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 (이태숙 시집)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 (이태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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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슬픔과 재생의 언어
2016년 《열린시학》 등단 후, 2020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을 수상한 이태숙 시인의 첫 시집 『아직은 살아있다는 말이 슬픈 것이다』가 시인동네 시인선 208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사랑을 잃은 슬픔과 그로 인한 상실을 견디면서 재생과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한 시인의 일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잃은 후에 무너졌던 세계를 다시 복원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는 슬픔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잠 속을 날마다 걸었다. 당신을 만나면 이제 그만 집에 가야지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대답이 없다면 함께 울어야지 생각했다. 날마다 슬픔은 찬란해지고, 지금을 견디는 것이 삶과 화해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을까.

시를 쓰면서 먼 곳이 더 멀어지는 방식으로 가까워졌다. 그래서 나의 말은 지금도 자꾸만 기울어진다. 슬픔이나 폐허도 무언가에 기대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 미워할 수 없었다.

내가 나를 만지면 자꾸만 만져지는 내가 있고, 자꾸만 사라지는 내가 있으니, 나는 꽃잎처럼 떨어지는 중일지도 모른다.
저자

이태숙

충남아산에서태어나경기대예술대학원독서지도학과석사졸업했다.2016년《열린시학》으로등단했으며,2020년《매일신문》시니어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소ㆍ13/잃어버린말ㆍ14/잎에서입으로ㆍ16/흔적들ㆍ18/바다와나비ㆍ20/그림속에서는여전히눈이내리고ㆍ22/감바스ㆍ24/계란의세계ㆍ26/떨어져도된다고말해주었어야했다ㆍ28/빙하의잠ㆍ30/새ㆍ32/슬픔의출처ㆍ34/겨울자작나무숲에서ㆍ36


제2부

드림캐쳐ㆍ39/국화차ㆍ40/배웅ㆍ42/생각카페ㆍ44/밤의바다에서ㆍ46/조우(遭遇)ㆍ49/섣달하현을품다ㆍ50/손가락을만져본다ㆍ52/손톱ㆍ54/예보ㆍ56/달개비의생ㆍ58/어떤울음ㆍ60


제3부

오늘의마음ㆍ63/틈의목소리ㆍ64/구두를읽다ㆍ66/금지된재현ㆍ68/불면ㆍ70/기억의지속ㆍ72/봄밤ㆍ74/살을쏘다ㆍ76/안경ㆍ78/오전10시의여자ㆍ80/오지(奧地)ㆍ82/골목의탄생ㆍ84/11월잎들에게ㆍ88/꽃이한번더크게울었다ㆍ90


제4부

파놉티콘ㆍ93/노을ㆍ94/눈물의온도ㆍ96/볕뉘ㆍ98/복수초마음ㆍ100/오로라를찾아서ㆍ102/어떤마라토너ㆍ104/둥근모서리가아름답다ㆍ106/화엄사흑매(黑梅)ㆍ107/엄마라는말ㆍ108/일몰후ㆍ110/황금편백의울음ㆍ112/폐차장가는길ㆍ114/누군가의안부ㆍ116

해설이정현(문학평론가)ㆍ117

출판사 서평

상실을견디는자는다양한증상을보인다.증상중가장심각한건언어의한계를자각하는일이다.상실을표현하는언어는언제나결여를동반한다.상실을온전하게표현하는것은가능한가.슬픔을위로하기에정확한언어는없다.그러므로상실을겪은자는견딤의시간을통과해야만한다.이태숙의시집『아직은살아있다는말이슬픈것이다』에수록된시들은,견딤의시간을통과하는자의내면을담고있다.시적주체는“사는일은늘조금은기울어져야하는일”(「잎에서입으로」)이라는사실을아프게자각한다.“비문처럼해독되지않는”(「바다와나비」)나날속에서“마음과마음사이”(「그림속에서는여전히눈이내리고」)를떠돈다.주변의대상들은모두상실을되새김하는매개체가된다.냉동새우를해동하면서“끝내펴지지않는생활”(「감바스」)을곱씹고,계란을손에쥐면서“온도가없는세계”(「계란의세계」)를떠올린다.이런은유는마치해독할수없는비문과도같다.시를읽는사람은상실을오래견딘자의쓸쓸한내면과마주한다.시적주체는거미줄에매달린빗방울에자신을투영한다.

거미줄에매달린빗방울흔들린다
얼마쯤견디면떨어질수있을까
견딤이떨어짐을위한것이라면
나는너무오래견뎌왔다

빗방울은말이없고
나의궁리는더욱무겁고둥글어진다

그런것이다
둥글어진다는것은빈칸없이견딤을채우는것

그모든궁리가다했을때
비로소툭놓을수있는마음도없이
나는일찍이세계로부터떨어져나온빗방울
뭉쳐진빗방울을보면
그만떨어져도된다고말해주었어야했다

거미줄에매달린빗방울흔들린다
저오랜질문에대하여
아직도다하지못한대답
나는지금도둥글게뭉쳐지고있다고
그때로부터지금까지이렇게흔들리고있다고

빗방울은나의또다른얼굴
떨어지지않고점점추처럼매달린다
밤보다더무겁고더어둡다
친절해지지않은이세계의밤
나는나에게그만떨어져도괜찮다고말해주었어야했다
-「떨어져도된다고말해주었어야했다」전문

낙하하거나그자리에서서서히사라질운명인물방울을보면서시인은“빗방울은나의또다른얼굴”이라고말한다.거미줄에매달린물방울은곧떨어지고말것이다.‘나’역시그러하다,하지만아무도“떨어져도된다”고말해주지않는다.1부에수록된시에는삶의유한성을자각한자의회한이가득하다.그것은“살아지는걸용서할수없어서걷는”(「새」)행위로압축된다.살아있는것들은상실을피할수없다.삶이유한하고,일회적이라는사실은양가적이다.다수의사람들은삶의유한성을필사적으로외면하는길을선택한다.그래야만슬픔에매몰되지않기때문이다.이선택에망각은필수적이다.그들은낡고,몰락하는것들과거리를두면서삶이유한하다는사실을망각하고자한다.반면시인은망각과거리를두면서“차곡차곡쌓인슬픔”을응시한다.
-이정현(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