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는 못 올 우리 (이승은 시집)

꽃으로는 못 올 우리 (이승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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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끊임없는 천착, 소멸과 회복의 리듬
1979년 등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시조의 현장이었고, 중추였으며, 이젠 주역이 되어가고 있는 이승은 시인의 신작 시집 『꽃으로는 못 올 우리』가 가히 시인선 010으로 출간되었다. 일상적 체험을 시로 승화하는 이승은 시인의 시작詩作은 반복되는 슬픔에 무뎌지지 않으려는 마음을 대변한다. 40년이 훌쩍 넘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창작 활동을 이어가면서 시인은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해 왔다. 그 긴 세월을 통과하면서 시인은 글쓰기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타자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쓰려고 할 때 언어는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 이승은 시인은 남루하고 나약한 것들을 줄곧 응시한다. 흐드러지게 폈다가 지는 꽃들,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지닌 나무와 풀들, 그리고 앞서 생을 마감한 자들, 조용히 낡아가는 것들을 응시하고 기록한다. 이승은 시인의 세계에서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를 알 수 있다.
저자

이승은

서울에서태어나1979년제1회〈만해백일장〉장원,그해KBS·문공부주최〈전국민족시대회〉장원을수상하며등단했다.시집『분홍입술흰뿔소라』『첫,이라는쓸쓸이내게도왔다』『어머니,尹庭蘭』『얼음동백』『넬라판타지아』『꽃밥』『환한적막』『시간의안부를묻다』『길은사막속이다』『시간의물그늘』『내가그린풍경』,시선집『술패랭이꽃』이있다.이영도시조문학상,중앙시조대상,오늘의시조문학상,고산문학대상,백수문학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낭원투도閬苑偸桃13/그늘을놓아주다14/초저녁별15/치사한도편수16/성냥17/장독이야기18/분리수거19/우두커니,봄20/14‐31호22/육개장23/초록신호등24/낡은악보25/하늘귀를당기는돌26/비자27/꽃으로는못올우리28

제2부
이를테면,31/비가오려나32/뻥,33/누에보탱고34/꽃받침36/깍지37/강촌세탁38/막국수타령39/경성여객27140/못다쓴종장에게42/나비43/초록귀44/붉은,46/골목47/억새48

제3부
사과꽃51/떠다니는귀엣말52/고해주목53/공항일지54/옛사진55/서더리56/낮잠57/삼일목욕탕58/닌자59/오후카페60/삼립크림빵61/모래밭의내력62/선물63/살려고,죽이다64/홍원항구65/한산소곡주66

제4부
바다가보이는시인69/달빛오름70/한여름밤71/만돌린이있는정물72/달그락,73/와흘臥屹74/꽃마중75/숨바꼭질76/거두절미77/화평한점심78/등대살이79/밤이슬80/품81/비탈길에서다82/울음83/겨울꽃84

제5부
낙엽비87/비색翡色88/늦더위89/거진포구한나절90/동태보고서91/앎92/순환선93/다녀올게94/거품95/끝이라는처음96/입동무렵97/피다!98/감또개또는,99/하루100

해설이정현(문학평론가)101

출판사 서평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가장아름답고찬란했던시절.누구나아름답게기억하는지난날이있다.그시절을돌이키는회상이없다면삶은의미를잃는다.삶은,점진적인‘난파’다.시간은절대머뭇거리지않는다.육체는허물어지고,기억은희미해진다.어떤관계도영원히이어지지않는다.이도저한시간의파괴력앞에서삶은한없이초라하기만하다.사람들은마치영원히살것처럼살아가지만,소멸에직면할시간은누구에게나예외없이찾아온다.그것은개연성없는사건이자대비할수없는삶의과정이다.자신의삶이단지예외적인기간에만우발적으로존재했다는사실을인정하는것은뼈아픈일이다.그러므로인간은누구나자신이읽고,생각하고,확신하고,발설했던것이진실이었음을증명하는시간을통과해야한다.소멸이라는영원앞에찰나적삶은환시幻視에지나지않은가.실제로는존재한것도아니었던이세상에서삶의의미를찾는건어쩌면부질없는짓일지도모른다.소멸에관한사유에침식된다면자아가쌓아놓은가치들을부정하는과정이바로삶이라고정의하게된다.생명이사소하고평범하게다가올것이다.그렇다면글을쓰는것은어떤의미를지닐수있을까.기억을윤색하고자기위로를거듭하면서끊임없이삶을천착하는과정이라는생각이다.
이승은의신작시집『꽃으로는못올우리』에는소멸과회복의풍경이반복된다.시인은삶이란본래허무하고쓸쓸하다는사실을알고,소멸을망각하게만드는소비의쾌락이지배하는세계의질서도잘안다.자신의삶과지금세계가그러하다는것을알면서도계속살아가야하는시인은다가오는‘소멸’을응시하면서“예고없이파고드는셈법”으로시를쓴다.시적주체가포착한풍경에서‘나’는묘지를걸으며소외된삶을살다간사람을생각하고(「14-31호」),울음없는조문객과육개장을먹으면서(「육개장」),“금이간답변위에덧칠”(「꽃으로는못올우리」)을했던한때를떠올린다.1부에수록된시들은이렇듯시적주체가느끼는회한으로가득하다.
이제“옛편지를태우”면서“오랜마음결”(「그늘을놓아주다」)에갇혀있던그늘을풀어주는시편을만나보자.가둔것이아니라갇힌것을,“시름없는풍경속에웃자란”그것이“그늘의키”인것을시인은안다.“덜여문한마디”를끝내익혀내지않고과감히다가올삶을보듬는한사람을보라.

건너오고건너가던그오랜마음결은
나눠도갈마들던안개혹은,는개였다
아득한거리에서도발목을서로잡던

감춰둔서너통의옛편지를태우는날
한참을따라붙던목마른재채기가
연기로젖어들면서땅거미를드리웠다

밖에서바라보니정작내가갇혔구나
시름없는풍경속에웃자란그늘의키
징검돌디뎌선자리이끼가번져갔다

오디빛하늘길을열고자한나중의밤
덜여문한마디를통째로베어물고
꼬리별스러진곳에그림자를낳았다
-「그늘을놓아주다」전문

시간은육신과기억을허문대신작은선물을건넨다.소멸을인식한이후‘나’는타인과세상을너그럽게바라보게된다.상대의거짓말을모르는척끄덕이면서믿어(「이를테면,」)주기도하고,멀리있는‘나’에게좋아하는막국수를사줄테니까어서오기나하라는(「막국수타령」)벗의호기에즐거워한다.그러다가누군가의부음을듣고서“단호했던뒷모습을새겨읽지못했”(「못다쓴종장에게」)다고자책한다.“못부친편지를접듯”(「골목」)이서성거리고“너는없고나만있는돌담을에두르며”(「억새」)인연을떠올린다.낡은사진을보면서‘나’는먼저간친지들이건네는듯한말을듣는다.세월이가도사진속의사람은늘그대로가아니던가.웃음으로찍힌얼굴은언제나웃음으로,‘나’보다어린부모님얼굴도오롯하다.인화된종이만,시간만늙어있다니.
-이정현(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