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엄마에게 한숨을 선물했을까 (안문 시집)

누가 엄마에게 한숨을 선물했을까 (안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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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엄마라는 철학’의 근원
2014년 《한국작가》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안문 시인의 첫 시집 『누가 엄마에게 한숨을 선물했을까』가 문학의전당 시인선 362로 출간되었다. 안문 시인의 정서적 건전성, 또는 강한 서정적 회복력은 ‘엄마’라는 존재의 근원이 아직도 생생하게 건재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함의한다. 그것이 대지와 결속된 생명의 시작을 결코 멈추지 않을 안문 시인의 시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저자

안문

전북정읍에서태어나2014년《한국작가》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현재평택문인협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누워서침뱉기13/메르스14/목련15/양은도시락을추억함16/절벽위의진달래18/새벽의전철역19/두엄내던날20/때늦은후회22/빗자루23/뒤란풍경24/마루26/신발28/숫자129/분리수거함30/등32


제2부

우슬35/어느여름밤36/저물녘38/고구마두지40/엄마라는철학41/빨간커피포트42/은사시나무44/옛집46/엄마의아침47/땅비싸리48/즐거운벌금50/어머니의새참52/당신에게가는날53/동심원54/초옥56/이홉들이58


제3부

흰머리61/할미꽃62/생일파티64/사월의비66/시래기67/시집보내야지68/요양원의봄70/유월의찬바람72/곰국73/응급실에서74/꽃접시76/느티나무77/출근버스를타면78/이파리80/장날81/당신82


제4부

유월85/속리산86/고성산산행88/영인산의봄90/소군산을바라보며91/진위천의가을92/안성천쉼터94/궁안교96/썰매기차98/봄은99/까치야100/미나리예찬102/은행나무애수104/춘설105/꽃과함께106

해설백인덕(시인)/107

출판사 서평

시는재현의양식이지만기억과상상을바탕으로대상을상황에맞춰변주한다.또한지극히평범한나무한그루를낡은관념에서건져올려감정이살아움직이는고향의생생한표상으로만들기도한다.사물만이아니라개념도마찬가지다.단순히이해하고마는대상이아니라공감의지평에펼쳐진선택의갈림길이되게한다.‘모성은존재의근원’이라는명제는궁극의진리를함의한다.부정하거나토를달기어렵다.하지만이명제를이해하기위해서는‘모성’이라는단어가품고있는의미를알아야한다.또한존재,근원이라는단어의의미도정확하게파악해야한다.거기서끝나는것이아니라조사의격(格)을파악해야하고,문법적으로주어부와서술부의역할도고려해야한다.그렇다고해서이명제의표면적이해가끝나는것이아니다.이명제의‘모성’은곧바로현실의‘엄마’로,‘존재’는‘나(주체)’로치환되지않는다.개념을구체화하기위해서보편성이라는질긴껍질을찢는개별화의수고가또필요하다.즉,모성의전형과모든존재가필요한것이아니라현실의엄마와주체로서의나의관계,그관계를특정할수있는사건,특별한구체적인시공간이있어야만한다.시는이‘시공간’을현재의필요에따라시작의순간마다재설정한다는점에서창조적재현이다.
안문시인은지상의표상에충실하다.이말은일차적으로자신의기억과체험을주요모티프로하여그형상화에힘쓴다는의미이다.나아가감정적동요가일어날수밖에없는여러사태를회상하면서도복잡하고어두운내면으로도피하거나절대자나운명,규범(체계)등에의지하여초월하려는경향을보이지않는다는뜻이다.오히려안문시인은‘모성’을중심으로‘고향,밤,깊이를간직한집,지혜와생기(生氣)를보여준자연’등의원형적의미를지향한다.시인은묵묵히‘엄마라는철학’을사유하고수행하면서단독자,개별존재라는지상의한계를스스로극복하고보편적‘모성’에새로운형질을추가하며작품을형상화하고있다.

산기슭이나버려진무지에서자라는덩굴성식물이라오
잘가꾸어진꽃밭이아니어도반지르르하게길을내고남은자투리땅
길과길이만나면서생기는구석진곳
바람타고온쓰레기들이모이고뒤처진빗물이모인
웅덩이근처에서도핀다오
5~6월에보라색으로핀다오
내어머니꽃이라오
대지의손바닥굳은살에서피는꽃이라오
어머니손등성긴주름살에서피는꽃이라오
-「출근버스를타면」부분

시인은엄밀하게‘모성(母性)’과‘모정(母情)’을구분하지않는다.본능에따른의지적행위와정감의흐름을특별히구별해야할필요를느끼지못하는것이다.이는사랑을내리받는위치와내려주는위치가시간이흐르면자연스레갈라지기때문에의식적으로주의를기울이지않아도되는문제인셈이다.이두위치에서화자는‘출근버스’를타는여성으로등장한다.이작품에는‘통복시장’,‘궁안교’라는지명과“봄꽃들의잔치가끝나고꽃의여왕장미가피기전”이라는‘보라색꽃’의개화시기도명기되어있다.상상이아니라현실에서,기억이아니라관찰을통해,비유적매개물에서어머니의모습을발견했다는것을강조하기위한시적장치로보인다.‘산기슭’,‘무지’,‘자투리땅’,‘구석진곳’,‘웅덩이근처’로열거된개화장소는화려하지않은꽃의외형과잘어울리기도하지만오히려강인한생명력을가졌다는의미를함축한다.그래서시인은그꽃을“내어머니꽃”이라단정할수있고,“대지의손바닥굳은살=어머니손등성긴주름살”의등가성,즉모성이라는대지에서발현한다는것을자연스럽게유추할수있다.

택배가왔다
상자를열자마자봄이쏟아진다
냉이민들레돌나물여린쑥들이
한보따리씩들려나온다
보따리풀어주니봄의향기들이
집안을마구돌아다닌다
마지막에들려나오는청국장한덩어리
구수하고퀴퀴한냄새가
엄마라는철학을대신전해준다
마당의수선화가노랗게꽃을피웠으니
보러오너라,한번다녀가거라
엄마의삐뚤삐뚤한글씨가한쪽에자리하고있다
암탉이봄기운에알을쑥쑥잘낳는다는말은
추신처럼적혀있다
봄햇살이익어가는장독대위에서
나풀나풀나풀거리는머릿수건이
나의두눈에어룽지는봄날이다
-「엄마라는철학」전문

일상에서시간은늘균질적으로우리를스쳐흐르지만,계절의변화는그시간의‘때’의알림을통해자각되지않는다.계절은그존재가원초적으로귀속하는지상의물질표상의변화로스스로드러난다.누구는물색의바뀜과산그림자의깊이를,어떤이는바람의냄새를통하겠지만대개는대지의종속된존재로흙의생산물을기준으로삼는다.시인은이미그대지와물리적,심리적거리가있는상황이지만,“택배가왔다/상자를열자마자봄이쏟아진다”라고느낄수있다.그거리가지나치게딱딱하게굳어버린것이아니라서시인은집안을마구돌아다니는‘봄의향기’들만으로도대지와의연대를쉽게회복할수있다.이런회복력은시인의기억이트라우마의저장소가아니라생기가깃든곳간이라는사실을반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