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의 저녁 (김경성 시집)

모란의 저녁 (김경성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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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존재의 비의(秘義)를 밝히는 낯섦의 시학
2011년 《미네르바》로 등단한 김경성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모란의 저녁』이 시인동네 시인선 219로 출간되었다. 김경성의 시는 감정이 쉽게 드러나거나 서사를 통해 독자의 감성을 유도하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치열한 관찰과 집요한 묘사로 이미지를 적층하고 그것에서 정서와 사유를 직조해 내는 것이 그만의 특징이다. 그렇게 사물들의 이항 대립이 만들어 내는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이미지와 의미를 창출해 낸다.
저자

김경성

시인

전북고창에서태어나2011년《미네르바》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내가붉었던것처럼당신도붉다』『와온』이있다.

목차

제1부
담쟁이ㆍ13/맨드라미ㆍ14/물고기몸에물이차오를때ㆍ16/다정한연인ㆍ18/더할수없는이름으로ㆍ20/녹슨거울을들고있다ㆍ21/캥거루와해바라기ㆍ22/파피루스와나비ㆍ24/씨앗연대기ㆍ26/눈부처ㆍ28/파미르에서쓰는편지ㆍ30/모란문찻사발과바다ㆍ32/돌속에서잠든새ㆍ34/모란의저녁ㆍ36

제2부
프러시안블루ㆍ39/보라의원적ㆍ40/무자치ㆍ42/목이긴굴뚝새ㆍ44/뒷모습ㆍ46/용장사곡삼층석탑ㆍ48/저녁숲의은유ㆍ49/망고나무와검은돌ㆍ50/모래시계속의낙타ㆍ52/산수국ㆍ54/망해사ㆍ55/혼자먹는밥ㆍ56/묻힌얼굴ㆍ58/피아노가있는바다ㆍ60

제3부
마애불ㆍ63/우산ㆍ64/제라늄꽃옆에ㆍ66/새의노래ㆍ68/외딴섬에서하루ㆍ70/바위꽃ㆍ71/무언가ㆍ72/비비추새ㆍ74/물고기의눈ㆍ76/몽상가의집ㆍ78/검정말ㆍ80/순록떼를찾아서ㆍ82/여전히나무는나무ㆍ84

제4부
나는당신을모르고ㆍ87/낯선ㆍ88/유리의방ㆍ90/여강에는섬이있다ㆍ92/포옹ㆍ94/잠행ㆍ96/상처에관한변주곡ㆍ98/모두의방식ㆍ100/여름비ㆍ102/잠망경ㆍ104/그보다더오래된슬픔ㆍ106/붉은방ㆍ108/비긴어게인ㆍ110/오동꽃필무렵ㆍ112

해설박진희(문학평론가)ㆍ115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슬픔과상처는시인의시세계를이루는주요모티프중하나인데여기에는두가지특징이함의되어있다.하나는그것이다양한감각을통해발현된다는사실이다.시인의시에서는슬픔이나상처의구체적서사가드러나거나서정적자아의감정적토로가직접적으로제시되는경우를찾아보기가어렵다.시각이나청각을비롯한다양한감각들로때론명징하게,때론이미지의겹침을통해슬픔이나상처의이미지를창출해내는까닭이다.그대표적인예가「보라의원적」이다.

덧입혀진색이기울어져있다
빛이닿을때마다몸을바꾸는그림자에물이고인다

그무엇과부딪쳐서생긴흔적이
문득문득몸언저리에피어나서
몸바깥으로나있는그림자의길이검붉었다

몸을바꿔서모서리가되기로했다
둥근것들이내는소리가부드러운것만이아니고
모서리가내는각지고찔리는소리모두날카로운것도
아니었다

가장깊게부딪친곳에중심을두고옅어지는보라는
천천히빠져나가고
어떤상처는눈물번지듯뼛속까지들어가서
움직일때마다찌르레기소리가났다

더깊게들어가보기전에는알수없어
손차양을하고아득하게바라보며가늠할뿐
여러날이지나야사라지는보라의지문은
몸안쪽에고여있던슬픔이흘러나온것

목까지차오른보라의원적은슬픔의색이라고
누구에게이야기해야하나

그누가숨깊은두귀를내게내어줄수있을까
-「보라의원적」전문

위시는내면에서외면에이르는슬픔의흐름을공감각적으로이미지화하고있는이채로운작품이다.이시에서‘그림자’는몸이만드는그늘일뿐만아니라가시화된내면의이미지로도의미화되고있는데그매개가되고있는것이“그무엇과부딪쳐서생긴흔적”,곧‘멍’이다.이것은“몸안쪽에고여있던슬픔이흘러나온것”이자“몸바깥으로나있는그림자의길”에이르기까지검붉은모습을띠고있다.멍과그림자의이미지가오버랩되면서마치내면에있는슬픔이몸바깥으로까지흘러나와길에현상되는듯한느낌을준다.실상이시에서‘멍’이란말은등장하지않는다는사실에주목할필요가있다.‘보라’라는시각적효과로제시하고있을뿐인데,지시적언어를피하고최대한의미를감각으로전달하려는시인의의지를간취할수있는대목이다.
“가장깊게부딪친곳”은상처의중심이자가장짙은색을띠는곳이다.그중심에서부터바깥부위로갈수록‘보라’가점점옅어지다가사라지게된다.그러나색이옅어지며사라진다고해서상처가없어지는것은아니다.그것은“눈물번지듯뼛속까지들어가서/움직일때마다찌르레기소리”를내는경우도있기때문이다.“찌르레기소리”는움직일때느껴지는‘찌릿한’통증을환기하는데,상처란겉으로보이는것이전부가아님을공감각적으로드러내고있는경우이다.수평적인번짐의현상을수직적으로변환하는시적의장으로상처의깊이를담보하게된것이다.그러므로상처란“더깊게들어가보기전에는알수없”는것이며타자는그저“아득하게바라보며가늠할뿐”이다.
서정적자아에게‘보라’의이미지는“몸안쪽에고여있던슬픔이흘러나온것”으로“보라의원적은슬픔의색”이되는것이다.그러나이는슬픔의주체만이아는사실일뿐,‘아득하게바라보며가늠’하는타자에게는가닿을수없는것이다.자아가“누구에게이야기해야하나”,“그누가숨깊은두귀를내게내어줄수있을까”라는소통에대한회의적정서를드러내고있는까닭이여기에있다.
이것이김경성시의슬픔이나상처에함의되어있는두번째특징이다.그의시에서슬픔은직접적으로전달되지않는다.이는두가지측면에서야기되는데하나는파편화된존재로서의고독으로‘이야기’하고들어줄유대적관계의대상이존재하지않는다는사실과관련된다.다른하나는“더깊게들어가보기전에는알수없”는것,곧슬픔의본질에도달할수도또그것을언어로적확하게지시할수도없기때문에누군가에게‘이야기’할수없으며한다고해도전달되지않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