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럽과 각설탕 사이 (장서영 시집)

시럽과 각설탕 사이 (장서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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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분열자의 고독한 내면
2020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한 장서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시럽과 각설탕 사이』가 시인동네 시인선 242로 출간되었다. 장서영 시인의 시에서 우리는 상투적인 관계와 소통을 거부하는, 분열된 한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세상의 모순과 갈등과 정면으로 대항하는 한 시인의 끊임없는 고투와 마주할 수 있다. 장서영 시인에게 실존의 확인은 관찰자에 머무는 것이 아닌 관여자로서 ‘쓺’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여, 이 시집의 고요한 표정 뒤에 감춰진 내면은 거친 호흡으로 가득하다. 이는 존재의 자기 극복을 위해 장서영이 얼마나 치열하게 매진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자, 앞으로 그가 우리에게 펼쳐 보여줄 가능성이 될 것이다.
저자

장서영

전북남원에서태어나경희사이버대학교미디어문예창작학과대학원을졸업했다.1997년《아동문학연구소》동화등단,2020년《열린시학》시등단했다.동화집으로『춤추는작은불꽃』이있으며제7회〈아름다운글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열여덟살의질문ㆍ13/토마토ㆍ14/하귤의힘ㆍ16/마늘종이올라오면ㆍ18/수목장ㆍ20/화목원네펜데스ㆍ22/브로콜리ㆍ24/안녕,젤리ㆍ26/함박눈의시그널ㆍ28/손바닥선인장ㆍ30/녹즙기on,당신offㆍ32/허밍에대한안부ㆍ34/봄밤ㆍ36/유채는눈부시고노랑은깊어져요ㆍ38

제2부
체리의체리ㆍ41/관찰자의기분ㆍ42/작은영토ㆍ44/여자만아는날씨ㆍ46/말미암아ㆍ48/민화가있는골목ㆍ50/튜브의아침ㆍ52/섬진강ㆍ53/파라솔ㆍ54/한밤의롤러코스트ㆍ56/모슬포플랫폼ㆍ58/음력4월26일ㆍ60/자물통ㆍ62

제3부
홍반ㆍ65/협착의헤게모니ㆍ66/명함의공식ㆍ68/제비나비에대한탐구ㆍ70/수다론ㆍ72/실적그래프ㆍ74/메르에르증후군ㆍ76/핀셋의프레임ㆍ78/소행성ㆍ79/화이트칼라와블루칼라사이ㆍ80/포도송이의방식ㆍ82/브레멘음악대는브레멘에도착하지않았다ㆍ84/옮겨심기ㆍ86/시럽과각설탕사이ㆍ88

제4부
직박구리를사랑하여ㆍ91/이를테면고양이ㆍ92/공중에서줄넘기ㆍ94/사이프러스ㆍ96/두부ㆍ98/옥잠화ㆍ100/꽝꽝나무의오후ㆍ101/커블체어ㆍ102/알고리즘ㆍ104/메이저16번타워카드ㆍ106/별이빛나는밤앞에서ㆍ108/접경,그리고벙커ㆍ110/물조리개ㆍ112

해설신상조(문학평론가)ㆍ113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일찍이가라타니고진은내면적인간의고독한내면을설명하기위해‘풍경의발견’이란개념을내세운바있다.고진은돗포의소설「잊을수없는사람들」의주인공을빌려논지를전개한다.소설의주인공은어떤작은섬을끼고지나는배위에서건너편의뭍을바라보고있다.이때그는“쓸쓸한섬그늘의작은갯벌에서조개를줍는”사람을발견한다.훗날,이장면을회상하는주인공의내면은이러하다.“오늘같은날,밤이깊어홀로등불을향해앉아있으면인생의고독을느껴참을수없을정도의슬픈감정이밀려오는것을느낀다.”돗포소설의인물은몹시침잠된상태다.인물의고백은계속된다.“그때북받치듯내마음속에떠오르는것이바로이러한사람들이다.아니,이러한사람들을보았을때의주위풍경속에있는사람들이다.나와이사람들이무슨차이가있나.모두이세상한구석에태어나유구한행로를거쳐,서로손잡고영원한하늘로돌아갈사람들이아닌가.”
고진이주목한것은주인공이조개를줍고있는남자를‘인간’이아닌풍경으로보고있다는사실이다.갯벌의풍경을되짚으며유한한인생일반을떠올리는돗포소설의인물을놓고고진은다음과같이이야기한다.“여기에는‘풍경’이고독하고내면적인상태와긴밀하게연결되어있다는것이잘나타나있다.다시말하면주위의외적인것에무관심한‘내적인간(innerman)’에의해처음으로풍경이발견되고있다.풍경은오히려‘외부’를보지않는자에의해발견된것이다.”
나무아래자기주검을묻고바람소리새소리와함께잠들고싶은이의내면을상상하며장서영의시를읽었다.“내가죽은날이되면/나를호명하는사람이남아있을때까지그리움의방향을도시쪽으로뻗는다”(「수목장」)라는화자의고백이아파서,그의고독한내면을상상하는일은또그만큼힘겨웠다.장서영의시는주체의내면이흔히풍경을매개로드러난다.시인은「하귤의힘」에서“익을대로익은생각을품고태양아래서바다를뚫어지게바라보며우두커니가되어있었다”라고들려준다.여기서인물이마주한풍경은우리가그의내면을엿볼계기를마련해준다.이때외부의풍경은주체의기억과인식을맥락화하면서내면을되비치는거울로기능한다.
일본근대문학의‘고독한내면’을발견하는순간이자문학에서의‘풍경’이관념으로서의틀을벗어버리게만드는고진의해석은장서영의시에서도유효하다.“오리나무숲에서부터강물까지뻗어갔을몽환들”이라는‘시인의말’에서짐작되듯,그의시에서시적주체는오리나무숲이나강물과같은풍경-혹은풍경속의인물들-을자주마주하지만,이‘내적인간’이실제로응시하는것은외부의풍경이아니라다름아닌자기자신의고독한내면이다.시집의서시에해당하는「열여덟살의질문」은풍경앞에서자기가누구인지를질문하는장서영시의내면이출발하는지점이다.

