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발성법 (박완호 시집)

나무의 발성법 (박완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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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완호의 시를 읽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한 박완호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나무의 발성법』이 시인동네 시인선 250으로 출간되었다. 박완호는 시인이자 현존재로서 날카롭게 감각을 벼리면서 시대 인식에 대한 균형도 잃지 않는다. 굴곡진 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반응해 온 안티 감각을 자연 표상, 정신 표상, 현실 표상 등을 통하여 매우 심리적으로 담아낸다. 이 시집에는 시대가 위독한데도 입을 닫은 채 일신의 아픔에 몰두하는 방관주의자가 될 수는 없었던 시인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 언어는 한 알의 씨앗에서 발아한다. 그 후 온갖 부조리와 갈등에 직면하고, 혹독한 삶을 감내하면서도 어엿한 한 그루의 나무로 서게 된 박완호 시인의 성체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박완호

충북진천에서태어나1991년《동서문학》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문득세상전부가되는누군가처럼』『누군가나를검은토마토라고불렀다』『기억을만난적있나요?』『너무많은당신』『물의낯에지문을새기다』『아내의문신』『염소의허기가세상을흔든다』『내안의흔들림』등이있다.김춘수시문학상,한유성문학상,경희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그림자의그림자로라도ㆍ13/황홀,가난한ㆍ14/도산검림(刀山劍林)ㆍ16/달동네쪽방살이ㆍ18/봄의무반주를듣다ㆍ20/겨울경포ㆍ21/시인ㆍ22/번지점프ㆍ24/달동네집찾기ㆍ26/게릴라ㆍ28/반골ㆍ29/나무의발성법ㆍ30/고요에관해말하기까지는ㆍ32/달팽이관ㆍ34

제2부
설국에서온전언ㆍ37/공중의완성ㆍ38/산문닫힌저녁ㆍ40/종이에살을베이다가ㆍ41/양팔문신ㆍ42/초저녁슬픔ㆍ44/귀밝은사람이되고싶다ㆍ45/나의국어선생은ㆍ46/꿈마실ㆍ48/앉은뱅이책상ㆍ49/오후의감정ㆍ50/울음의관찰ㆍ52/꿈꾸는유모차ㆍ53/왼편이아프다ㆍ54/훗날의꿈ㆍ56

제3부
고드름ㆍ59/기린ㆍ60/새를하시겠어요?ㆍ62/그건내가아니었다,고ㆍ64/그림자말씨ㆍ66/백할미새ㆍ67/고양이의변주ㆍ68/되게헐거워져서ㆍ70/노숙ㆍ72/혓바늘ㆍ74/가문겨울밤의노래ㆍ76/천일취ㆍ77/끝말이멋진사람과사랑에빠지고싶은ㆍ78/달리,ㆍ80

제4부
미괄식으로꽃피고싶다ㆍ83/비껴가는나무들처럼ㆍ84/별빛ㆍ86/인공슬픔ㆍ88/읽다만책ㆍ90/흰달ㆍ91/죽은염소를생각하다ㆍ92/홀수ㆍ94/다른,얼룩말편들기ㆍ96/홍매화는피려다말고ㆍ98/쉰아홉ㆍ99/개소리에대한고찰ㆍ100/살구ㆍ102/너는머지않아예쁜꽃이될테니까ㆍ103/맨끄트머리ㆍ104

해설김효숙(문학평론가)ㆍ105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이전의유습을부수는시인만이새로운말을할수있다.견고한것을녹여새로운조형을구상하는자가빚어낼언어는이전것을녹이는용광로를거친다.비유컨대그용광로가박완호시인에게는‘반골’이라는안티감각이아닐까한다.그의가슴에무엇이들끓고있느냐는질문을던져볼때그것이뜨거운것임은너무나자명하다.

언제부터인지나에게서반골이보이지않는다툭하면욱,터지기직전에머물고마는중년만덩그러니남고더멀고깊은곳을바라보던나의반골이떠나가고말았다반골이비어가는시인을떠난시가서둘러시야를벗어나려한다달아나는말을붙잡으려면주저앉은반골의척추를어떻게든일으켜세워야한다공연히두근대는첫발을어디로든내딛어야만한다저너머로치달으려는마음을무어로도억누르지않아야한다눈앞에떠오르는신기루의벽을무너뜨리며,앞이보이지않는길이라도끝까지걸어가야만한다
-「반골」전문

이시는골격과뼈대가선명하다.그뼈대가사라졌거나주저앉았다며불끈의지를다지는화자가여기에있다.여하한경우에도그는“두근대는첫발”을내디디려한다.생명이약동하는심장을가진자,눈앞의이익에몰수되지않는의식의소유자,눈앞의세계가“신기루”에갇힌듯모호할지라도저너머를향한모색을멈추지않는자,감정을앞세우지않고침묵중에이세계의본질과현상을직관하는자.이를두고시인은반골이라부른다.그런데이런점이청년시절에지녔던가치에머물지않고이제다시금그것을회복하고자하는염원을이시에담았다.왜그렇지않겠는가.심장이뜨겁던시절에는그도예외없이이상의현실화가가능한세계를꿈꾸었을것이다.다음시만보더라도이세계는가슴이뜨거운자가그리는풍경처럼열정적인꿈틀거림으로가득차있다.

백색의군대가들이닥쳤다.잇단음표를달고고꾸라지는파도의단말마.어둠과빛의경계를한순간에허물어가며흩날리는눈발속비릿하게주저앉는철조망들.느닷없는공습에치명상을입은수식어들이방어선너머로쫓겨나고있었다.공중은갈데없는발길들이머물만한곳이못되었다.흐트러진오열을손보기전에서둘러빈자리를메워가는점령군들.금방뒤집히고말이념에매달린혁명가들이극단에서서손바닥으로귀를틀어막았다.어디가뭍인지바다인지모를곳에서모래알같은사상들이거품을물고지워지고있었다.홀로반짝이는것들은경계를넘나들며스스로꽃을피워내고,어느쪽이든끝자락에버티고선것들만이발화(發花)되지않는가지를고집스럽게흔들어댔다.비틀거리는공기속,떠나간사람의그림자가앉아있는모래언덕을쳐다보며서있는사내가젖은정어리등처럼잠깐반짝거린것도같았다.
-「겨울경포」전문

우리의상식선바깥에겨울바다의풍경을걸어놓았다.푸르고아름답고깊은그바다에마음을맡겨놓은채망연히감상하고싶은자라면이시로부터거리를두고싶을지도모른다.군대·공습·점령군·이념·혁명가·사상같은개념어가작금의현실을하나씩일깨우는것처럼띄엄띄엄놓여있기때문이다.어쩌면시인의군복무시기를회상하는것일수도있는이시가우리를잡아당기는요인도바로여기에있다.시인의가슴이뜨겁던시절과지금의현실이크게달라보이지않는다.비유로말해야할것과직설의틈사이에이성의언어와시인의언어가혼재한다.이성의시대를지나온자가다시금그이성에포위된상황에서의고통에공감할수있다면“모래알같은사상들이거품을물고지워지”는풍경이그의이상이라고짐작해볼수도있다.
-김효숙(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