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이별 (한영미 시집)

슈뢰딩거의 이별 (한영미 시집)

$12.00
Description
누군가 나를 꿈꾸기를 멈춘다면
2019년 《시산맥》, 2020년 《영주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한영미 시인의 첫 시집 『슈뢰딩거의 이별』이 시인동네 시인선 234로 출간되었다. 예술은 ‘나’의 ‘최초’의 것을 펼쳐내는 객관화 작업이다. 한영미 시인은 이러한 ‘최초의 객관화’가 이루어지는 ‘나’에 대한 사유 과정으로 「슈뢰딩거의 이별」을 풀어낸다. 한영미는 우리가 객관이라고 믿었던 것들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항대립의 사고방식을 벗어나려는 동시에 관계, 시간, 장소, 삶과 죽음에서도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허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해 방식은 한영미의 시가 어떤 철학적 사유를 동반할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할 것이다. 하여, 한영미 시인의 철학적 사유가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저자

한영미

시인

서울에서태어나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수료했다.2019년《시산맥》,2020년《영주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2023년〈영등포문학상〉시부문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마술의실재ㆍ13/잠의세계ㆍ14/누군가나를꿈꾸기를멈춘다면ㆍ16/빛의착란ㆍ18/커서ㆍ20/라스코벽화ㆍ21/검은모래해변과돌탑들ㆍ22/현재ㆍ24/유리의증명ㆍ26/다른날같은자리에서만나는구름이야기ㆍ28/드림캐처ㆍ30/당신의4월ㆍ32/이상한나라의앨리스ㆍ34/슈뢰딩거의이별ㆍ36

제2부
둘레길ㆍ39/알렙ㆍ40/알츠하이머ㆍ42/영등포ㆍ44/유고시집ㆍ46/물의여자ㆍ48/평범한아침ㆍ50/헤아려보는파문ㆍ52/착한사람ㆍ54/그루밍ㆍ56/크로스워드ㆍ58/타자ㆍ60/안녕,시빌라ㆍ62/한여름의크리스마스ㆍ64

제3부
불편한침묵ㆍ67/돌을나눠가지고ㆍ68/일인분의감정ㆍ70/눈사람ㆍ72/세계의발견ㆍ74/목관(木棺)ㆍ75/나무자세ㆍ76/아부다비소녀ㆍ78/진실의입ㆍ80/∞ㆍ82/꽃도둑ㆍ84/벽에걸린여름ㆍ86/비는멈추기위해서퍼붓는다ㆍ88/나도모르게일생을살다온것같은ㆍ90

제4부
내안의타인ㆍ93/오늘의토마토ㆍ94/오초간ㆍ96/숨쉬는것들은늘수위가변한다ㆍ98/기약할수없는말ㆍ100/나를넣어기르는장(欌)ㆍ102/객공(客工)ㆍ104/템플스테이ㆍ106/영향권에든다는예보ㆍ108/팬데믹ㆍ110/우기ㆍ112/펭귄ㆍ114

해설염선옥(문학평론가)ㆍ115

출판사 서평

한영미시집「슈뢰딩거의이별」에는“기시감이다중우주처럼차원을달리해펼쳐지다가/낯선풍경으로지워지길여러차례”(「잠의세계」)한다는마술의세계가펼쳐진다.마술사는마술이이루어지는모든변화과정을관객에게보여주지만,처음과끝은어차피마술사의손에감추어져있을뿐이다.다시말해마술사는처음과끝을쥐고자신이보여주고싶은것을창조하는자다.시인도마술사와유사하지만두사이에차이가있다면시인은자신이보여주고싶은것을창조하지않고,보이는것즉“내가아닌물고기가/내가되어버리는”(「시인의말」)과정을기록한다는점이다.보르헤스는나이여든에임한한인터뷰에서,“나는두개의끝부분을봅니다.그끝부분은시나이야기의처음이자끝이에요.그게다예요.나는그사이에있어야할것을지어내야합니다.만들어내야해요.그게나에게남겨진일이죠.……길을잘못들어설수도있고,갔던길을되돌아와야할지도몰라요.다른어떤것을지어내야할지도모르죠.하지만언제나처음과끝을알고있어요.”(호르헤루이스보르헤스,서창렬옮김,「보르헤스의말」,마음산책,2015,36쪽)라고하였다.이는시인이처음과끝을분명히알지만,사이에존재하는모든것들이제마음대로움직이는것을기록한다는점을강조한것이다.여기서처음과끝이란‘섬’이물과뭍을아는것과같으며,자신의정체성과욕망을끊임없이좌절하게하는과정에서자신을피어나게하는것과같다.라캉에의하면인간이란욕망과언어의산물이아니던가.한영미의시는어떤주제를내세우려하지않고,그저‘나’를찾기위하여거리를걸을뿐인이의움직임을기록한결실이다.

