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나무의 고백 (복효근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 (복효근 시선집)

$14.00
Description
복효근식 촌철살인의 비유와 절창
한국 서정시의 계보를 굳건히 지키며 독보적인 시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 복효근 시인의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이 시인동네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이 시선집은 개정판으로, 복효근 시인의 초기에서 중기까지의 시의 흐름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역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복효근 시의 평온함은 자연을 다룬 시편들에서 활짝 피어나는 바, 자연을 배반하고 문명에 투항하며 숨죽여 지내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촌철살인의 비유도, 성마른 교훈도 없이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절창이 읽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할 것이다.
저자

복효근

저자:복효근
1991년《시와시학》으로활동을시작하였으며『예를들어무당거미』,『중심의위치』,청소년시집『운동장편지』,시선집『어느대나무의고백』,디카시집『사랑혹은거짓말』,교육에세이집『선생님마음사전』등을출간.‘시와시학상’,‘신석정문학상’,‘박재삼문학상’,‘한국작가상’,‘디카시작품상’등을수상.
“등단작품이「새를기다리며」라는작품이다.장구한세월을거쳐강상류의큰바위들이하류의고운모래가된다.고통과고뇌의돌멩이는새알이되고모래벌판에서알은부화되어새가되어날아오른다.나는오늘도내시가저하류에이르러새하얀모래벌그어디에서새로부화하여날아오르기를,그비상의날갯짓소리가들려오기를기다린다.”

목차


제1부
당신이슬플때나는사랑한다13/안개꽃14/숲16/섬진강18/아내와다툰날밤20/물의노래22/한증막에서23/새를기다리며24/양파까기26/수인번호를발목에차고28

제2부
상처에대하여31/겨울숲32/흔들림에대하여134/다친새를위하여36/태풍속에서38/다림질을하다가40/전셋집마당에상추를심다42/기저귀를빨면서44/매화가필무렵46/낙엽47/네푸른자유를위하여48/코스모스통일론50/버마재비사랑52

제3부
토란잎에궁그는물방울같이는55/씨알속의우주한그루56/가마솥에대한성찰58/개똥59/새에대한반성문60/고전적인자전거타기62/소리물고기64/등신불65/버팀목에대하여66/보리를찾아서68/광어에게70/스위치백71/소리세례72/대한국인(大韓國人)의손가락74/꽃등심76/염소와나와의촌수77/폐차와나팔꽃78/겨울밤80/새발자국화석81/춘향의노래82/네속눈썹밑몇천리84

제4부
꽃본죄87/아름다운번뇌88/누떼가강을건너는법90/강은가뭄으로깊어진다92/어느대나무의고백94/탱자96/꽃앞에서바지춤을내리고묻다97/물총새의사냥법98/만복사저포기100/운주사에서배운일102/허물103/콩나물에대한예의104/석쇠의비유106/소금의노래108/산길110

제5부
목련꽃브라자113/5월의느티나무114/잠자리에대한단상116/쟁반탑118/생(生)119/연어의나이테120/틈,사이122/어느연민의시간2124/비혹은피126/별127/냉이의뿌리는하얗다128/외줄위에서130/나무의전모132/배롱꽃지는뜻은134/넥타이를매면서135/각시붓꽃을위한연가136/잔디에게덜미안한날138/목련에게미안하다140/별가족141/청빈142

해설이강엽(대구교대교수)143

출판사 서평

복효근식촌철살인의비유와절창

한국서정시의계보를굳건히지키며독보적인시의길을열어가고있는복효근시인의시선집『어느대나무의고백』이시인동네시인선으로출간되었다.이시선집은개정판으로,복효근시인의초기에서중기까지의시의흐름을한눈에들여다볼수있는역작들로구성되어있다.복효근시의평온함은자연을다룬시편들에서활짝피어나는바,자연을배반하고문명에투항하며숨죽여지내는현대인들에게교훈이될것이다.이를테면,촌철살인의비유도,성마른교훈도없이자연스레터져나오는절창이읽는이로하여금탄성을자아내게할것이다.

