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은 웃었다

그래서 오늘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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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세계와의 불화 그리고 자아의 이중 변주(變奏)
2010년 《부천시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2018년 《미래시학》으로 등단한 강수경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그래서 오늘은 웃었다』가 문학의전당 시인선 378로 출간되었다. 강수경 시인은 개인이면서 역사적 개인으로서 자신을 기록하려는 열망으로 세상과의 불화를 끝내 극복한다. ‘그래서 오늘은 웃었다’라는 단순한 명제에는 시인의 ‘웃음’에 대한 추적(追跡)을 충동하는 떨림이 들어 있다. 우리는 아마 이쯤의 이해에 닿아 있을 것이다. 인과를 넘어서면 무작위의 열정만 남지만, 인과 위에 숭고나 헌신 같은 개념을 포개면 인간은 초월보다 존재의 통증을 선택하고 말 것이다. 강수경 시인은 그 선택에 있어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

강수경

시인

강원평창진부에서태어나2010년《부천시인》,2018년《미래시학》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어제비가내렸기때문입니다』가있다.현재한국작가회의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셋이서시동무〉동인.

목차

제1부
너에게닿을수없는말13/4F14/반성혹은변명16/방18비오는밤20/길21/유리알유희22/콤프레샤24/나침반26/물꽃28/주럽30/사계32/도서관에서34/그래서오늘은웃었다36

제2부
꽃39/꽃향기에대한기억40/우리심장은아직,뜨겁습니다42/잣눈내린아침45/상사화꽃대는더디올라왔다46/웃고있는꽃들은아무도울지않았다48/가지치기50/쉬야,응가51/흡혈공화국52/독불장군54/꽃밭에는꽃들이55/장마56/침묵의봄58/안전제일60

제3부
공생63/씨눈64/초록,물들다66/각인67/꽃반지끼고68/달이품은저수지70/꽃의발견71/누리장나무에대한오해72/모래무덤74/밤송이76/수당(水塘)77/또다른시작점78/시월이80/하나의작품이되는82

제4부
오랜사랑85/맏이소나무86/작은마의품88/석벽90/종인우매92/검룡소가는길94/허세95/원해(遠海)96/어떤사랑98/허공에띄운편지100/닛사나무아래102/철없는날개104/한여자106

해설백인덕(시인)107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세상은그렇다,혹은원래그런것이다.무의식적으로되새기는이명제는단순긍정의언표로보인다.하지만화자의이중적태도가감지된다.세상을나의바람대로만들수없다,나의힘으로바꿀수없음도잘알고있다.그렇지만너무확실해보이는이사실을호락호락수긍하지만은않겠다는것이다.이때발화에배어나는자조적뉘앙스야말로자기의무력감을표지하면서동시에자신이아직세상에함몰하지않았다는비의(秘義)를함축한다.세계와의불화는자신의존재근거가된다.지난세기의사상가안토니오그람시는“미래를예측하는유일한방법은미래의사건이우리의바람과일치하게만들고,바람직하지않은시나리오를피하기위해서로힘을모으고함께노력하는것뿐”이라고역설했다.그렇다,그람시의주장은완벽하지는않지만어쩌면유일한해법을제시한것인지도모른다.개인의투지와연대가발휘하는힘에대한이낙관적신뢰는지난세기가역사의시대이기에가능했던꿈이었을것이다.그나마도그람시자신이세상일반과다르게생각했다는이유로갇힌감옥에서사유로부정할수없는현실의벽을마주하고있었기에더큰울림을갖게된것일지도모른다.
언어와마찬가지로기원이나계보와관련하여묻는다면,누구도자유의지의최종심급인절대정신의부재로인한역사의종언을부정하기어렵다.산업혁명과자본주의의고착,대중매체의확산과정교화에따른대중문화의일상화.오늘우리시대에는파편화된개인이검은유령처럼몰려다니지않는다.모든존재는언제,어디서든대체가능한모듈(module)이되어접속되거나차단될뿐이다.파편은떨어지거나깨진전체를상상할수있다.이상상의힘을통해본래를복원하는것이아니라다른세계의계기(motive)를형성한다.하지만모듈은자기복제가곧전체의형성이기때문에기원이나계보를갖지않는다.근원을알수없는곳에서수시로밀려오는물결에따라떠오르거나가라앉는운동의반복이역사를대체한다.이렇게존재는다익명성의바다에서익사한다.
강수경시인이드러내는세계와불화하는자아의실존적고뇌는‘자기만의방한칸’이라는개인적희망과“아픈손가락들을위해/집을짓는”(「시인의말」)당위의사이,틈,뜻대로좁혀지지않는간극(間隙)에위태롭게걸쳐있다.

오늘은어제가되었고그래서오늘은웃었다어떤날은화창했으나오후엔흐렸고저녁엔잠시붉은노을이더니밤에는비가내렸다새벽엔잦아진빗물이우수관에서작은곤충들의날개비비는소리를내고아침엔안개로피어올랐다모든것들이어디론가숨어버린밤사람들은익명성을바랐고숨은것들을찾느라기억의해마를뒤졌다잠을이루지못한은행잎들은보도블록에노랗게실신했다로또는맞지않았고사람들은한끼밥보다희망에돈을걸었다기다리던소식은번번이부러지고부러진소식모아불쏘시개로나써볼까불화하는오늘은벌써어제가되었고,그래서오늘은웃었다
-「그래서오늘은웃었다」전문

표제작인이시는‘자연/인위’의대립을통해인과적접속사인‘그래도’의의미를되묻는다.그물음의끝에는현존재의유일한거소(居巢)인‘오늘’에대한회의가자리한다.“어떤날은화창했으나오후엔흐렸고저녁엔잠시붉은노을이더니밤에는비가내렸다새벽엔잦아진빗물이우수관에서작은곤충들의날개비비는소리를내고아침엔안개로피어올랐다”라는진술은가치판단이개입하지않는관찰의결과다.무작위로형태가변한것같지만,흐리고붉다가비가내리고안개로피어오르는현상은우리눈이포착하지못하는원인과결과,혹은작용과반작용의결과일뿐이다.반면에작품의후반부,‘익명성’을바라며‘기억의해마’를뒤지는사람들의행위는“로또는맞지않았고사람들은한끼밥보다희망에돈을걸었다기다리던소식은번번이부러지”는것처럼이유없이좌절한다.누군가는‘운’혹은‘통계적확률’을말하고싶을것이다.하지만,인간의행위는인과론적으로작용한다는것이근대이후계몽의기획이었다.게으른자는가난하고,자본의논리에충실한자만이그결실을따먹을수있다.새삼거론하기도버겁지만,이논리는선행조건이라는변수가압도적으로작용하는상관관계를인과로오역(誤譯)할때흔히발생하는인식적기만이다.어제는그저지나갔기에오늘에는오늘몫의희망이남아있을것이라는기대를무작정품게한다.시인은이사실에회의를드러낸다.“불화하는오늘은벌써어제가되었고,그래서오늘은웃었다”라는선언에서‘그래서’는인과를보여주는것이아니라‘불화하는오늘’이‘어제’란이름으로‘오늘’을잠식한다는것을이면의논리로드러낸다.따라서이때의‘웃음’은세계를향한화자의이중적태도를온전하게포함한다.
-백인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