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가 일러스트에게

파피루스가 일러스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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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번역된 파피루스와 상상하는 감각에게
202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하정 시인의 첫 시집 『파피루스가 일러스트에게』가 가히 시인선 008로 출간되었다. 김하정 시인에게 글을 쓰는 일이란 만물이 만들어내는 기척들을 받아쓰는 행위이다. 또한 아름다움 이면에 도사린 쓰라림을 느끼는 감각이자, 고통이란 이빨에 기꺼이 목덜미를 내어놓는 자발적 무력함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김하정 시인에게 계속해서 시 쓰기를 강제하는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세계와 자기를 확인하려는 내면적 의지의 표현이고 타자를 향한 말 건넴이다. 김하정의 시에서 말 건넴은 은유적 상상력의 소산이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계의 주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김하정 시인은 진지한 고민과 성찰 없이 현실적 목표만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이 문학적 미의식과 관련한 의미 산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저자

김하정

경남함안에서태어나창원대학교독어독문학과를졸업했다.2020년《경남신문》신춘문예에시조「백화점」이당선되어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제1부
벽화13/유월의번역14/상담사15/나르시시스트16/품사들18/공항19/모판연구소20/파피루스21/유채꽃사회22/메멘토모리24/헤드라인25/백화점26/화병27/가족28

제2부
핸드폰31/바느질32/모피찻잔33/메타세쿼이아34/훌라후프36/풍란37/면장갑38/계단39/엄마이발관40/오늘의시험문제42/코코넛마중물43/장미꽃44/연못45/산수유46

제3부
눈내린후49/천둥번개50/꽃양귀비51/귀가52/노천극장53/한여자의방54/거울앞에서55/구름의오후56/겨울비57/미용실에서58/서재59/트럼펫연주60/대나무의통증61/저녁노을62

제4부
눈동자일러스트65/AI연인66/스테가노그래피67/엑스터시68/코로나바이러스70/해71/코스모스에부쳐72/푸른통역사들73/잡곡을씻으며74/오르간76/책77/문구점에서78/손가락79/그대에게80/등대81/꽃의내력82

제5부
겨울나무85/우체통86/후렴부87/어떤위력88/고속도로89/서표90/강수진91/설치미술192/설치미술293/첼로94/수목장95/정크미술96/일출97/목련98

해설신상조(문학평론가)99

출판사 서평

문학은“숨은실제를찾아가는수수께끼와같은과정이거나,언표된것,언명된것을넘어서는언어의바깥”이다.그런맥락에서김하정의시조가암시적은유로풍부하다는것은그의문학이현실과상상을한데이어현실을벗어남으로써실제적현실을드러내는방식에능함을보여준다.“논두렁에작업용면장갑이버려져있다//해종일내린비로온몸이젖어있어도//주인의따스한지문을꽉움켜쥐고있다//혹여지나가는발길에차일까봐//한귀퉁이모로누워하늘을보고있다//쓸쓸히잠을청한다,노숙의밤이길다”란「면장갑」은논두렁작업을할때사용하는사물에농민의노동과노숙자의비애를한꺼번에겹쳐놓는다.앰프슨(W.Empson)이모호성을시적가치로내세운것은시에서사용되는언어의다의성을존중해서다.시어는본질적으로가능한많은느낌과의미를환기하는함축성을지향한다.시에서의‘면장갑’이노동의도구로서는1:1의지시적언어라면내장된느낌과의미에서는다의적이다.마찬가지로언어의다의성이더욱풍요롭게확장되고있는「파피루스」를읽어보자.

바람의손부르트도록역사를새겨왔다

쉽게사위어갈시간들끌어모아

수없는자맥질속으로문자향을담았다

우거진늪속에구름피륙펼치면

첨필을입에물고날아오는참새들

발자국다옮겨놓고물한모금들이켠다
-「파피루스」전문

파피루스(papyrus)는종이인paper의어원이라는데서알수있듯,갈대과의식물줄기를압착하고이를얇게발라내어종이의역할을하도록만든고대의기록매체다.사위어가는시간속에서파피루스에손이부르트도록역사를기록한주체는바람이다.늪에비친구름은피륙이되고,참새들은첨필을물고온후물한모금으로갈증을달랜다.첨필(尖筆)은점토나왁스판위에글자를쓸수있도록고안된딱딱한침모양의필기구다.첨필로대자연에아름다운문양을새길주체는“잡지도가두지도못할/시간”(「구름의오후」)이아닐까?그러므로우리는이파피루스가천지의창조주와함께태초부터존재하는자연즉,인간문명의바깥에존재하면서시인이그리고바라는자연의근원적표상임을알수있다.여기에작동하는시인의의식활동에는은유적상상으로풍성하다.
“빗줄기방아쇠천지에쏘아대면/하늘엔먹구름도뒤엉켜달아나고/삼팔선가로지르며/떠도는피난민들”(「천둥번개」)이라거나,“찬바람이굴뚝연기에손을쬐고”(「귀가」)“맥박이뛰는곳마다/폭죽처럼꽃은피”(「꽃양귀비」)고있다는데서드러나듯,김하정시조의대부분은자연의아름다움을미학적으로예찬하기보다자연의빛을마음껏향유하는재기발랄한상상력이돋보인다.
-신상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