무대한가운데상자가놓여있습니다그가내부를열고빈속을관객에게확인시킵니다그런다음나를지목해그안에넣습니다상자를닫는동안한번더객석을돌아봅니다몸을구부려넣는사이자물쇠가잠깁니다인사가장내를향해경쾌하게퍼집니다시작은언제나이렇게단순합니다그가긴칼꺼내듭니다구멍이숭숭사방으로열려있습니다하나씩칼이꽂힙니다정면이기도측면이기도합니다머리끝부터발끝까지상자를회전시키고뒤집습니다비밀따윈애초에없었습니다보이는것이전부입니다다리가잘리고팔이잘리고마침내소리없는비명이잘려나갑니다그가동백을생강꽃이라고,씀바귀를신냉이라고주문을욉니다나는생강꽃이되어생강-생각-바닥두드리고,씁쓸한신냉이가되어신냉-신음-되어갑니다실체도없이거대한그가나를어디에나있게하고어디에도없게합니다칼은탄식을재단합니다마술이끝나면나는상자에서걸어나가야합니다그리고아무렇지않게웃어야합니다나는이제내가아닙니다상자속한여자를잊어야합니다
-「마술의실재」전문

이시편은시인이쥐고있는처음이자끝이요그가추구하는시적세계를담고있다.시인은시의실재를마술의실재로,시인의삶을마술사의삶으로보여주면서시인의욕망에생기를불어넣는다.상자속여자는시인일수도,시인이바라보는시적질료나시어일수도있다.마술사가꽂는칼에잘려나가는과정처럼시는자신의것을도려내면서그자리에새로운존재가놓이도록한다.화자는상자에들어간여자가“이제내가”아니므로우리는“상자속한여자를잊어야”만한다고말한다.이는시인이자기생각을비워내려는노력을통해‘새로움’이생겨나게끔하는과정을함축한다.루이스는이와유사한방식으로모든예술작품이우리에게첫번째요구하는것이‘항복’이라고말한바있는데,우리가가지고있는선험적지식과선입견에서놓여날때비로소우리는‘눈’을사용하여제대로관찰할수있음을의미한다(C.S.루이스,홍종락옮김,「오독」,홍성사,2017,29쪽).마술사는여자를상자에넣고“그가동백을생강꽃이라고,씀바귀를신냉이라고주문을”외우면“나는생강꽃이되어생강-생각-바닥두드리고,씁쓸한신냉이가되어신냉-신음-되어”가결국“실체도없이거대한그가나를어디에나있게하고어디에도없게”만들어낸다.우리는마술사가헌신하는현란한말을통해새로운사유를하는동시에원래지니고있던의미와그것을중첩해나간다.이처럼시인의역할은마술사처럼일상적인것들과관계맺고있는말들을뽑아내어획일화된세계와결별시켜새로운의미로생성시키는데있다.“나는이제내가”아니고‘나’는마술사에의해새롭게탄생한‘나’가된다.여자는“생강꽃이되어생강-생각-바닥두드리고,씁쓸한신냉이가되어신냉-신음-되어”가며무수히많은다른기표들의연속체가된다.데리다에따르면인간의인식은사물을개념화할때그불안정함을이항대립에근거하여보충하려는성향을지닌다.물론그는이에따른이분법적대립을해체하고자했다.‘선’을설명하기위해‘악’이라는차이가필요하고‘따뜻함’을위해‘차가움’을존재하게하는사유방식이옳은가를되물은것처럼시인도“한권의책속엔/가로로이등분된두개의시공간”만이존재한다고말한다.모든책속엔“슬프게끝나는이야기와/행복하게끝나는이야기”(「세계의발견」)만들어있을뿐이라며이러한이항대립의세계는시인들에의해해체되어야함을역설하는것이다.
-염선옥(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