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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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와 풍경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2000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한 김윤숙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가 가히 시인선 005로 출간되었다. 김윤숙은 그동안 풍경 속에 녹아 있는 삶의 보편성을 주목하는 데 진력해 왔다. 그런 김윤숙에겐 사람도, 사건도 풍경의 한 부분이며 삶의 한 부분이다. 풍경을 경험한 데서 발원하는 김윤숙의 시학은, 그러나 풍경에 자신의 정서를 투사하는 주관적 실감보다는 사회 현실과 삶에 대한 인식에 따라 발화하는 측면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즉 김윤숙의 시는 인간의 저편에 놓여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인간 속에 들어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온 김윤숙의 시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이유이다.
저자

김윤숙

제주에서태어나2000년《열린시학》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가시낭꽃바다』『장미연못』『참빗살나무근처』,현대시조100인시선집『봄은집을멀리돌아가게하고』가있다.시조시학젊은시인상,한국시조시인협회신인문학상,시조시학본상등을수상했다.2024년서울문화재단창작지원금을수혜했다.

목차

제1부
발견13/조용한바다14/그럼에도불구하고15/겨울두물머리16/숲의문장17/아마릴리스18/사막의별19/자기앞의생20/당신이걸어온길21/삶의한방식22/너의이해23/용서24/양피지노트25/고흐의슬픔26

제2부
안과밖29/고비에서30/별똥별하나31/협죽도32/이상한독서33/장무상망長毋相忘34/출륙금지령35/빛그림자해변36/다시걷는바다37/베릿내38/추정39/초희楚姬40/혼자가는숲41/단란한가족42/바위떡풀43/덖음차44

제3부
파노라마47/새의전설48/여정49/나의설산50/진지동굴51/윤사월52/공원벤치53/기묘한동거54/이끼55/그리운산지56/빨래널린집57/수크렁58/붉은벽,능소화59/매일의인사60/그때빨간사과는61/오래된방62

제4부
등대로오다65/삼릉숲66/누구신가67/표해록漂海錄68/동백민박70/그꽃의안부71/화성,어디쯤에이르러72/반가사유상73/작은신74/마중75/울음의진원76/가파도뚜껑별꽃77/2월78/멀구슬나무의각주79/시시한영화80

제5부
바람까마귀83/타인의일상84/아무도이별을원치않았다85/바람의날86/카라꽃87/물수제비88/동백이라는물음89/통영의비90/칠월의노래92/아지트93/채식주의자94/동행95/진위96/우포늪97/목차에빠진저녁98

해설신상조(문학평론가)99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실험적형태의예술이스테레오타입에도전해충격을가하는과격한현대성이라면,“균형속에있는,눈에거슬리지않는파격”은‘심미적쾌감’에가까운온건한현대성이다.김윤숙의시는후자에속한다.제주의삶과정서를주조로한삶의구체적현장성이사유의잔잔함과더불어형상화되었던첫번째시조집『가시낭꽃바다』(2007년,고요아침)에서부터,겸허한삶의윤리감각이뒷받침되는구도적자아성찰의진경을펼쳐놓은네번째시집『참빗살나무근처』(2018,작가)에이르기까지,그의시는시적자아의내부를지향하는여일한구심력으로정형적깊이를더해가는완만하고차분한이행이었다.제주도만의풍물과각별한정취,꽃을가꾸는직업인으로서의경험과삶의투영,기억의잔양殘陽등은김윤숙의시에풍부한서정성을부여해왔다.제주의“역사를전면에배치하지않고개인의일이나삶의문제로에둘러가는방식”은김윤숙의시가도달하고자하는최종적목적지가의미와형식의미학적조화에있음을방증한다.그런맥락에서『저파랑을너에게줄것이다』는‘옆으로꼬부라진한조각연꽃잎’이결정적으로도드라진다는점에서이전의형식과는구분된다.시집의서시「발견」은이를확인할수있는작품이다.

내안의빈틈새다시그린밑그림

첫새벽잎새하나칠하고덧칠했다

바다가삐져나오나눈곱이자꾸낀다
-「발견」전문

「발견」은시작詩作에관한쓰기라고할수있다.초장이시의초고를지시한다면,중장은첫새벽이라는시간적배경속에서써놓은원고를고치고다듬는시인의열정을보여준다.‘밑그림’이라는단어가환기하는이미지로인해작품은‘시쓰기’라는대상을화폭에그림을그리는화가의시점에서감각적으로형상화한느낌이다.초장과중장이밑그림을그린후칠하고또덧칠하는시작의과정을명시한다면,종장은시인이화폭위에펼쳐진작품을머릿속에서재생하고있음을알려준다.“바다가삐져나오나눈곱이자꾸낀다”란시인의마음에떠오르는그어떤장면이며,그의의식속에자리잡은영상을재구성한이미지다.이는서경화된심상이라는점에서일반의서경적구조와는차이를갖는다.
그런데종장에사용된“눈곱”은시인의내면에떠오른정황을객관적으로묘사하려는의도로보기힘든단어다.‘눈곱’은눈에쌓인이물질과먼지가안구옆의오목한부분에쌓인것으로,인체의분비물대부분이그러하듯불쾌한느낌을동반한다.‘눈곱’은아주작은것이나적은것을비유적으로이르는말이기도하다.시의제목에비추어시의자그마한흠결을발견했다는의미로받아들여야하는걸까?혹은앞서말했다시피‘눈곱’이시인의생리적현상이라고할때,눈곱도떼지않고첫새벽부터시를다듬고있는모습을연상해야하는걸까?결과적으로‘눈곱’이라는이질적인시어로말미암아종장의의미는지극히불투명해진다.‘눈곱’이라는혐오스러운단어의사용은,‘나의부정함은타자의정숙함을유린하는것’이라는라캉의이론을변용하자면‘시적정숙함을유린하는’부정함이다.‘눈곱’은시적단아함을해치는미적결핍이자동시에형식적잉여이다.정연한연꽃잎속한잎의꼬부라짐이다.이처럼김윤숙의시는의도적으로시의부정함을노리는시어의운용이의미에균열을일으키는파격을불러온다.
-신상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