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다시 물고기로 만들고 싶어서

너를 다시 물고기로 만들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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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무위와 야생으로 진화하기
199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성해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너를 다시 물고기로 만들고 싶어서』가 시인동네 시인선 254로 출간되었다. 문성해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시가 왜 꿀이 아니라 꿀을 분리하고 남은 밀납’이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생활이 곧 형벌이기에 이를 감내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일 수밖에 없다. 문성해의 시에서 인간 일반의 삶을 수인의 삶으로 환치하는 부정적 인식은 예술에 대한 ‘발견’으로 확장된다. 그렇기에 감옥에 갇힌 수인은 시인이 된다. 시에 어떤 의미조차 부여할 수 없다면 시는 삶을 구원하지 못한다. 이번 시집에서 문성해는 시와 불화하는 시인의 태도를 오롯이 드러낸다. 형벌은 달콤한 보상을 거부하는 시인의 노동과 삶 속으로 깊숙이 삼투한다. 시인이라는 자리는 창조적 욕망에 숙명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의 최전선에 있는 것이다.
저자

문성해

1998년《매일신문》신춘문예,2003년《경향신문》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으로『자라』『아주친근한소용돌이』『입술을건너간이름』『밥이나한번먹자고할때』『내가모르는한사람』이있다.김달진문학상젊은시인상,시산맥작품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초록의사용법ㆍ13/5월ㆍ14/지두화(指頭畵)ㆍ16/빗방울의일ㆍ18/곡선ㆍ20/오늘은벚꽃ㆍ21/눈사람들ㆍ22/천둥과번개사이ㆍ24/생활ㆍ26/일석선생이사랑한흰꽃등나무ㆍ28/강아지풀을불러주다ㆍ29/냉이라는이름ㆍ30/일산호수공원ㆍ32/그늘을일으키는법ㆍ34

제2부
발견에대하여ㆍ37/고수ㆍ38/해골의나라ㆍ40/불의나라ㆍ42/어떤나무ㆍ45/수몰지구ㆍ46/빵구나뻥ㆍ49/공원의왕ㆍ52/연못이된다는거ㆍ54/출근길의유령들ㆍ56/백만번태어나는사람ㆍ58/문워크ㆍ60/대형매장의존재가치ㆍ62/다이빙대ㆍ64

제3부
천변ㆍ67/언토마토를손에쥐고ㆍ68/재희니트ㆍ70/벤치ㆍ72/야생ㆍ74/숨의방식ㆍ76/보자기에밥통을싸서안고ㆍ78/나사는나사를낳고ㆍ80/또,봄밤ㆍ82/꽃밭은열무밭이되고ㆍ84/undertakerㆍ86/셀파ㆍ88/폭설ㆍ90/완전한망각ㆍ92

제4부
사유지ㆍ95/시집읽기ㆍ96/비의혈연ㆍ98/시인의나라ㆍ100/거대한변기ㆍ102/사람의일ㆍ104/소년기ㆍ106/혈거시대ㆍ108/젖내ㆍ110/나의기차ㆍ112/어른ㆍ114/좋은시인ㆍ116/바보사막ㆍ118

해설신상조(문학평론가)ㆍ119

출판사 서평

아프리카계미국작가인토리모리슨에따르면기억은흐르는강물과같다.그녀는“작가는우리가있었던곳이어디이고,우리가어느계곡을흘러왔고,강둑의모양은어떠했으며,그곳에반짝였던불빛과원래의있었던자리로돌아가는길을기억한다.”라고말한다.모리슨의‘흐르는강물’이한집단의삶을관통하는기억을두고하는말이기는하나,집단의자리에개인을가져다놓아도그의미의맥락은변하지않는다.기억이문학의주요조건이라는사실은삶이일시적이고가변적인서사의수많은집합으로이루어져있다는단순한진리를일깨운다.문성해의시를읽을때우리는망각하고있던과거와맞닥뜨림으로써오늘의현실을감각적으로경험한다.이는역방향의경험이기도해서,하나의장면이나이야기로재현되는현실을따라가다보면아득한과거에이르게된다.좀더정확하게말한다면문성해의시는과거의기억이아니라과거에서건너온‘이곳’을노래한다.이곳은과거의흔적이므로그가부르는노래에는현재의몸과마음을뒤흔들고자극하는기억의정념이깃들어있다.시인은과거와현재,기억과현실이공존하는시간감각을“곡선”이라지칭한다.

마지막감잎이떨어질때
담장위로나의늙은고양이가뛰어오를때
첫눈송이가내릴때
꽃이질때

구름의어깨
밤기차의허리
누대의재봉틀등허리
아버지의안경테두리
해변의가장자리

나는이것이둘러싸인주걱으로
아침에게먹일밥을푼다
-「곡선」전문

담장위로뛰어오르는고양이의근육이보여주는날렵한부드러움,감잎과첫눈송이와꽃잎이지상으로하강하며그려내는이미지는둥글고고요하다.어깨와허리와등허리라는신체이미지,테두리,가장자리의모양으로드러나는사물들의이미지역시한결같이원만하고둥글다.이것들모두는곡선의모양을한‘그림’이자그것이불러일으키는‘느낌’이다.시인에게오늘“아침에게먹일밥을풀수”있는힘은바로이곡선으로둘러싸인의식적이자무의식적인기억으로부터촉발된다.
그러나곡선의이미지만으로시가완성되지는않는다.곡선의이미지는서사를싣고서기적소리를울리며먼산허리를돌아휘어져달려오는기차,‘나’를낳아준어머니와그어머니의어머니가살아온삶의방식을함의하는‘누대의재봉틀’,작가개인의내력에해당하는‘아버지의안경’이환기하는느낌에서의미를찾아낸다.그리고이를오늘의‘주걱’에겹쳐놓는과정을완수함으로써과거의시간이재구성하는‘식구들에게먹일밥을푸는아침’이라는하나의완결된미학적텍스트가조직된다.과거를표상하는기호,흘러간시간의흔적이자이미지인곡선은시인이원래있었던자리로돌아가는‘길’이다.
-신상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