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 (전영미 시집)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 (전영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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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카오스모스의 모순을 기꺼이 껴안은 자의 고백
2015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전영미 시인의 첫 시집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가 시인동네 시인선 214로 출간되었다. 전영미의 이 시집은 이게 정말 첫 시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르익고 농익었으면서도 새롭고 신선하다. ‘시의 맛’을 아는 이 신진 시인의 등장으로 긴장해야 할 기성 시인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이 시집이 왜 2023년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우수콘텐츠에 선정되었는지 시집을 읽어본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저자

전영미

대구에서태어나2015년《시인동네》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2023년한국출판문화진흥원우수콘텐츠에선정되었다.

목차

제1부

배웅ㆍ13/어떤안내문ㆍ14/마임ㆍ16/논픽션ㆍ18/데칼코마니ㆍ20/나만의필살기ㆍ21/내막ㆍ22/아직도모르겠니ㆍ24/또다른내막ㆍ26/고독ㆍ27/어디에도없는그릇ㆍ28/예언ㆍ30/거기,누구세요?ㆍ32/미학ㆍ34/축제그리고ㆍ36/머나먼ㆍ38/망각과프렉탈ㆍ40/혼선ㆍ42


제2부

이제마음의준비를하셔야할것같습니다ㆍ45/혼잣말ㆍ46/내밀한일들ㆍ48/아직시작되지않은오래된이야기ㆍ50/치부ㆍ52/꽃의순간ㆍ53/마리아나해구ㆍ54/카메라를들고ㆍ56/전언ㆍ58/사라진것들은지워지지않고ㆍ60/누군가나를불렀다ㆍ62/사실ㆍ63/낙타에겐미안하지만ㆍ64/혼선2ㆍ66/출구ㆍ68/기억을찾습니다ㆍ70/덧칠된ㆍ72


제3부

초식동물ㆍ75/그려지지않는풍경ㆍ76/시선ㆍ78/비법이라면비법ㆍ80/자화상ㆍ82/군락지ㆍ83/그림자를위한자장가ㆍ84/아무것도모르고ㆍ86/봄밤ㆍ88/고시원ㆍ89/건조ㆍ90/십대ㆍ92/다큐ㆍ94/진작그랬어야했는데ㆍ95/조율ㆍ96/우리는다른손이필요해ㆍ98/또다른다큐ㆍ100

해설김효숙(문학평론가)ㆍ101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아직시작되지않은오래된이야기』에서글쓰기와존재에관한사유는같은지평에서이뤄진다.현존에관한말하기가존재의결핍을고민하는중에이뤄지면서불안전·불완전·불안정한존재의조건이글쓰기로이어진다.이러한점이주체형성과관련되면서전영미시는매우내적이고심리적으로언표된다.부단히자기를타자화하면서세계-내에서그위치를찾아나가고,‘존재’가본래텅빈것이라는인식에서출발하여하나의존재자로명명되는지점까지사유를이어간다.자기의식이박약하다면타자와의동일시가매우순탄하게이뤄진다.그러나자기의식을가진자는자기를분리해놓고대자적으로자기를의식한다.자기를넘어타자에게로나아갈때자기중심사고에대한의심이깊어지는것은그런이유다.
이시집에서핵심어를하나만고르라면‘존재(자)’를들수있다.존재(being)는인간에게본래결여된것이어서‘존재자’와의혼란속에서그의미를찾아나가야한다.존재란아직그무엇도수행하지않고가만히지속하는상태,즉시인이유령의목소리를빌려서썼듯이“발이필요해”(「내막」)라고말하는상태같은것이다.이발화자는지금“뭔가를딛고”서있고싶지만발이없어서그일은이루어지지않는다.때문에유령은자명한존재자일수가없다.발의필요성을발언하는존재이며인간의관점으로는발이결핍된존재다.이같은경우에서보는것처럼발로무언가를딛고서있다면유령은전혀다른존재자로전환할것이다.시인은이시집에서부단히정체성을찾아나가면서존재의전환을꿈꾼다.새로운세계를얻으려면자신부터변화해야하고,자신이궁금해하는것에대한답변도자신이마련해야한다.성장하는동안에경험했으나지금은잊어버린이야기들,그래서캄캄한과거가되어버린것들을현재화하면서오롯한나되기의시쓰기수행을이어간다.이시인에게글쓰기는주체를부단히되묻는일과분리되지않으며,자신이누구인지알아가는능력으로그것은지속된다.
누구나예외없이거울단계를거쳐왔으나그때의기억이나상황을온전히복구할수는없다.거울앞에서어느날자아를발견하게된아이가그간의무지와숱한의심을거쳐거울상과의동일시를인정하기에이른다는심리학이론을근간으로자아형성의계기를추체험할수있을뿐이다.출발지점과귀환지점이똑같이자신이라해도좋을전영미시에서주체는세계속으로부단히뛰어드는자아분열체로언표된다.그래서이들은늘움직인다.타자화한자신을직관할때에야주체성이생기는것이어서움직이지않는자는이것을달성하기가어렵다.세계속에자신을세워놓고하나의풍경이된곳에서비로소자신을발견할수가있다.서시격인「배웅」에서시인은흔들리는삶의조건과거기에더해진슬픔을묘파하면서주체의배웅행위가결코일과성으로끝나지않을것임을예고한다.