해설엿보기

시집을고를때면으레오랜습관이발동한다.먼저시집의맨앞에실린시를보고,다음으로시집제목으로삼은시를본다.물론시제목을시집제목으로빼지않은경우도적잖아뒤의기준이꼭통용되기는어렵지만그럴때는제목으로뽑은시구절을보면얼추맞아떨어진다.꼭시집만그럴것이아니어서,소설이나영화도도입부의흡인력과타이틀롤을맡은주인공의매력도가작품전체를좌우한다.
복효근의이번시집은「당신이슬플때나는사랑한다」를맨앞에싣고,「어느대나무의고백」을시집제목으로삼았다.시선집인까닭에좋은시만을가려뽑았을테지만,그가운데또가려낸게그두편이니가히득의작이겠다.그런데흥미롭게도두편모두에뜻밖의반전이펼쳐진다.「당신이슬플때나는사랑한다」는“내가꽃피는일이/당신을사랑해서가아니라면/꽃은피어무엇하리”로황홀한연가처럼시작해서는“당신이슬플때나는사랑한다”는아픈읊조림으로끝을맺는다.「어느대나무의고백」은남들은제게서“늘푸르다는것하나로/내게서대쪽같은선비의풍모를읽고가지만”정작자신은“시들지도못하고휘청,흔들리며,떨며다만,/하늘우러러견디고서있는것이다”라고힘겹게실토한다.
오래전,산사에서칩거하시던고승께서“산은산이고물은물이다.”라는법어를내놓았을때그풀이를두고세간이떠들썩했다.“A는A이다”라는동일률을벗어나서는사유의걸음을한발짝도뗄수없을텐데그당연한말에무슨뜻이있는지의아했기때문이다.그러나산이산이아니고물이물이아니며,또산이물이기도하고물이산이기도하며,종국에는산이없다면물이없고물이없다면산도없는걸모른다면,그법어는한갓동어반복의흰소리에그치게된다.그이면의미세한이치를더듬어“산은산이고물은물이다”를말할때,비록소리의크기가엇비슷해보일지라도울림의깊이는천양지차이다.
시인의읊조림또한그럴것이다.낮은목청으로담담하게읊었을뿐인데큰울림으로되돌아올때,거기에서우리는산과물이뒤바뀌다마침내하나가되는비의를엿보고,뒤엉켜일물(一物)이된산과물이산절로물절로돌아가는비결에이르게된다.이점에서복효근시인의시를읽어내는독법은뜻밖에도소박한데있다.왜사랑의기쁨이아닌슬픔에기꺼이몸을던지고왜남들이읽어내는자신의자랑스러운모습을부인하는지,아니어떻게슬픔속에서사랑을피워가며어떻게자신의부끄러운속내를수줍게실토하는지,그것이바로복효근표시이고또복효근식삶일테니말이다.

꽃이라면
안개꽃이고싶다

장미의한복판에
부서지는햇빛이기보다는
그아름다움을거드는
안개이고싶다

나로하여
네가아름다울수있다면
네몫의축복뒤에서
나는안개처럼스러지는
다만너의배경이어도좋다

마침내는너로하여
나조차향기로울수있다면
어쩌다한끈으로묶여
시드는목숨을그렇게
너에게조금은빚지고싶다
―「안개꽃」전문

시인은장미가되는것도,장미를장미로보이게하는햇빛이되는것도마다하고,안개꽃이되어그저장미의아름다움을잠깐거들고자한다.그런데붉은장미가정열적인사랑을뜻한다면,흰안개꽃은죽음을뜻한다.서양에서의흰색은종종그렇게모든것을깡그리없애버리는상징이되기도한다.시인이목도하는바역시그렇다.죽을때까지지켜내고싶은사랑,죽음까지불사하는그런사랑인것이다.그러나이시를시로만드는지점은지금여기에서나와함께하는사랑을사수하겠다는의지가아니라,목숨을건다한들함께할수없는절박한사정에있다.맨마지막연에보이는“어쩌다한끈으로묶여/시드는목숨을그렇게/너에게조금은빚지고싶다”가빛을발하면서그간쌓아올린응집력이폭발한다.
안개꽃의운명은가혹하다.잔잔하고은근하게피어만발의축포를느껴볼새도없이또이내말라간다.그러나고작장미를에워싸기위해베어지고말라가는그슬픈운명을시인은빚을지는것으로표현했다.네가빛나도록네게호의를베풀었으니네가내게빚을진것이라고살짝으스대는대신되레너와한끈으로묶인덕에네향기를잠깐품어볼수있으니고마운것이라며움찔대는것이다.한술더떠“빚을졌다”가아니라“빚을지고싶다”로갈음함으로써비로소시의숨통을탁틔운다.빚지는것마저마음대로안되는사정을담아,살아서는닿을수없는고원한한세상을아물대게하기때문이다.
복효근의사랑법은그렇다.상대를위해다내어주고도생색은커녕빚을졌다머리를숙이는안쓰러움의연속인데이유는간단하다.「당신이슬플때나는사랑한다」에서보듯이사랑의대상이여간해서는제차지가되지못하기때문이다.여기누군가기쁨에겨워신나게있다상상해보자.기쁨을함께하고자하는이들이널렸을것이고,잘나가는덕좀보자고덤벼드는객들은또얼마나많을것인가.그럴때손을내밀어함께춤을출주변이못된다면,상대가실의에빠져깊은슬픔에잠겨있을때에야겨우내가들어설자리가생긴다.당신이힘들때,당신이슬플때그때라야내가온전히당신을사랑할수있다는뜻이다.
―이강엽(대구교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