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 사이로 빠져나가는 저녁처럼 (장서영 시집)

눈꺼풀 사이로 빠져나가는 저녁처럼 (장서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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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람의 온기가 묻어나는 시
오랜 습작 기간을 거쳐 절치부심 끝에 촌철살인의 시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난 장서영 시인의 첫 시집 『눈꺼풀 사이로 빠져나가는 저녁처럼』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65로 출간되었다. 장서영의 이 시집은 그리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면서,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시가 삶이 되고, 사람이 시가 되는 세상을 꿈꾸는 장서영의 시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고, 따뜻해서 좋다.
저자

장서영

충남논산에서태어나고자랐다.우석대학원문예창작학과석사과정을졸업하고,2023년충남문화재단예술지원금을수혜했다.현재김홍신문학관에서근무하고있다.

목차

제1부

오른쪽미술관13/옥탑방안타레스14/벚꽃크레바스16/트리플A형의연애학개론18/청년M은1+1을좋아해20/다락방달팽이21/그리운모든것은바닥에눕는다22/지문연대기24/하늘소와B61226/노란분노28/골목우화(寓話)29/1309호에는코끼리가산다30/겨우살이32/동거34/골목사용설명서35/모사36/물살에뼈를묻다38/K살롱40


제2부

정전43/새들이사라진봄44/19금詩의세계46/궤적48/뜨거운충고49/스콜플링50/데칼코마니52/거울54/기침을뼈에묻는다55/아름다운뻔뻔56/적도에서온버스58/그녀를고발합니다60/그끝에서운다62/벽장속에사는남자63/손님구함64/록산느의탱고66/꼬리뼈의기원68/싶다70


제3부

붉은지네73/꽃도둑74/그속은어땠을까76/쿵78/수상한눈물80/돼지감자81/자장면먹으러가요82/아버지난닝구에는배추벌레가산다84/어제는문밖에서잎맥의숨을읽었다86/깨터는여자88/신혼89/자전의내력90/워낭소리92/슬픔은방지턱이없다94/미안한사람96/시작(詩作)98/사람을보내고100

해설문신(시인,문학평론가)/101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뒷면’이라는삶의기원

장서영시인의시는존재의뒷면을그려내는데성공하고있다.전면에나설수없는것,전면이될수없는걸시로탄생시켜내는것이다.알다시피뒷면은쉽게발견되지않는다.우리가사물의뒷면이라고생각하는부분은시선에노출되는순간전면으로탈바꿈해버린다.뒷면은언제나응시를회피하면서전면을부각해낸다.특히자기의뒷면이그렇다.우리의시선은우리의등을바라볼수없다.신이인간을그렇게만들었다고한다면그럴만한신의뜻이있을것이다.인간스스로자기등을볼수없는방향으로진화해왔다고믿는다면,거기에도나름의이유가있을것이다.나는그것을존재의수수께끼라고부르고싶다.
수수께끼는존재가우리에게던진물음이다.그리고존재물음은“반쯤덜어낸심장에새살이돋”(「1309호에는코끼리가산다」)는것같은비극적재생을동반한다.이때비극적재생은존재의뒷면에주어진운명같은이름이다.존재의뒷면은언제나자기를소멸하거나덜어내는방식으로존재의전면을형상화한다.우리가응시하는세계는이렇게상실된뒷면이비극적으로재생된형식이다.그래서우리는전면을응시하지만,시는언제나응시되지않는뒷면을발견해낸다.
장서영시인이“목젖을훑으면/폐부에서부터그을음이묻어나왔다”(「정전」)라고한건비극적재생의훌륭한사례가된다.‘그을음’은한생명이격렬하게살아숨쉬었다는흔적에해당하고,존재는그을음을태우는방식으로삶이라는존재를입증해낸다.장서영시인은스스로살아있음을증명하기위해‘목젖’을더듬지만,삶은‘그을음’의형식으로이미소진된상태다.이렇게삶이소진되어버린그을음에서장서영시인의시가태어난다.

다섯시와여섯시사이오른쪽뺨을묻는다
저녁이그리움을몰아간다
기우는쪽으로고개를돌리면우거진숲마다그림자가술렁거리고
여자는물감이마르기를기다린다
마른물감위에는또하루가덧칠될것이다
월경도매달덧칠되는초경이었을까
덧칠될일없는몸이자주울고
어제까지의삶에흰색을또바르면
새로운인생을시작할수도있을것같다
그러므로다섯시에서여섯시까지를붓의일대기라고하자
우리의호흡을붓질이라고하자
다섯시에서여섯시까지
노을은해지는풍경을덧칠하고어둠은한낮의변명처럼무거워진다
-「오른쪽미술관」전문

“새로운인생”은“어제까지의삶에”“또하루가덧칠”되는일이다.이렇게누적되는걸우리는인생이라고말한다.기억이나추억이떠오르는것도마찬가지다.덧칠되어희미해진그림이문득기억의형식으로등장할때,우리는거기에도나자신이존재한다는사실을깨닫는다.그러니까우리는수백겹의자기로존재하고,앞으로살아갈날만큼이나수천겹의자기를준비하는것이다.무슨말이냐면,어제에는어제의내가살고있고,오늘은오늘의내가살고있다는뜻이다.내일에는내일의내가살아갈준비를하고있을것이다.이렇게매일매일나는나를살아있게한다.이렇게우리는어제의삶에오늘의‘나’를덧칠하면서‘새로운인생’으로갱신된다.
그러나장서영시인의시는덧칠된전면에는관심이없는듯보인다.대신그는덧칠의뒷면으로감추어진,그래서존재의그을음이되어버린것으로부터오늘을살아갈영감을얻는다.그럴때존재의그을음이되는“낡은서랍에허물을벗어낸사진은방부처리없이도/페스츄리같은결을간직”(「지문연대기」)할수있다.눈썰미좋은사람은알아챘겠지만,‘허물을벗어낸사진’은덧칠의뒷면으로사라졌던‘어제까지의삶’이기억이나추억의형식으로오늘에소환되는자기에가깝다.그기억은시간이흘러도그순간을살았던존재의‘결’을고스란히간직한다.“기억을잃은뒤에도달력에는알수없는빗금이늘어”가듯존재의결은“울어줄새끼를위해녹슬어가는문장들”(「골목우화」)로존재하는것이다.
우리는이‘문장들’이장서영시인의시에서‘몸’의형식으로드러난다는사실을알고있다.“심장뒤편세번째갈비뼈에음각으로새겨놓은고백”(「다락방달팽이」),“숨이없어서혀가말린줄도모르는네울음”(「그리운모든것은바닥에눕는다」),“저며진속살이생의아가미를따라/소금처럼피어오르면”(「물살에뼈를묻다」)같은구절은덧칠된몸의기억들이어떻게존재하는지를선명하게드러낸다.그리하여몸의기억들은삶이라는치열한생명력을향해존재의의지를피력한다.그러한의지속에서어제의나는오늘의내가될수있었다.
-문신(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