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가 인연입니다 (진서윤 시집)

여기까지가 인연입니다 (진서윤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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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생이 아름답다는 말을 써야 할 때
201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진서윤 시인의 첫 시집 『여기까지가 인연입니다』가 문학의전당 시인선 374로 출간되었다. 진서윤 시인은 매일 8만6천400초를 소진하는 인간의 여로는 물론 우리와 동행하는 ‘세계 없음’의 존재들을 빛과 시간으로 담백하게 화폭에 담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한다. 세계와 사랑을 해보라고, 그럼 진실한 사랑에 대해 알게 될 거라고……
저자

진서윤

출간작으로『여기까지가인연입니다』등이있다.

목차

제1부
오늘의운세13/계약서14/꽃피는방식16/이상한선택18/산청20/해어화(解語花)22/몽혼(夢魂)24/처서26/서실(閪失)28/밤길30/그꽃밭32/장천부두34/생이아름답다는말36/북어38

제2부
제법무아(諸法無我)41/수박42/그들만이안다44/낭만적연대46/표백48/환각의뼈50/정류장에서52/이드54/햇살을수리하다56/오그린잠58/아비의셈법60/멀티탭62/물류창고를지나가는해의일일근무표64/가자지구체리나무66

제3부
옛사랑69/개심사가는길70/네오포피아72/유리부스사이의제례(諸禮)74/끈76/어쩌다오늘77/풍금78/뻐꾸기80/12월82/네일아트84/너훈아85/터닝포인트86/초대88/귀로90

제4부
아람치93/바람의기호94/다랑논96/서해에서98/물음들100/그네102/작은성(城)104/인터뷰106/아름다운독108/환절기110/소통112/가절(佳節)114/저녁이올것이다116

해설장예원(문학평론가)117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인간은매일할당된8만6천400초를노잣돈삼아시간을소진하는여로에있다.주어진시간이지나갈때마다우리는추억이라는풍경을얻는대신죽음에한걸음씩가까워진다.그러므로삶은살아가는동시에죽어가는과정이다.시집「여기까지가인연입니다」는이러한인생의여로에서펼쳐지는풍경들을지나치지않고눈에담겠다는시인진서윤만의방식이느껴지는데이것이곧그녀만의시적형식이기도하다.특히그녀의시들은빛과시간에민감한양상을보이기에마치한편의인상주의회화를보고있는듯한착각에빠진다.빛을예민하게감지한다는사실은시간의흐름을인식한다는것이며햇살속에서생생하게살아있던사물들,그리고그것들이맞이하는소멸과그에따른애수를담고있음을의미한다.

한줄기빛이제몸을꺾어드는
공구점안청년은작은기계하나를열고
어디쯤에서끊어진회로를찾고있다
기계안은온통먹구름이다
낡은책상서랍에붙어있는스티커처럼
엇박자가되어버린나사
기계에연결된뭉툭한꼬리같은콘센트
사이에서대립중이다

누구나한때는중심에서있었다
제코드를해독하지못하고끊어진바람혹은
어딘가에서끌려온시린은빛도그러했을것이다
웅크린청년의수신호는강하다
가끔궤도를가늠하듯이마를다녀가는빨간손바닥
굴절을수리할만큼환심을사려면
절박해야한다는걸안다
그의손이햇빛을끌어들인다

막먹구름을벗어난기계속을쨍하고비추는데
이제야찾았다는듯햇살줄기를잇고있다
쭈그리고앉은종아리를타고
한쪽발에서미세한전류가저릿하며
청년의자세로막들어간다
-「햇살을수리하다」전문

인용시「햇살을수리하다」는시인의현실에대한객관적인식과주관적정서를드러내는데회화성을활용하고있다.상실감이불러일으키는감상성을어떻게해서든조형예술의형태로바꾸어보려는시인의고군분투가엿보이는데,이때문에불필요한수식이나불안의식이겉으로는드러나지않아감정의절제미를획득하고있다.「햇살을수리하다」의주체는“한줄기빛이제몸을꺾어드는/공구점”에서“어디쯤에서끊어진회로를찾고있다”.청년의속사정은구체적으로드러나지않지만“한때는중심에서있었”던사람일수도있다.지금은“기계에연결된뭉툭한꼬리같은콘센트/사이에서대립중”이지만말이다.그래서“기계안은온통먹구름이다”라는시문은아직햇빛이비치지않는어두운공구점의시공간적특징을설명하는것이기도하지만청년의현실상황에대한비유적표현으로중의적의미를지닌다.사소한일이지만절박한마음으로“그의손이햇빛을끌어들”이자기계속은먹구름을벗어나게되고“이제야찾았다는듯햇살줄기를잇고있다”.그는“어디쯤에서끊어진회로를찾”은듯보인다.그런데주목할점은빛의이동에따른공구점이라는공간의변화와주체의움직임을섬세하게회화적이미지로재현한이시를마주하는우리는알수없는비애감과공허감에빠지게된다는사실이다.그것은직접적인정념적표출을하지않았음에도“제코드를해독하지못하고끊어진바람”,“어딘가에서끌려온시린은빛”,“웅크린청년”,“쭈그리고앉은종아리”라는이미지들에서연상되는알수없는슬픔이전달되기때문이다.이것은풍경의재현과그것을응시하는시인의시선이고독하고슬프기때문일수도있다.어떤이유가있어서슬프다기보다그녀의시선,그녀의정서가슬퍼서묘한애상감이발현된다.
-장예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