임을그는잘알고있다.답을찾으면서답을잃어버리고,방황이필연인삶을이어가는중에어떤말이시가되어나타난다.시인의사소한일상사와내면풍경을간접경험하면서감동하는것은시인의언어에서우리의비루함ㆍ불량함ㆍ초라함을발견했기때문이다.이것이서정시가지닌능력이며,그러한시를읽으면서어떤불편을느끼는것이서정시를읽는이의윤리다.
김병해시에서는기표로나타나는비유나수사를찾아보기어렵다.흔한직유법조차섣불리쓰지않는그의시는그자체로하나의비유다.누구나읽을수있게쉽고간결하게우리말을운용하면서리듬을살리고,바닥까지닿았다가상승하는정서를그려나간다.재래적경험을환수하는일에빠져있지않고부단히현실을돌아보면서자연스러운시언어를구사한다.서정이그대로시가되면서시인이보유한문제적인시각이자연스레드러난다.

새들도반기는가지를가려서앉고
나비도기다리던꽃을찾아서난다
다녀가며발자국남기는일없고
다시오마기별먼저넣는일없이

꽃대궁눙치는눈흘김외려몸달아
일면식의통성명도반갑기만하여
스적대는바람으로휘고곧음저울질하고
아슴한향기의편편으로꽃소풍가늠되는

꽃차례누일막다른허공에도
뭉클하니옹근문장한줄내걸줄아니
이만하면삼천대천이승의업
무량겁도너끈히건널만하려나
-「무한화서(無限花序)」전문

이렇게농익은서정을우려내는시야말로독자일반이기다리고반기는시가아닐까.시인의언어가주관적이라할지라도그때의감흥을나의것으로객관화할수있는동일시는서정시가지닌구심력에서온다.지금읽는김병해시를이성복시론에의탁하려는이유도이러한점에기반한다.잔잔한서정의파문속에서자기성찰의계기를만드는일이야말로서정시를읽는이유일테니까말이다.
이성복시론집『무한화서』(2015)에이어김병해의「무한화서(無限花序)」가앞서거니뒤서거니세계의진실을각기다른형식에담아낸듯한시다.김병해시를이성복시론의메타적수행으로보더라도심히어긋나는발언은아닐거라는얘기다.『무한화서』0장에서‘구심성ㆍ추상ㆍ거룩’의기표,‘원심성ㆍ구체ㆍ비천’의기표들을등치하면서제시한시론의방향성을시적으로변용한것으로읽게된다.앞의기표들은무한화서에,뒤의기표들은유한화서에속한다고보면될듯하다.
이렇게만보더라도무한화서는유한화서를초극하는시론이다.구체적으로알고있는지식으로부터알수없는세계로진입한다는것이이성복시론이다.이는외부로의확장이기보다내면으로수렴하는세계이해의방식이다.이성복이쓴대로옮겨보면“구체에서추상으로,비천한데서거룩한데로나아가는시”가무한화서다.그리고이것이번번이“언어로표현할수없는것을표현하려다끝없이실패하는형식”으로귀결된다는것이그의시론0장의핵심내용이다.
위의시에한정해서보면꽃대궁에꽃이먼저피는자리가아래쪽이냐위쪽이냐의차이로시론을마련한이성복과,“꽃차례누일막다른허공”에서“뭉클하니옹근문장한줄”이피어나는기대를품은시인의정서는한곳에서만난다.문장을쓰는자리도꽃의자리처럼“허공”일수밖에없는이치,무한공간을마음속으로안아들여한줄문장으로표현하면서다시금드넓어지는시적수행.이것을“이승의업”으로여기는시쓰기는김병해가쓴대로지금이곳에서의“업”이다.따라서‘삼천대천ㆍ무량겁’을건너왔을시인이쓰는문장한줄이란것은우주를내면으로들여한줄로압축한것과다르지않다.광막한허공에꽃자리를마련하는마음으로문장을피워올리는시인의과업이자연을닮은것은여기에기인한다.또다른시에서도시인은허공에뜬달을두고“왕복으로궁글려읽어넘기는데/꼬박한달걸”(「달빛문장」)렸다면서세계이해의방식을“한문장”으로압축한다.이렇듯구체적인사물에서시작하여추상으로나아가는김병해시를이성복시론‘무한화서’로이해한다해도무리는없을듯하다.
-김효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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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산문

잎틔우는아픈날들을견디느라
오지도않은사랑이떠났다.
이로써나는
사람들이나를통과해서지나가기바란다.

고향으로가는길은모두추억이어서
슬픔은번번이생각을놓친다.
외롭지않은나를만나기위해
이제함부로한껏절망해야지.

강장동물이입으로배설하듯
꽃잎지우며
시를뱉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