집을나선다

빈새장을열어주고
욕조에물을가득채우고
아무것도심지않은화분에물을주고는
깊은밤속으로

길가버드나무가잠깐흔들린다
뒷골목을지나공원을돌아호숫가까지걸어간다

슬픔아,
여기서부터는혼자갈수있지?

호수에잠긴수초를오래바라본다
물에는앉을데가없다

나의귀가는
어제보다더늦을것이다
-「배웅」전문

이같은배웅행위는슬픔을영영떠나보내려는것이아니다.여하한이유가있어서슬픔을슬픔에게잠시돌려보내거나맡겨두려는것이다.이러한의탁행위가뜻하는바를알수있다면슬픔의연원을모를턱이없다.그런데시현실에서는그이유가표면화되지않는다.화자는새장에가둬두었던새에게자유의길을열어주고,텅빈것들뿐인사물들에듬뿍물을채워준후집을나선다.바깥세계인호수를슬픔이출렁거리는장소로지정한것을보면집과호수사이에는단절할수없는연속성이있다.슬픔이혼자갈수있을만큼의장소에서배웅하고있으나이러한행위는이후에다시슬픔을마중하는일이예정되어있다는증거다.그러면서그는“호수에잠긴수초”처럼하나의풍경으로자신을타자화한다.바깥세계에는호수만한슬픔이고여있어서‘쉴만한물가’라고할수가없다.흔들리는삶속에서슬픔에겨운자.집을나서기전에빈욕조,빈화분에물을채워넣어마를날없는슬픔이삶의조건임을보여주는자.그가이시의화자다.삶에깊이배여있는슬픔은빈용기에물을채워넣는행위로,다시금슬픔을만나야하는일은늦은귀가시간을예정해두는것으로표명된다.
우리네삶에는불가항력의조건이있고그중슬픔은깊이를알수도없고마를날도없다는점을이시는시사한다.자신에게부과된슬픔이내내삶을관통하고있어서그는그것을고스란히승인해야한다.이세계에던져지기전으로소급해가는능력의소지자가아닌한그는슬픔이삶의조건이된이유를알수가없다.더욱이부조리한것은,삶은슬프다는인식에어떤근거를댈것인지조차자명하지않다는점이다.슬픔은기쁨과차이가있는감정이지만이것을조성하는것이무엇인지에대해서는무지하기만하다.그렇기에그이유를끝없이알고싶어하고,무언가를조금알게되었다면서안도하기도한다.화자가집에서데리고나온슬픔을더큰슬픔에게로배웅하는장면에서우리는그가이후귀갓길에마중할슬픔의얼굴까지도상상할수있다.슬픔을삶의조건으로승인하는것이일상임을천명하면서시인은「어떤안내문」에서주체가처한“지금여기”(now-here)의시간성과장소성을질문하기에이른다.이시는영문도모른채홀로기투되어이세계의고아로살아가는모든실존재,즉“당신”들에관한말하기다.
-김효숙(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