나사말을아니?
열여덟살의봄,친구가능청스레물었습니다.물속에서흐물거리는춤이었습니다.스스로물위까지뻗어가서흐름이된풀,넌나사말을닮았어.침묵이흘렀습니다.가슴밑바닥에뭉근하게늦은생각이한소끔뿌리를내렸습니다.문득가늘고긴나선형으로꼬여있는느낌,나는왜누군가를향해자꾸흔들리고있었을까요.

지금도물가에앉으면그말이생각납니다.끝없이여유롭게흐느적거리며물과자연스럽게살부비는관능,그자세를다풀어놓고얘기하고싶어도다가가지못한나,반대로끝까지밀고올라가꽃을피우던나사말.누군가를향해방추형의씨앗까지품고있었는데도나의생각은끝내거기에닿지않았습니다.만약한없이뻗어갔다면우리라는꽃을피울수있었을까요.
-「열여덟살의질문」전문

나사말은연못이나하천,흐름이느린강가의물속에서자라는침수성여러해살이풀이다.누군가자기한테그런나사말을닮았다고한다면기분이어떨까?물속에서“흐물거리”며춤추는것같은나사말의모습이먼저눈에띄었으리라.친구로부터그말을들은화자가‘잠시’침묵했다는데서받은충격을짐작할수는있지만,“가슴밑바닥에뭉근하게”뿌리를내렸다는화자의뒤늦은생각이정확히어떤건지는알수없다.화자는느린물살에흐느적거리는풀의모습과“누군가를향해자꾸흔들리고있”는자신을동일시한다.그런데“끝없이여유롭게흐느적거리며물과자연스럽게살부비는관능”을가진나사말과는달리,화자는자신이“가늘고긴나선형으로꼬여있는느낌”을받는다.화자의자아상(自我像)이그리긍정적이지않음을짐작할수있는대목이다.장서영의시에서꼬임은“불평이돋아나고/불만이번져가”면서결국“얽히고꼬인것들이늘어”(「알고리즘」)나는나쁜관계성을비유하기때문이다.누군가와“얘기하고싶어도다가가지못”했다는화자의고백은관계맺기에서툰부정적자기인식을뒷받침한다.“만약한없이뻗어갔다면우리라는꽃을피울수있었을까요.”라고자문하지만,장서영시의화자는“친밀을꿈꾸진않”는다.이는화자의바람과현실사이의괴리에서비롯한다.“사각의표정으로명함을주고받으며/위치와신분이노출되고서로의좌표가확인되어도”이웃들은고작“0.01밀리미터의두께”로살아갈뿐이어서,그가그리는“낯선공동체”(「명함의공식」)는불가능한꿈이다.타인과의관계에성공적이지못한화자와는반대로,나사말은“끝까지밀고올라가꽃을피”운다.“지금도물가에앉으면그말이생각”난다는화자는,“우리라는꽃을피”우기에부족했던자신의소극적이고방어적인성격을여전히자책하고있는지도모르겠다.열여덟살에받았던친구의‘질문’이‘너는나사말과같은아이야.’라는그의생각을강조하기위해서라면,현재나사말앞에앉은화자는자신이나사말과같은존재임을아직도확신할수없어서자꾸만질문을던지는사람이다.
자기를타자화하는주체는분열된주체로서객체화한자기를탐색하는관찰자가되기쉽다.“거울속에서여전히나를지켜보는의식속의무의식/살아있는짐승처럼기민하게움직이는것/고양이발걸음처럼소리없이다가오는것”(「이를테면고양이」)은자기를관찰하는‘내안의타자’다.
-신상조(문학평론가)


■시인의산문

팽창하는나를계단위에올려놓는다.

자꾸생겨나는계단들,계단은계단끼리공중을들어올리는데열중이다.

떠있는방에나는갇힌다.

구겨진종이뭉치를모아종이꽃을만든다.글자가새겨진꽃을태운다.

고통이남았을까.무의미가남았을까.

둥둥떠다니는방

나는불안해하지않는다.몸에서빠져나온리듬이나를외면한채밤마다춤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