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송의 주례 말씀 (김욱진 시집 | 반양장)

어느 노송의 주례 말씀 (김욱진 시집 |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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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랑과 생명의 생성 원리
2003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김욱진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어느 노송의 주례 말씀』이 시인동네 시인선 251로 출간되었다. 김욱진의 이번 시집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뚜렷한 언어적 철학과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그의 시는 유의미한 리듬과 이미지를 고도의 상상력으로 결속한 속 깊은 성찰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한 열정과 의지의 결합을 통해 시인은 은은한 정밀(靜謐)과 역동적 솟구침이라는 모순된 속성을 한 몸으로 모아내는 기막힌 균형을 이룬 것이다. 그만큼 그의 시편은 새로운 사유와 감각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재발견하고, 인간이 쌓아온 중심 가치인 사랑의 시학을 되살리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간다. 이러한 시적 사제(司祭)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김욱진 시인은 서정시가 투명하고도 아름다운 기억을 통해 삶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는 양식임을 뚜렷하게 증언하고 있다.
저자

김욱진

1958년경북문경에서태어나경북대사회학과및동대학원을졸업하고,중등교사로정년퇴직했다.
2003년《시문학》으로등단했으며,시집『비슬산사계』『행복채널』『참,조용한혁명』『수상한시국』『어느노송의주례말씀』등이있다.
2020년전세계시인들의코로나19공동시집『地球にステイ(지구에서스테이)』에“노모일기·7”이선정수록(일본쿠온출판사에서한영일중4개언어로출간).
〈박종화문학상〉〈김명배문학상작품상〉을수상하였고,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발간지원(2020)및발표지원(2023)에선정되었다.
현대구시인협회이사이고,한국문인협회달성지부회장을역임했으며,시마루동인이다.

목차

제1부
눈사람ㆍ13/발이하는말ㆍ14/불이(不二)·1ㆍ16/불이(不二)·2ㆍ18/묘한발자국ㆍ20/나를비우는시간ㆍ22/열암곡마애불법문ㆍ24/운주사와불ㆍ26/숨바꼭질ㆍ28/별리ㆍ30/그놈의애ㆍ31/AIㆍ32/대가족ㆍ34

제2부
공짜로ㆍ37/외롭고쓸쓸한ㆍ38/노화라는꽃ㆍ40/빈집·2ㆍ42/선사법문ㆍ43/일석삼조ㆍ44/장마를장미라부를때ㆍ46/착한거짓말ㆍ48/한바퀴ㆍ50/엄니처럼ㆍ52/꽃,할미묻다ㆍ54/心부름ㆍ56/똥구녕과목구녕ㆍ58

제3부
오독하는새ㆍ61/가재고무신ㆍ62/연ㆍ64/어느봄날ㆍ66/돌봄이라는봄ㆍ68/산낙지와하룻밤ㆍ70/늦가을시화전ㆍ71/어느노송의주례말씀ㆍ72/소문난뻥튀기집ㆍ74/돌리네ㆍ76/눈내린성당ㆍ78/나는땅부자다ㆍ80/가끔나를설거지할때있다ㆍ82

제4부
누가벚꽃을보았다하는가ㆍ85/농심ㆍ86/브레이크타임ㆍ88/이들의반란ㆍ90/벌침의훈ㆍ92/그럼에도불구하고ㆍ94/아귀ㆍ96/소똥구리ㆍ98/알맹상점ㆍ100/나무의자ㆍ102/코로나혁명·1ㆍ104/코로나혁명·2ㆍ106/거미는왜줄얘기만늘어놓을까ㆍ108/유배일지ㆍ110

