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조금 오래 그리워해도 좋을 (강정숙 시집)

아직은 조금 오래 그리워해도 좋을 (강정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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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인의 눈에 비친 다정하고 쓸쓸한 세계
200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강정숙 시인의 시조집 『아직은 조금 오래 그리워해도 좋을』이 가히 시인선 004로 출간되었다. 등단 22년 만에 두 번째 시조집을 선보이는 강정숙은 과작의 시인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 과작이 결코 흠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시집 속에 담긴 언어의 숨결들이 한결같이 절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강정숙 시인은 그런 사람이다. 함부로 언어를 남발하지 않고 함부로 토설하지 않는 시인의 덕목을 간직한 사람이다. 이 시집은 다정함의 독백이면서 쓸쓸함의 발로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강정숙 시인만의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한 반성적 글쓰기를 통해 새로이 빚어나가는 자기 성립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

강정숙

경남함안에서태어나2002년《중앙일보》중앙신인문학상으로등단했다.시집『환한봄날의장례식』과시조집『천개의귀』가있다.수주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미안하다,몸13/봄밤14/저녁의나무도마15/별리16/봄날은가고17/애련동백18/내사랑우도牛島20/숲21/사과의거처22/오늘은상품이다23/천개의입24/구절리옛집25/가을소묘26/그가을,부석사27/12월28

제2부
오리의시간31/낙과32/자작나무숲에서33/시인의밥34/오래된집36/통영37/내상38/언덕39/국경없는잠40/이명耳鳴41/세렝게티42/먼사랑43/냉이꽃한나절44/말리다45/섬46

제3부
후일담49/위험한동거50/찔레꽃51/겨울을건너는일52/9월53/그저수지54/진도바다55/유월에병을앓다56/저,하현57/나를빚다58/무릎안부59/흐린날의풍경60/이상향을찾아서61/개망초처럼62

제4부
흉터의힘65/소금이올때66/살구의거처67/동백유서68/향기에찔리다70/오늘아침71/연꽃질때72/봄날도고운봄날73/보름달74/산그림자75/사진한장76/개똥지빠귀78/인도기러기79/그늘에서울다80

제5부
내것이아닌것들83/그리운것은등뒤에있다84/목숨깊은손85/나를스케치하다86/지도에없는너88/그해겨울89/소래포구90/능소화피는이유91/그,달팽이집92/장미석94/나쁜봄95/풀들의무덤을지나며96/데칼코마니97/멀고도오랜다정98

해설임지훈(문학평론가)99

출판사 서평

의미는대상자체에있지않다.의미는대상을바라보는우리의눈에달려있다.한여름나무의짙은푸르름도,타오르는저물녘의붉은노을도,혹은녹아흐르는초봄의강물조차도그자체로는어떠한의미도없다.오직그것을바라보는인간에의해서만유의미한사물로거듭난다.그렇기에하이데거는다음과같이말한다.“‘세계(世界)’란인간의의지와관계없이내던져진존재의무대에불과할따름이기에본질적으로무의미하며,오직세계-내-존재에의해서만유의미해질수있다”고.
그럼에도세계는우리의눈에의미로가득찬충만한세계인것처럼감각된다.눈에비친무수한아름다운사물들이본원적으로는우리와아무런관계도없으며어떠한의미도내포하고있지않다는사실을도저히믿을수없을만큼,세계는우리를향해무수한의미의손짓을보낸다.사계절의흐름에따른자연의역동은그자체로강력한메시지가되며,인간은그러한자연의모습을바라보며생에대한의미를포착한다.정녕세계자체가인간과아무런관계도없으며,본원적으로무의미한것이라면,우리는왜자연의역동속에서무수한의미를포착하고이를언어화하는것일까.그것은인간이자신의눈에비친모든사물에자신을투영하며사물의역동을의미의체계로받아들인다는본능때문이다.인간의의미부여행위는의식적일뿐만아니라무의식적인것이기도해서,자신의눈에비친모든사물과현상에자신의경험을투영하고의미를포착한다.이러한과정에서인간은사물을통해,세계를통해,자신을반성적으로발견한다.매순간우리를향해손짓하는충만한의미의세계란뒤집어말해내안의언어화되지못한의미들이눈앞의사물을경유하여의미화되는과정이라할수있다.
지금우리가눈앞에둔강정숙시인의시집,「아직은조금오래그리워해도좋을」또한마찬가지이다.이시집은시인이정련해낸수많은시적공간이무수한적층을이루며세계가지닌부단한면모를다채로운모습으로보여준다.때로는“반접혀홀로삭는산모롱이너와집”(「구절리옛집」)을바라보며그속에뉘인시간을바라보고,또한편에서는“달빛아래부석사”(「그가을,부석사」)를바라보며부석사그늘에맺힌시간을바라본다.그뿐일까.무수히많은공간이강정숙이라는시인의눈을거쳐새로운모습으로태어나니,그모습이란실제의공간을넘어독특한언어적미감을포괄한고유한시적공간이라할수있을것이다.

원대리자작나무는결마다상처다
부대끼지않으려고제가지떨군자리
흉터로무늬를새겨한풍경이룬숲

견디며사는게어찌그들뿐일까
부딪치고멍들어도서로를에두르며
빛나는생의한때를꿈꾸는게아닌가

들켜버린마음인가,잎잎발그레하다
발등부은한나절이바람따라쓸리고
미답의우듬지새로축복같은볕이든다
-「자작나무숲에서」전문

인용한시에서시인은자작나무켜켜이선숲의모습을바라본다.자작나무들이빚어내는독특한밀집도가특징적인이시에서,나무들의특징적인공간감은시인의눈을거쳐서로에“부대끼지않으려제가지떨군자리”로다시빚어진다.자작나무가빚어내는이독특한밀도는이윽고“부딪치고멍들어도서로를에두르”는의인화된모습으로시화(詩化)된다.눈에비친사물들의세계를바라보며그곳의특수성을식별해내고,이를특유의미감어린언어를통해묘사하며시적공간으로재탄생시키는시인의방식이다.
사물은시인의고유한내면을통과해특수한의미를부여받으며,무관계한사물의세계또한서로를에두르는특수한공동체의모습으로재탄생한다.이를간추려말하자면다음과같을것이다.사물은시인의눈을거침으로써비로소무정한세계에서벗어나고유한의미망의세계로진입하게된다고말이다.이처럼시인의독특한시각이있기에자작나무숲에쏟아지는한줄기햇살은“미답의우듬지새로축복같은볕”으로다시태어나는것이리라.
-임지훈(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