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의 감정 (박승출 시집)

어떤 날의 감정 (박승출 시집)

$12.00
Description
파산된 낭만의 숲을 걷는 산책자
2010년 월간 《우리詩》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승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어떤 날의 감정』이 시인동네 시인선 227로 출간되었다. 박승출의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다. 근대 이후 신의 자리는 이미 사라졌지만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불안과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회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 지점이야말로 생각하는 인간 혹은 예술가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박승출 시인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해 깊게 탐구하는 인간의 자세에 대해 탐닉한다.
저자

박승출

시인
서울에서태어나2010년월간《우리詩》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거짓사제』가있다.

목차

제1부
그냥이유ㆍ13/너에게가는길ㆍ16/사계ㆍ18/감은눈ㆍ20/일기예보ㆍ23/이별의이해ㆍ26/물안개ㆍ28/장마ㆍ30/산책ㆍ33/일렁이는수평선ㆍ36/이어달리기ㆍ38/다시산책ㆍ40/오늘의기분ㆍ42

제2부
어떤날의감정ㆍ47/반달ㆍ50/슬픔에대하여ㆍ52/이름ㆍ56/질투의묘미ㆍ58/13월ㆍ60/저녁이오는소리ㆍ67/젤리ㆍ68/걸어가는사람ㆍ70/내일이와도ㆍ72/저녁6시의기다림ㆍ74/밤은우리를훔치는도둑들ㆍ76/모자ㆍ78

제3부
안부ㆍ81/오월어느날ㆍ82/순수의벽ㆍ86/대결ㆍ88/작은노을큰노을ㆍ90/독서하는밤ㆍ92/기다리는동안ㆍ94/사랑은구름위에앉아있는바람같아ㆍ95/무기력에대하여ㆍ96/저녁이올때까지ㆍ98/밤과낮사이ㆍ100/밤의실루엣ㆍ102/색연필ㆍ104

제4부
거짓말ㆍ107/밤의기울기ㆍ108/어떤하루ㆍ110/달이뜨는공원묘지ㆍ112/봄꿈ㆍ114/속삭임ㆍ116/화석ㆍ118/따라걷기ㆍ119/내일의색깔ㆍ120/안개낀날ㆍ122/동네한바퀴ㆍ124/죽지못하는시체들의밤ㆍ126

해설우대식(시인)ㆍ127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시가어디서출발하는가하는문제는시의내용뿐만이아니라형식더나아가시세계의근원이무엇이냐하는문제와맞닿아있다.박승출시인의이번시집은적어도가시적인세계를드러내는것과는거리가있다.그것은그의시가보이지않는세계에대한탐구에바쳐진다는것을뜻한다.시집에등장하는일상적사물이나풍경도내면에새겨진기억의조각이나이미지라는사실이그것을반증한다.관념에투영된사물들은그만의방식으로굴절되어더러는냉소적으로질서화되어있다.시를읽으며구체적인사건은알길이없지만시인만의깊은상처가무의식속에도사리고있음을느끼게된다.시가어떤결핍의소산이라는말은이시집에어울리는명제일터이다.서술적인긴문장속에아로새겨진관념은독자를영성의세계로이끄는힘을발휘하고있다.

사는데이유를찾으면못살아

화가많은내친구는먼나라의노래를좋아하고
유리창안의마네킹을진짜사람이라믿는다
불쌍하다며눈물도없이눈동자를그린다
그러다또화를낸다

그래이해한다

여름에는잡풀만무성하고
겨울이자꾸뜨거워지는이유
겨울에눈이오지않는이유에대해

새벽기도마치고귀가하다전원사망

신은죽었을까
처음부터아예없었을까

죽을듯이슬퍼하다가도배가고파
국에말아밥을먹는다

그래이해한다

잘살라는말도없이
애인은떠나버렸고

어제읽은책은제목도기억나지않는다
오늘은다읽지도못할책을빌리러또도서관에가고

어떤날,고양이들은왜미친듯이길바닥에납작하게눌려있나
떠돌이개들은왜길을떠돌게되었을까

지금내가보고있는별빛은
죽은빛일까살아있는빛일까

사과를한입깨물었는데
안에서꼬물꼬물,벌레가기어나온다
벌레는나를이해할까
-「그냥이유」전문

시집의표제작인이시는평범한서술처럼보이지만세계에대한심각한시선을보여주고있다.2연에서진술은합리적인인과성이위배된상황을중심으로한다.화가많은친구가먼나라의노래를좋아하고유리창안의마네킹을진짜사람이라믿는다는비인과적상황에대해시적화자는“그래이해한다”고답한다.“겨울이자꾸뜨거워지는이유/겨울에눈이오지않는이유”는결국인간의문명사적폐단에서비롯되었을터인데그마저도“그래이해한다”는것은역설적인맥락은인간이구조한세계에대한불신이바탕이되어있다는것을보여준다.“신은죽었을까”라는근원적물음이야말로이시집전체를관통하는근원적물음이다.근대적기획이후에신의자리는이미사라졌지만인간의내면에도사린불안과세계의부조리에대한회의는쉽게지워지지않는다.이지점이야말로생각하는인간혹은예술가의위치이기때문이다.신이사라진자리를대신한신화란롤랑바르트의말처럼특정한계층의세계관혹은이데올로기를자연화시킨것이다.이러한신화는권력으로작동하며우리세계를규율하게된다.겨울이뜨거워지고눈이오지않는이유도따지고보면문명이라는이름아래자행된권력의축적에서비롯된결과다.그러한점에서본다면“그래이해한다”는시적진술은역설적의미를가지게되는것이다.“죽을듯이슬퍼하다가도배가고파/국에말아밥을먹는다”는것은육체적인간의필연적모순을보여준다.시적화자는그것조차도“그래이해한다”고진술하고있다.이모든긍정은뒤집어보면세계의질서와인간의삶그어떤것도이해할수없다는근원적회의에도달하게된다.책을빌리러도서관에가는시적화자의행위를포함하여고양이들이로드킬을당하고개들이떠돌게된이유를묻는장면은이세계는살만한곳이냐는물음과등가의값을지닌다.왜그런지알수없는공간이이세계인것이다.시적화자가독백처럼내뱉는“지금내가보고있는별빛은/죽은빛일까살아있는빛일까”라는물음은시적화자의낭만적욕망이투영되어있다.이구절은루카치의『소설의이론』서문을떠올리게한다.“별이빛나는창공을보고,갈수가있고또가야만하는길의지도를읽을수있던시대는얼마나행복했던가?그리고별빛이그길을훤히밝혀주던시대는얼마나행복했던가?”이글은종교와신화를상실한서구문명의몰락을의미하는것이다.같은선상에서위시는우리시대에별처럼빛나던삶의질서와가치의상실을보여준다.사과안에서기어나온벌레는존재와존재의관계그리고사건의우연성이라는이해할수없는세계의형상을보여준다.앞에서말했듯예술이란이러한부조리와우연에대한해석이라할수있다.알수없는세계에대한탐구가이시집의전체맥락인셈이다.
-우대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