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에 빚진 날

안녕에 빚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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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마음이 빚어내는 연민과 희망의 시학
2011년 《모던포엠》으로 등단한 최경옥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안녕에 빚진 날』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92로 출간되었다. 최경옥 시인은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와 불의에 직접 대응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고 옮길 뿐이다. 시인에게 연민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에 억압된 순간 작용이 아니다. 그에게 연민은 방법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이고, 내면에서 솟아난 고통의 감각과 유사한 것임을 알고 있다. 최경옥 시인은 마음으로 세계와의 싸움에서 분명한 자기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인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이 선적 깨달음은 얼마나 깊고 또 고귀한 것인가. 한평생이라는 틀을 푸른 하늘로 확장해 보여주는 최경옥 시인의 그 무한한 마음을 우리는 그저 따라가 볼 일이다.
저자

최경옥

충북충주에서태어나2011년《모던포엠》으로등단했다.시집『기쁨꽃』,청소년시집『우린왜꽃보다외로운걸까』가있다.한국문인협회,충주문인협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성자가된의자13/갱신14/가나다순에대한단상16/보조개의꿈17/대추한알과직박구리의고민18/모기만도못한20/부활절아침22/사이의노래23/비의폭력24/열정페이26/돌보지않는집28/혹등고래의눈물29/한밤의복숭아30/당근의비밀32/캐터필러34

제2부
연기의내력37/자격증유목민38/누군가의이팝꽃40/경쟁자41/나의슬픔42/월급날44/친절리서치45/경고등46/꽃으로쓴글씨48/타란텔라49/명검50/걷는사람52/안녕에빚진날54/알고리즘55/권리선언56/아직은좀뛴다58

제3부
키위새의독백61/아름다운책임62/감기몸살의뒷면64/진동벨의권력65/연민66/초록의자68/백목련70/엄마의레시피71/삼천리라는자전거72/어르신유치원74/마음의가지치기75/한치앞76/막핀꽃177/막핀꽃278/애벌레가사는법80/코로나에걸린목련82

제4부
항아리85/우리동네미용실86/쉬는시간87/거짓말탐지기88/사과의용기90/미소의힘91/소망하나92/폭주기관차93/동화구연94/가을운동회96/웃는할머니97/잠복근무98/부럽다99/장마100/사랑한다는말은101/괜찮다102

해설백인덕(시인)103

출판사 서평

두가지방식,혹은두개의방향이있다.일반적으로‘마음’의본질,역할,의미와관련한질문에서자연스레‘신체(몸)과정신’을떠올린다.마음이일의적으로슬픔,기쁨,외로움,그리움과같은감정의상태를통해표현된다는것을인정하면,마음은감각적직관에근거한신체반응에가깝다.하지만감각에직접소여(所與)되지않는가령,후회와불안,고뇌와희열,연민과무관심처럼개념의표상과작용으로나타나기도한다.물론그경계는생각이상으로분명하지않고,각층위로단절된것이아니라서로강화하거나약화하는방식으로연결되어있다.다시말해,마음은일차적으로몸에깃든감각의산물로서개인적이지만,그기원에서부터사회와문화,종교와철학의영향아래있다.여기에덧붙여예술로서‘시’는언어라는존재의가장강력한자장(磁場)에갇힐수밖에없다.문예비평가N.프라이는“시인은자신이이야기하는것이무엇인지를모르는것이아니라,그가알고있는것에대해서이야기하지못한다.”라고주장한다.시는‘무지와인식’의문제가아니라‘의도와표현’에서근본적곤란에직면한다는것이다.하물며‘마음’을핵심주제로삼았다면두말할나위없다.
최경옥시인은‘삶의내력(來歷)과마음의현현(顯現)’을구체적인시어로형상화해서명징한이미지를통해보여준다.때로작품의화자는표면상으로는관찰하고기록하고상상하는타자의시선을내비치지만,세상의모든사태에관여할수밖에없는마음의성질을끝까지감추지는못한다.시적지향이되어버린마음의어떤‘사태’,그내력은아래인용한작품에서그기원을엿볼수있다.

하필단칸방으로이사한날이었다정월그믐이었다엄마의산통이시작되었다장판밑에금이간줄모르고아버지는아궁이에불을지폈다눈비에젖은땔감을넣고불을피우려고안간힘을썼다아궁이는쿨럭거리며매운연기를토해냈다연기는자욱하게방을덮었다엄마는매운연기의힘으로아기를낳았다그아기가바로나였다나는연기의딸로태어났다그래서인지나는연기(煙氣)에익숙했으며연기(演技)에능했다슬픔을감추고웃는아이가되었다암울한가정사도나를묶지못했다어떤결정도한치의망설임이없었다운명처럼단숨에연기보다매운남자와결혼을했고연기보다더천방지축인아이둘을낳았다이유전의연기는어디서왔을까?연기의내력을찾고싶어서책을뒤적이다가오래된사진한장을발견했다하얀연기속에서할머니가아기인엄마를안고희미하게웃고있었다섣달그믐이었다알고보니엄마도,나도연기의딸이었다
-「연기의내력」전문

이작품은존재의숙명에대한자전적기록이자,다양한방법으로시인의고유성을침해하는세계에대한응전방식의표방이다.“엄마는매운연기의힘으로아기를낳았다그아기가바로나였다나는연기의딸로태어났다”라는시적진술은영웅신화의미시적버전으로적절하다.이어지는“나는연기(煙氣)에익숙했으며연기(演技)에능했다슬픔을감추고웃는아이가되었다”라는부분은존재의한자질이성격이되는과정에대한진술이다.‘연기(煙氣)’탓에‘연기(演技)’에능하다는인식은그자체로‘연기(緣起)’를긍정한다.그렇기에한생을넘어서는‘내력’에대한의문이생겨나고,“하얀연기속에서할머니가아기인엄마를안고희미하게웃고있”는사진을발견한다.이를통해연기를매개로한최소한3대의내력이드러난다.
주지의사실이지만,‘연기’는물질이고징후다.물질을태워야만연기가발생하므로비록변형되었다할지라도연기는그물질의구성성분을모두갖고있다.물질의이속성에서유추해서연기는‘유령’으로이해된다.실재와실체의경계가불분명한존재로,그러나연기가그곳에불이있었음을증명하는강력한징후인것처럼마음의사태를이해할수있는최상의장치이기도하다.「부활절아침」에서“목련나무아래벤치에/회색야구모자쓴남자가고꾸라져있다”그는노숙인이분명한데“빈소주병을베고/먼등을긁고있다”는데서분명하게드러난다.시인의시선은이존재에대한안타까움이아니라누군가발밑에두고간“십자가가그려진달걀두개”에꽂혀있다.‘부활절아침’이기때문이다.여기의‘누군가’는‘유령’이다.행위의결과는선명하게남았지만,정체를알수없기때문이다.아니,이사태를누군가의‘부활’을기대하는간절함으로마주한시인의마음을감싸고있기에이유령은또한자신의‘매운연기’일수도있다.
-백인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