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칭이 점점 두려워질 무렵 (정수자 시집)

인칭이 점점 두려워질 무렵 (정수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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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폭발하는 별들의 뒤란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가히 시인선〉이 출범한다. 새롭게 출범하는 시인선의 상징이자, 그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번째 시집으로 정수자 시인의 『인칭이 점점 두려워질 무렵』을 펴낸다. 정수자, 라는 이름 자체로 하나의 계보가 되어버릴 만큼 그녀의 시조는 독보적이고 창의적인 세계를 구축해 왔다. 존재 자체가 한국 현대시조의 현주소이자 미래인 정수자의 이번 시집은 가장 완벽한 순간에 언뜻 시야에서 사라지는 별똥별처럼, 폭발함과 동시에 여백을 만든다. 그 폭발하는 여백이 독자의 머릿속에 깊은 여운과 상흔을 남길 것이다.
저자

정수자

경기용인에서태어나아주대학교국어국문학과대학원을졸업했다.문학박사.1984년세종숭모제전국시조백일장장원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탐하다』『허공우물』『저녁의뒷모습』『저물녘길을떠나다』『비의후문』『그을린입술』『파도의일과』등이있다.중앙시조대상,현대불교문학상,이영도시조문학상,한국시조대상,가람시조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칼13/뭉크는아니지만14/가을의밑줄15/흰의자둘이서16/오늘의자세18/무릎이툭풀릴때19/어느새20/빈잔처럼서운해서21/컨트롤씨안녕?22/사족24/멀어서쓸쓸한25/관같은밤에26/멍한날27/나아종28

제2부
그리운백야31/머무르는이름32/소년의긴손가락이33/체34/심장을켜는말35/눈소풍36/여진37/윤슬농현38/운문에기대어39/낯선길에서문득40/목포41/여행의표정42/철사와천사사이43/심장을남겨둔이유44

제3부
행려47/이월48/하루치발을모으듯49/마음이마려운날50/얼마나더붉혀야51/허튼여백52/세사람우산은어디에53/오후도기웃할즘54/출처56/회悔라는즘생57/충들과춤을58/회동그란이59/수면양말60/콧바람농사61/오오62

제4부
마음머는소리65/독66/호젓한호사67/연두바람피는날68/고려엉겅퀴69/호적70/손차양71/군짓에냉수켜듯72/찍지말라니까73/밤의시렁74/비문76/문소리77/바나나에의탁이길어질때78/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79/어쩌면80

제5부
그리움의유적지83/붓는사람84/마음을두고가서85/시가머니86/문병88/곁의예법89/니캅을찍으려다90/가을의율92/아무튼다문다문93/처음의회복이듯94/꽃신과소년96/연두율97/아직은98/줄99/쥐구멍시낭100

해설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명예교수)101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오랜만에큰그림의시들을만났다.정수자의시들은메시지에사로잡혀절절매지도않고표현을궁구하느라겉멋을부리지도않는다.그녀는대상을넉넉히껴안고도남을언어의거대한그물을세계에던진다.그것은클뿐만아니라동시에섬세하고,완결을지향하면서완결을의심하는,완성과회의의탄탄한그물이다.그것은확고한중심을견지하면서대상을향하여아름다운비례의날개를던진다.그것이사물을포착할때,가장잘들어맞는것들끼리부딪힐때만낼수있는경쾌한소리가들린다.어떤‘삑사리’도허락하지않는그녀의정확한투구는비례의왕국에도달한자만이가질수있는고전적기술이다.그러나그녀는도달의순간에자신을지울줄도안다.압력이가장높은단계에서폭발하는별처럼,가장완벽한순간에언뜻시야에서사라지는별똥별처럼,그녀의언어는폭발하면서동시에여백을만든다.폭발하는별들의뒤란이야말로그녀의시적여백이만들어내는고요한풍경이다.폭발하는별들의뒤란은아름다운빛의여운과조용한성찰과새로운길에대한탐구가동시에일어나는공간이다.
정수자의시들이폭발할때,독자들은그절대적인아름다움에환호한다.그뒤란에서부재와해체의고요한성찰이이어질때,독자들은자성의시간에빠져든다.작은힘들이모이고모여어느순간손끝으로에너지가폭발할때,몸은춤이된다.그녀의시들은축적된에너지의폭발과해체,힘의모음과놓음속에서마침내춤이된언어이다.발끝에서치고올라적삼을타고흐르다마침내손끝에서폭발하는춤사위처럼그녀의언어는지고한완성을향해있다.그러나그녀의언어는완성의순간에허공을만지는손끝처럼,축적된에너지를저절로소진의상태에이르게한다.그것은완성의욕심에대한자성이면서완성의완성성에대한회의이고사태후에나만날수있는고요한뒷자리이다.

보았는가,저꼼질은틀림없는물이렷다

다가서면스러지는모래노래아니라

사막속윤슬을켜는신의미소같은것

무현無絃의농현弄絃처럼사물대는물비늘들

가히홀린눈썹을술대삼는신기루에

다저녁물때를놓치듯버스도지나칠뻔!

잡아보려다가서면고만큼씩멀어지던

시라는술래같은아지랑이멀미속에

줄없는거문고타듯물의율을탐했네
-「윤슬농현」전문

이시집에서가장아름다운성취중의하나인이작품을보라.시인은사막에서바람에따라흐르는모래의움직임을물의윤슬로읽는다.그것은마치시신을어르고달래살려내는마법사의행위같다.죽음의마당엔“율”을이룰악기의현도없다.사막의윤슬이라는모순형용속에서생명의“물비늘들”은마치“무현無絃의농현弄絃처럼사물”댄다.현이없는곳에서현을가지고놀다니.죽음에서생명을길어올리는작업은무언가에홀리지않고는,미치지않고는불가능한일이다.죽음의마당에서생명의움직임을읽는것은오로지“홀린눈썹”을가진자에게만가능하다.그러나홀린자가자신을홀린대상을향해다가갈때그것은자꾸멀어진다.이다가섬과멀어짐의“사막속윤슬”어딘가에삶의닻들이내려져있다.이아름다운착각이삶이다.시인은이착시의과정을절정에이르는춤사위처럼접었다펴고폈다접으며그려낸다.마침내그절정에서시인이허공을향해손을뻗을때,이착각은다름아닌시쓰기의과정으로전치된다.결국시적화자는“시라는술래같은아지랑이멀미속”에서헤맨것이다.이마지막진술속에서모든신기루는해체되고,그폐허의뒤란에서엄밀한진실이반짝인다.시인이하는일은바로“줄없는거문고타듯물의율을탐”하는것이다.시인의작업이독특한것은사막속에서도“물의율”을찾아야한다는사실이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