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통장 (한명숙 시집)

오래된 통장 (한명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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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간의 흔적, 혹은 의지의 기록
2007년 《문예운동》으로 등단한 한명숙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오래된 통장』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66으로 출간되었다. 한명숙의 이번 시집은 시간의 흔적을 조각조각 모아, 의지로 꿰어 펼친 생활 시학의 조각보이자 행복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한명숙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연민의 마음이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줄 것이다.
저자

한명숙

충북청원에서태어나2003년《수필과비평》으로수필등단,2007년《문예운동》으로시등단했다.시집『가시연꽃』『담쟁이손』『붕어빵아줌마』『그랬으면좋겠네』,수필집『남자의눈물은뜨거웠다』가있다.〈시흥문학상〉금상을수상했으며,현재한국문인협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도돌이표13/행복미용실14/손톱16/말의뼈를찾다18/달리기는싫어20/어른이된다는건21/값을한다는건22/마음의빚24/그늘이된다는건26/소녀가장의눈물27/편안하신가요?28/동행30/이월31/이력서를쓰며32/오래된통장34


제2부

잔소리37/천사에게38/방과후교실40/용기내기41/소리가전하는이별연습42/소리도찍힐까44/지칭개45/선재길걸으며46/편지48/고발합니다49/곰돌이인형50/듣는다는것은52/80분53/방망이날개무희새54/갯골생태공원56


제3부

따듯한저녁59/평범한다짐60/팔불출이라도좋아62/짝퉁시대64/진즉에알았더라면65/봄은멀다66/견딘다는건68/산빛69/길찾기70/봄을기다리며72/사진속으로73/수선사에서74/세월가는줄모르고75/소리가사라졌다76/일기장77/행복78


제4부

수수밭뉴스81/한여자의생일82/추억의입맛84/요양원가는길85/개발제한구역86/사진한장88/동강할미꽃89/꼰대의힘90/봄편지92/아름답고그리운93/머위쌈94/달빛96/변방에서97/순천만에서98

해설백인덕(시인)/99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우리는시간으로만들어진존재다.다만,시간을의식하지못할때는‘어린소녀’였는데어느덧‘육십갑자’를넘어서니한밤중에시계를꺼도새벽은쏜살같이달려와있음을보게된다.보통의우리인식에서시간은과거에서미래로비가역적으로흐른다.화살보다빠르게아니광속(光速)으로.과거를성찰하거나미래를기대하거나우리는근사치인현재에존재할뿐,기억과예상이없다면결코‘시간그자체’를살지못한다.
인도의세번째대서사시『마하바라타Mahabharata』에서강인한영혼인야크샤(Yaksa)가팝다바(Papdava)의최고령자이자현자인유디스티라(Yudhisthira)에게무엇이가장큰신비인지물었다.이현자는“매일수많은사람들이죽는데도살아있는자들은자신들이불멸의존재인것처럼산다.”라고대답했다.또한,고대로마에는‘수정(愁精,Sorge)’의신화가있다.수정은지신(地神,Tellus)에게서얻은흙한덩이로만든형체에주신(主神,Jupiter)의영혼을불어넣어생물(Houmou→Homo,인간)을빚었다.수정과지신과주신이서로이생물의소유권을주장하다결론을내지못하고시간의신에게판정을맡겼다.시간의신은죽은후에육체는지신이,영혼은주신이도로가져가라고했고,살아있는동안에는수정이관장하라고판결했다.두이야기는우리는영원히살지도못하지만살아있는동안에도근심과염려(불안)에휩싸인존재일뿐이라는사실을깨우쳐준다.
이처럼시간은냉철하고가혹하지만,단지우리를그저생겨났다사멸하는존재로만드는것이아니다.‘의미있는존재’가되도록변화하는사건의연속이라는다른얼굴도보여준다.인간은기억과기대라는의식작용을통해‘불멸’이라는환상을제한된시공간에서자기의역량만큼실현한다.창작활동으로서시작(詩作)또한자연스럽게이런의미를띠게된다.따라서흔적을남기고기록을통해이어지려는모든노력에는그규모와깊이를따지기전에어떤비장함과숭고함이깃들기마련이다.
한명숙시인은어둡고차갑게만느껴지는시간의물결위에자신의의지와경험에서발생한삶의온기를펼쳐덮는다.이를통해알록달록한수채화까지는아니더라도음영(陰影)이곱고부드러운한생의수묵화를보여준다.시인은이번시집에서“둘째딸최고라는칭찬에상처가곪아터져도,/시키는사람없어도즐겁게”(「마음의빚」)살림놀이했던어린시절부터“육십갑자넘겼더니/별것아닌일에도눈치가보”(「80분」)인다는최근까지의사태와심회(心懷)를결고운어휘로담담히펼쳐낸다.

부모님은쉴새없이논밭으로일나가시고
집안청소와빨래는내차지가되었습니다
상처난손가락이양잿물빨랫비누에
퉁퉁불어벌겋게곪아통증으로몸살을앓아도
누가시키지않아도알아서일거리를찾아
부모님을돕고싶었던,일찍어른이된나는
세상에둘도없는효녀가되어야했었습니다

꼭꼭숨겨두었던,그시절이그리움으로다가옵니다
육십을바라보는나이탓이려니하다가도
비빌언덕도하나없는형편에
칠남매뒷바라지에온동네거친일을
도맡아하시던일꾼,아버지의굽은등과찌든일상
일에지친어머니의거친말투가싫어
모르는척눈을감았던그시절이그리워집니다
-「꼰대의힘」부분

시인은어떤희미한자각과여린의지에따라“세상에둘도없는효녀가되어야했었”다.‘집안청소와빨래’를도맡았고,다른‘일거리’를찾아서했다.“부모님을돕고싶었던.일찍어른이된나”라는초상(肖像)이생겼다.이런행위의자발성은“죽어라달려봐도언제나꼴등인걸/응원온엄마앞에서/창피해서울어버렸다”(「달리기는싫어」)라는‘트라우마’에서기인한다.하지만이트라우마는일반의생각처럼어둡고끈질긴것은아니다.왜냐하면,‘달리기만아니라면’,즉“배구도높이뛰기도공부도내가낫”다는것을잘알고있기때문이다.나아가“이십리먼길달려/학교오는친구당할수없어”라는친구를긍정하는태도마저드러난다.결국,어린날의초상은시인자신의심성(心性)에의해서형성된것이라고볼수있다.그렇기에“모르는척눈을감았던그시절이그리워”진다고담담하게회상할수있는것이다.
인간이란결국어떤상황에서제역할을하고그에걸맞은감정으로반응하면서점차‘의미있는존재’로성장한다.우리는발생이라는먼과거의시점에서어딘지는알수없어도반드시도래(到來)하고말소멸까지를단번에꿰뚫어볼수없다.다만시간의파문이일으키는일련의사건에서수동적인인자(因子)로머물지않고적극적으로행동할수있다.변화를통해의미를형성하는행위야말로의미있는존재의기본자질이다.어느새위치가바뀌어“내맘을알면서도모르는척혼내는/엄마를이해하려해봐도안되더니/삼십년엄마인데도/몰라주는아들이서운”(「어른이된다는건」)한상황을마주한다.지난날“야속하다원망하던일들이/어쩔수없었다는걸”누가가르쳐주지않아도수긍할수밖에없게된것이다.이렇게기억은성찰의모습으로소환된다.
-백인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