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입술들 (양지미 시집)

사라진 입술들 (양지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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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람이 온다는 것에 대한 희망

2012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양지미 시인의 첫 시집 『사라진 입술들』이 시인동네 시인선 221로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십여 년의 잠행을 끝내고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양지미 시인의 이 시집은 ‘간결함의 극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말[言]이 난무한 작금의 세태에 대해 ‘말씀’으로서의 시가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듯 양지미 시인은 과장된 언어를 극도로 자제하며 시의 본질을 찾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그 여정에 누구나 공감하게 될 것이다.
저자

양지미

2012년《시인동네》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사라진입술들』이있다.

목차

제1부
말을먹는귀ㆍ13/전지적관찰자시점ㆍ14/불멸의호객행위ㆍ16/담쟁이ㆍ18/롤리타렘피카ㆍ19/찾아온다는말ㆍ20/나무의모세혈관ㆍ22/시소게임ㆍ23/사라진입술들ㆍ24/임대차계약ㆍ26/다산의이유ㆍ27/프러포즈ㆍ28/엄마의오월ㆍ30/오래된부케ㆍ31/죽지않는나무ㆍ32/이름이라는제목ㆍ34

제2부
원죄의재구성ㆍ37/비린내ㆍ38/청첩ㆍ40/봄날의이삿짐ㆍ42/밍크는힘이세다ㆍ43/나는왜미안한가ㆍ44/슬픈몸은옆으로눕는다ㆍ46/말ㆍ47/흰책ㆍ48/그래도ㆍ50/묵음ㆍ51/흉터ㆍ52/나비ㆍ54/두근거리는쪽으로걷다ㆍ55/포장ㆍ56

제3부
휘파람ㆍ59/소화불량ㆍ60/배관의사회성ㆍ62/눈[眼]의연금술ㆍ63/노거수ㆍ64/미역ㆍ66/입술의칼ㆍ67/은빛노인대학ㆍ68/바닥ㆍ69/사춘기ㆍ70/오늘의식목ㆍ72/방부목ㆍ73/선흘미술관ㆍ74/계단의단계ㆍ75/결심을결심하는까닭ㆍ76

제4부
맹그로브숲ㆍ79/사람ㆍ80/양팔저울ㆍ81/엉덩이의인격ㆍ82/이번감기는너무지독해ㆍ83/아스팔트의눈물ㆍ84/입에발린소리ㆍ86/오동나무ㆍ87/책갈피ㆍ88/쿨하지못해미안해ㆍ89/회춘ㆍ90/호박꽃그열매ㆍ91/잉여인간ㆍ92/변명ㆍ93/등급을묻습니다ㆍ94/시선집중ㆍ95/X‐rayㆍ96

해설장예원(문학평론가)ㆍ97

출판사 서평

정직한정념에서출발한정체성의시적여정

그런날들이있었다.“네가없으면살수가없어”라는말을서슴없이던지던때가.이제는꿈을깨고“시시(視視)했으나시시해진사랑이란것을알아버려서”(「사춘기」)입밖에못낼대담한고백을수백번속삭이고도성에차지않아밤새연애편지를쓰던시절이.우리는상상할수있다.“하얀블라우스에오렌지색핫팬츠를입은싱싱한여자”를등에업고계단을내려가는남자의얼굴이얼마나붉었을지.“한계단씩걸음옮길때마다/뭉클한가슴이그의등으로그렇게옮겨앉았을까”하는.그래서남자는“몇날몇밤꺼지지않는가슴때문에”“한동안은엎드려잠들지도”모르겠다고.아마도한동안은“박자를놓쳐허둥대는심장과땀으로끈적이는손바닥”(「전지적관찰자시점」)에서벗어나기어려웠겠다고.하지만모든열정이그러하듯이서로를향해피어올랐던불꽃도촛농만남기고사그라진다.양지미시인은빛과열기를사방에흩뿌리던젊음의순간이지나가고난이후의시간을뒤쫓는다.어느노래가사처럼젊은날엔젊음을모르고사랑할때엔사랑이보이지않아서우리는더더욱빛과열기의순간을무심코보낼수밖에없다.그러나어떤이들은그찬란한순간을잊지못해오랜잔상을자신안에새긴다.빛나던순간들이사그라들다마침내무심한바람결에꺼지는광경은언제나슬프기때문이다.오래된슬픔을머금고시인은묻는다.순정을맛볼수있는시절은왜이리짧은것일까?그녀는“나도한때사람하나머금은적있는데/삼킬까뱉을까”망설이다“그때삼켜버린몇날몇밤불러내/아직은난청인그들의귀에”노래하듯불러보려한다.그녀가아무리“쓰라려어쩔수없었다는핑계”를대려해도“죄책감없는바람이무작위로들추”어내“푸르게피어날속수무책그대들”(「흰책」)을말이다.
그것은시인이“입술은사라지고입만남은사람들”이많은상황을그냥내버려둘수없어서이다.입술은말하는것,먹는것,감각을느끼는것,키스를하는것이기도하다.입술은우리가의식의길에들어서기도전에처음나타나는순수한감각의많은부분을담당하고있다.물론순수한의미에서의감각이란거의실현될수없는하나의추상적인개념이다.그러나시인은그실현불가능한순수한감각을“첫키스”의“터져버린입술”과남녀가정사를위해우르가를세울때의“설레는맘”으로구체화한다.

보았니?
탑골공원가면
입술은사라지고입만남은사람들많잖아

두툼했던첫키스는터져버린입술때문에들통났고
한동안저혼자부풀어있었잖아

높다랗게우르가를세우고
설레는맘으로빗장을풀었잖아
기다렸다는듯입속에서터져나온말의씨앗들
소리없이입술을핥기시작했잖아
붉어진씨앗들은
선명한테두리까지야금야금갉았잖아

배부른아이들은떨어져나가고
쭉정이들은뱃속에남아똑같은노래를불러댔잖아
조금씩배가부풀어올라쓸데없이수확을걱정했잖아

아버지돌아가실때쯤거울속의귀가자란다고하셨잖아
산란에실패한입술조각들
뒤늦은고해성사처럼귓불을부풀게한다고하셨잖아
우르가의그림자가사라지면서
그의입술그늘도지워졌잖아
어느새귀가자라고있었잖아

얼굴을한껏부풀리며울어도
입술은입술로돌아오지않았잖아

저기봐!
우두커니입술지워진사람들
-「사라진입술들」전문

젊음이생동하던생의초기에나가능한순정한감각들은기억과습득이많아지면서“입속에서터져나온말의씨앗들”에게자리를빼앗긴다.“말의씨앗들”은“소리없이입술을핥아”입술의붉은색과테두리를야금야금갉아먹고는입술의순수한기능과형태를없앤다.더욱이말의씨앗에서나온쭉정이들은상투적언어로“똑같은노래”를불러대느라아버지의귀만자라게한다.이제“우르가의그림자가사라지면서”,“입술그늘”도지워지고“입술은입술로돌아오지”않는다.입술의상실은젊음의상실과불가피하게연관되어있다.감각의순수함과반짝이는색채를잃어버리는것.그러나시인양지미는젊음을지나오고도그순수한시각의내밀한전율을포기하지않으려는듯보인다.그녀는포장된언어로주어진길을가기보다는세계가지닌본래의감각과인간다움의미로를탐색하고싶어하는데이번시집에서그녀는그러한것들을종종후각적심상으로드러낸다.
-장예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