해설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교수)ㆍ111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김욱진은사라져갈수밖에없는지상의존재자를향한지극한긍정을노래하는시인이다.그는불가피한소멸의형식을넘어항구적존재방식으로자신의삶을이끌어가려는순간적전환을희원한다.사실모든존재자는소멸직전에만자신의순수한외관을드러낸다는점에서사물의영원성이란불가능한것이고오히려모든사물은사라짐으로써만자신이부여받은시간을충실히살아낼수있을뿐이다.김욱진의시에드러나는사물은이러한시간의운명에대한응시에의해선택되고배열되는특성을가진다.시인은삶의숱한고통을생성하는바닥에서시작하여정신의극점을이루는모습을향해나아간다.이렇게시간이바닥을치고올라오는순간을그려내는김욱진의미학은,비록그것이소멸의필연성을견지한다고하더라도,지극한긍정에감싸인존재자들의상황을기록해가는역설적속성을보여준다.이렇게소멸해가는사물의형식을통해유한한삶에웅크린불모와폐허의기억을꺼내올리는시인의원형적기억은좀더심화된형상으로그의시안에서펼쳐지게된다.

아,어디쯤일까
길을걷다폐휴지한리어카싣고
언덕길오르는맨발을보았다,나는
들었다,발이하는말을
발가락은바짝오므리고뒤꿈치는쳐들고
그래도뒤로밀려내려가거든
헛발질하듯한걸음뒤로물러섰다
혓바닥죽빼물고땅바닥내려다봐
써레질하는소처럼
발바닥이어디로향하고있는지
바닥과바닥은통하는법이야
그래,맞아
둘이하나된바닥은바닥아닌바닥이지
손바닥처럼그냥가닿는대로
가닿은그곳이바닥이니까
여기,지금,나는
바닥아닌바닥에서
보이지않는발
바닥을보았고
바닥없는바닥
아슬아슬가닿은발
바닥이내쉬고들이쉬는숨소리들었다
비오듯뚝뚝떨어지는땀방울사이로
리어카바퀴가미끄러져내려갈적마다
발바닥은시험에들었다
땀한방울닿았을뿐인데
그바닥은난생처음가닿은바닥
발가락과발뒤꿈치는땀방울밀고당기며
발바닥이바닥에닿았다고
어느바닥인지알수없는그바닥
간신히가닿고보니
바닥이라는바닥기운다끌어당기고가는저발
바닥은바다보다깊고넓적하다
-「발이하는말」전문

여기서도‘말’에대한자의식은충실한확장성을가지고나타난다.시의전경(前景)은우연히길을걷다가바라보게된“폐휴지한리어카싣고/언덕길오르는맨발”에서시작된다.그때시인은“발이하는말”을들었노라고고백한다.오므린발가락과쳐든뒤꿈치가노동의자세를사실적으로말해주지만,시인은어느새써레질하는소처럼땅바닥을내려다보며발바닥은어디를향하고있는지를묻는다.그때“바닥과바닥은통하는법”이라는원리에도달하고마침내시인은“둘이하나된바닥은바닥아닌바닥”이라는사실에이르게된다.“손바닥처럼그냥가닿는대로/가닿은그곳이바닥”이고“바닥아닌바닥에서/보이지않는발/바닥을”바라본것이다.시인은주체,시간,공간을하나로만드는“바닥없는바닥”에서“아슬아슬가닿은발/바닥이내쉬고들이쉬는숨소리”를듣고있다.시인이바라보고난생처음가닿은‘바닥’,“어느바닥인지알수없는그바닥”에힘겹게다다르고보니“바닥이라는바닥기운다끌어당기고가는저발/바닥”이야말로바다보다깊고넓지않았던가.그러한진실이바로‘발이하는말’이었던셈이다.물론이때‘바닥’은바닥(bottom)이자바닥(basis)일것인데,시인으로서는손바닥과발바닥이닿는바닥에서자신의언어를쌓고그때가장밑바탕이되는언어를들은것이다.쉽사리상투적연민으로나아갈수있는소재를가지고도언어적자의식이밀어붙이는인식론에가닿는시인의의지와경륜이든든하게다가오는순간이아닐수없다.결국그‘바닥’은시인으로하여금“새로거듭나는순간,알맹이”(「알맹상점」)를경험하게끔해주고“아무도거들떠보지않는땅/나혼자걷다보면/그땅은온전히나의땅이되고”(「나는땅부자다」)마는역리(逆理)를알게끔해주고있는것이다.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