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에 잠깐 빠졌을 뿐입니다 (한혜영 시조집)

뒷모습에 잠깐 빠졌을 뿐입니다 (한혜영 시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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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꽃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
새롭게 출범한 〈가히 시인선〉의 두 번째 시집으로 한혜영 시인의 『뒷모습에 잠깐 빠졌을 뿐입니다』가 출간되었다. 태평양 건너 이국의 땅에서 모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 중에서 가장 왕성한 창작열을 보이고 있는 한혜영 시인의 이 시조집은 한마디로 경이(驚異)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시와 동시, 동화에 이르기까지 경계를 넘나들며 ‘모범적 글쓰기’의 선례가 되어온 한혜영 시인의 이 시조집은, 한국 정형시의 품격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꽃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 이 시조집을 읽는 독자라면 한혜영 시인의 ‘절제의 미학’에 몸서리를 치게 될 것이다.
저자

한혜영

충남서산에서태어나1989년《아동문학연구》동시조당선,1994년《현대시학》추천,1996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태평양을다리는세탁소』『뱀잡는여자』『올랜도간다』『검정사과농장』,동시집『치과로간빨래집게』외다수가있다.미주문학상,동주해외작가상,해외풀꽃시인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목련13/불문율14/겨울숲에서15/기형의발들16/이름많은나무17/서쪽의시간18/어머니와앵두나무19/두벌꽃20/버들과여자22/나비는23/스테인드글라스24/입동에앉아25/벽을넘는방법26/과거로돌아가다27/요요의계절28

제2부
길동무를위한31/날아가는숭어32/흔적33/병(病)에갇힌기억34/폭우36/발화지점37/분수앞에서38/계절을울다40/사모의시간41/무너진시절42/운명은43/불면44/맹조(盲鳥)46/백목련47/무한복제시대에대한상상48

제3부
이율배반51/산타가온다는것은52/이명54/허기진풍경55/그언니56/겨울갈대숲58/명명59/그겨울,그런일이60/종착역62/직유에대하여63/사라진휴가64/허상을본다는거66/터치,터치67/이런창업68/잔인한허기70

제4부
가족73/사내와전봇대74/말에대하여75/오리배와모리배76/빵빵한거짓말78/바람의족보79/복어의기억80/어머니의독립81/원행(遠行)에서얻다82/희미한아버지84/보험의필요성85/죽어도좋아86/파손에관한뉴스87/남극빙하88

제5부
황혼의사생활91/추락한자들의모임92/지독한오해93/충복의죽음94/이런줄다리기95/실종의변(辨)96/계단의자격98/세탁소와단골들99/빌딩들100/양심101/이름102/자연에게배우다103/험한시절104/플로리다105/망향106

해설이병국(시인·문학평론가)107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한혜영시조집『뒷모습에잠깐빠졌을뿐입니다』는간결한언어로삶과죽음의사유를정제해나간다.시조의형식이지닌규율은삶의제약을상징하는듯하지만,삶이라는것이제약에순응하며억압된양태에머물러있지않듯한혜영시인의시는주어진조건을변주하여그안에서자신만의언어를축조함으로써미학적질감을형성해낸다.이는바로보이는앞이아닌뒤를향한시인의시적응시태도에기인하는것처럼보인다.표제에언급된‘뒷모습’이라는시어는시집을통틀어,여는시「목련」에단한번등장한다.그럼에도시집전체를아우르는결정적시계(視界)로작용한다고말해도과언이아니다.우리는대상을마주함에우선하는것으로‘앞’을상정한다.그것은화려하고긍정적이며진보적인방향을가리키는기재로상상된다.하지만‘앞’은대상이나에게보여주고자한바를표상하고있기에그너머를은폐한다.우리는다른존재에게자신을드러내야할때‘앞’이라고생각하는바를꾸며보여준다.이는어쩌면보고자하는것을보여주는태도이며,보고싶은것을보려는태도와결부되는것인지도모른다.그런점에서‘앞’은역설적이게도존재의본질을은폐하며진실을거세하고남은자투리라할수있다.
반면에‘뒤’는부정적이고수동적이며감춰진무엇을의미한다.그안에는더러움,추악함,부끄러움,욕망,거짓등의것들이있다고상상된다.앞에내놓을수없는것들이그안에있다고믿는다.하지만우리는‘뒤’를통해존재의진실에닿을수있다는걸안다.화려하게꾸밀수있는‘앞’과는달리‘뒤’는은폐될지언정완벽하게삭제할수없기때문이다.존재의본질에닿기위해요구되는것은그것이보여주고자하는‘앞’이아니라그너머에있는‘뒷모습’을응시하는태도이다.억압하고억눌러놓은‘뒤’를향한접근이야말로‘나’가‘너’와함께하는윤리의시작이라할수있다.물론이때의‘뒤’또는‘뒷모습’을향한응시가꼭타인을향하는것만은아니다.타인혹은타자의뒷모습을인식하기전에‘나’의뒤를살피는태도도윤리적수행의출발이된다.한혜영시인이이번시집을통해응시하는“뒷모습”은타자와세계의뒷모습이기도하지만전반적으로시적주체의뒷모습이자시인이전유하고자하는경험적시간의총체이기도하다.
「목련」에서화자는“목련”의“뒷모습을잠깐보았을뿐”이라고말한다.목련은“시구”라는시어를통해화자가무엇인가를던지고있으며,그것이“포물선을그리며”“계절의담장”을넘어가버렸다는것을드러낸다.“마지막/꽃한송이”도떠난지금,화자는“어떤청춘이/공을받아애인에게줬을까”묻는다.그리하여목련은공이되고다른청춘이받아애인에게넘겨줄수있는그무엇이된다.이를어떻게해석할수있을까.다양한해석이가능하겠지만“청춘”이라는시어에주목해보면,목련은화자가지녔으나이제는계절의뒤안길로넘긴시절,즉청춘의시간이라고가정할수있을것이다.그리하여시적화자는계절의변화에따라목련이지듯,청춘(靑春),푸른봄을,나아가꽃이피는모든계절을경험하고이를떠나보내야하는나이에이른것으로보인다.이때잠깐본뒷모습은결국화자가경험한시간의흔적이자그동안무시하거나은폐했던삶의이면이라할수있을것이다.
화려했던청춘을보낸,그결여의화자는부정적감정에사로잡힐수도있다.그것은슬픔의정동이되어존재를잠식할지도모른다.그러나시인은“슬픔이내게로오면묻지않고젖을거”(「불문율」)라고말한다.부정적감정을거부하지않고그것을수용하여사유하며자기화하고자한다.결여가야기하는그모든것을기꺼이포용함으로써존재를부정하거나그에잠식되지않고자신의기억으로전이하여삶의부분으로받아들이는태도를보이는것이다.
-이병국(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