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편에 대한 탐구 (안혜경 시집)

왼편에 대한 탐구 (안혜경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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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시적 산책
1982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안혜경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왼편에 대한 탐구』가 시인동네 시인선 212로 출간되었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평생을 가난과 절망 속에서 보낸 빈센트 반 고흐가 〈꽃 피는 아몬드 나무〉에서 밝고 푸른 배경(빈센트 블루)에서 희망의 흰 꽃들을 보여주었듯이, 안혜경은 슬픔과 울음의 어두운 통로 끝에서 희뿌옇게 동터올 희망의 순간을 꿈꾼다고 평했다.
저자

안혜경

서울에서태어나상명대대학원국문학과졸업.문학박사.1982년《시문학》등단.시집『강물과섞여꿈꿀수있다면』『춘천가는길』『숲의얼굴』『밤의푸르름』『바다위의의자』『여기아닌어딘가에』『비는살아있다』,산문집『새벽다섯시』『아프리카아프리카』『꿈꾸는배낭』등을펴냈다.〈시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왜가리ㆍ13/포인세티아ㆍ14/어제의산책자ㆍ16/그러니까튤립ㆍ17/저녁한조각ㆍ18/한낮인데도ㆍ20/편지ㆍ21/삼나무사잇길ㆍ22/한파ㆍ24/한파2ㆍ25/봄혹은빗방울ㆍ26/지하실ㆍ28/아무리걸어도저녁ㆍ29/내일이오면ㆍ30/여기도아니고저기도아닌ㆍ32/이유있는슬픔ㆍ34/그랬을까ㆍ35/어제ㆍ36


제2부

왼편에대한탐구ㆍ39/너만의방식ㆍ40/저녁의발자국ㆍ42/새벽창문을넘어ㆍ43/서쪽으로흐르는냇물은ㆍ44/내일은다시ㆍ46/연두ㆍ47/저녁의슬픔ㆍ48/매화ㆍ50/눈사람ㆍ51/옆집사람ㆍ52/크로커스ㆍ54/11월ㆍ55/밤의창문에매달려ㆍ56/조춘(早春)ㆍ58/빨래ㆍ59/기억들,엉겅퀴의ㆍ60/메기와하수관사이에서ㆍ62


제3부

한식ㆍ65/진정되지않는ㆍ66/천둥을찾아ㆍ68/슬픔이온다ㆍ70/비갠뒤ㆍ72/달맞이꽃ㆍ73/누구의마음인가ㆍ74/먼지가흩날리는집ㆍ76/끝내못다한이야기ㆍ78/바오바브나무에걸린모자는두고왔네ㆍ80/파타고니아의바람일까ㆍ82/비린내와달콤함사이ㆍ83/단풍나무의숨바꼭질ㆍ84/전화를끊고난후ㆍ86/목요일에서조금떨어져ㆍ88/하나의망초ㆍ90/감자꽃은떨어지고ㆍ92/세상끝이뭐어디가겠습니까ㆍ94/밤의인사ㆍ96

해설오민석(시인·문학평론가)·97

출판사 서평

하이데거(M.Heidegger)의후기사상을잘보여주는책으로『숲길Holzwege』이있다.이책에서그는다음과같이말한다.“수풀(Holz)은숲(Wald)를지칭하던옛이름이다.숲에는대개풀이무성히자라나더이상걸어갈수없는곳에서갑자기끝나버리는길들이있다.그런길들을숲길(Holzwege)이라고부른다.”『숲길』의영문판제목은OfftheBeatenTrack이다.말하자면‘사람들이자주다니지않은길’이란뜻이다.그길은누구나알고있고‘많은사람이지나다녀만들어진길(beatentrack)’이아니다.그길은일상의비본래적인속성을깨닫고본래적인존재로가는길,다른말로하면존재의근원을찾아가는외딴길이다.그렇다면‘근원’이란무엇인가.하이데거에게근원이란“그것으로부터그리고그것을통하여사태가사태자신의본질(Was-sein,무엇임)과그자신의방식(Wie-sein,어떠함)으로존재하게되는그런것”(『숲길』)을말한다.
안혜경의시집은‘산책시편’이라는부제를붙여도좋을만큼“산책”이라는단어를자주사용한다.산책이라는단어가어울리지않는곳에서는‘걷다’,‘길을가다’,‘돌아다니다’,‘내달리다’등처럼산책을의미하는유사어들이자주반복된다.그녀는걷고,길을가고,돌아다니며존재의‘무엇임’과‘어떠함’에대하여사유한다.그녀의길은편하고흔한길이아니며,하이데거의숲길처럼“더이상걸어갈수없는곳에서갑자기끝나버리는길들”이기도하다.그길은비본래적인일상에서시작되며,본래적인존재를찾아가는과정에있고,종종사라짐으로써주체를혼돈에빠지게한다.

저녁햇빛이비스듬히나무를안았다나무도그날의수고로움을발밑에내려놓았다찬바람쌩쌩골목을휘도는데꽁꽁싸매고산책을나갔다마른풀들도추위에발을모으고도로에는흙먼지가풀풀날렸다오리떼조차수초사이에숨었는지풀들이바스락거렸다검정비닐봉지만이머리를쳐든뱀처럼바람에흔들렸다풀숲에뻣뻣하게누운고양이를끝내묻어주지못했다발걸음은후들거렸다왼쪽길인지오른쪽길인지돌다리를건너야하는지돌아서야하는지갈피를잡지못했다그순간얼음기둥이되었다칼바람이나를북극으로데려갔다
-「한파」전문

이시에서존재의근원을찾아가는화자의산책길은한치의생명성도허락하지않는다.모든것은한파에꽁꽁얼어붙어있고,풀들은바짝말랐으며,오리떼들도사라지고없다.“검정비닐봉지만이머리를쳐든뱀처럼바람에흔들”리는공간에서화자의“발걸음은후들거”린다.화자는이삭막한얼음의공간에서어디로가야하는지“갈피를잡지못했다”고고백한다.그러나가만히들여다보면그는이미본래적인존재로돌아가고있다.비본래적인존재는죽음을망각하고결핍을못느낀다.화자는모든것이결핍인세계를이미의식하고있고,“풀숲에뻣뻣하게누운고양이를끝내묻어주지못했”지만,죽음을의식하고있으며죽음에대한사유안으로이미들어와있다.화자는비본래적인실존이은폐하는것들을탈은폐하여본래적인존재를목격하기직전의상태에이미도달해있다.안혜경의시들은이렇게존재의근원에다가가존재-물음을던지는현존재의모습을보여준다.그녀가존재의근원에대하여물을때,그것의시간적인배경은대부분저녁이거나밤이다.이작품에서도그녀의산책이시작되는시점은“저녁햇빛이비스듬히나무를”안을때이다.저녁은어두움으로가는시간이고밤은이미어두워진시간이다.어두운시간은무지의시간이고,길을잃은시간이며,길이보이지않는시간이다.이런점에서안혜경의질문은잘보이지않은근원에대한암중모색의처절한과정에서나온다고할수있다.
-오민석(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