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류에게 (이리영 시집)

기다리는 류에게 (이리영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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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악몽의 바깥으로 도래하는 미래
2018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리영 시인의 첫 시집 『기다리는 류에게』가 시인동네 시인선 258로 출간되었다. 이리영의 시집은 ‘망토’ 이야기로 시작된다. ‘망토’가 등장하는 이야기, 하지만 이것은 망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망토 그 자체로서의 이야기, 즉 ‘망토=이야기’처럼 읽힌다. 이리영에게는 두려운 등을 감추기 위한 ‘망토’가 있고, 이것으로 인해 타인들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지금부터 펼쳐질 시집 전체는 ‘나’를 드러내기 위한 진술, 그러니까 표현론의 언어가 아니라 펼친 망토의 언어라는 의미이다. 이리영은 자신을 숨기기 위해, 숨기는 방식으로 시를 쓴다. ‘시=언어’는 그녀가 만든 고유의 피난처이다. 따라서 독자에게 이리영은 불가해한 텍스트로 경험될 것이다.
저자

이리영

서울에서태어나연세대학교의류환경학과졸업,서울예술대학문예창작과를졸업하고홍익대학교대학원미학과에서헤겔의예술철학을공부했다.2018년《시인동네》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번역서로『아름다움』(로저스크러튼저)이있다.

목차

제1부
망토ㆍ13/어항ㆍ14/푸른셔츠ㆍ16/가방들ㆍ18/손톱ㆍ20/달아난사슴ㆍ22/사랑의도그마ㆍ24/건조주의보ㆍ25/하드보일드ㆍ26/물고기자리ㆍ28/덤불ㆍ30/두번ㆍ32/첫사랑ㆍ34/우리의르완다ㆍ36/계단과목도리ㆍ38/밤ㆍ40/기다리는류에게ㆍ41/환생ㆍ44

제2부
피리ㆍ47/조력자ㆍ48/한파ㆍ50/휴양지ㆍ52/흰티셔츠ㆍ54/부서지는집ㆍ56/옷장ㆍ58/얼룩말사이에있습니다ㆍ60/이곳이밤이었을때ㆍ62/시네마테크ㆍ64/엄마와열기구ㆍ66/메리고라운드ㆍ68/정지화면ㆍ70/빈집ㆍ72/홈리스ㆍ74/난간에앉은사람ㆍ78/세미나실ㆍ80

제3부
덩굴기계ㆍ85/가만한세계ㆍ86/검은원피스ㆍ88/종말론ㆍ90/욕조ㆍ92/좀전까지불꽃이피어올랐다ㆍ94/도끼ㆍ96/사라지는가계ㆍ98/피뢰침ㆍ100/블라인드ㆍ102/유리포말ㆍ104/돔ㆍ105/일기ㆍ106/유리창의세계ㆍ108/얼룩ㆍ110

해설고봉준(문학평론가)ㆍ111

출판사 서평

이리영의시는도래한다.‘도래’는일종의과잉사건이다.그것은예측할수없으며,예측할수없으므로준비할수도없다.그것은철학자데리다가말했듯이이름을붙일수없는타자,법과언어의체계를흔드는주체이다.‘그’라는인칭대명사는이러한상황에서화자가이름붙일수없는타자를호명하기위해사용할수있는유일한말이아닐까.‘유리창의세계’라는제목에서알수있듯이화자는유리창을마주한채로자신이아는바가없는(“나는그를모릅니다”)‘그’를기다리고있다.여기에서시인이할수있는유일한행동은그저기다리는것이다.이기다림이라는사건에서‘나’와‘그’의관계는비대칭적이다.언제올지도알수없는,심지어인상착의조차모르는‘그’를기다리는동안“유리창의세계는어떤자연법칙을생성”한다.가령어느날오후창가에서서창밖을바라보며누군가/무언가를하염없이기다리고있는한인물의모습을상상해보라.창밖으로는시간의흐름이연출하는풍경이무심하게흐를것이고,유리창에는창문을마주하고선화자의모습이투영될것이다.“유리창의세계는쉬지않고그를제시하고있습니다”라는진술에서의‘그’가바로이풍경들이다.그풍경속에는화자의내면도존재하리라.중요한것은유리창에비친풍경의현상학자체가아니라이리영에게시가도래하는방식이정확히이와같다는사실이다.이리영의시는하나의명시적인세계를구축하려는의지의산물이아니라불현듯화자를향해도래하는세계의음화(陰畫),그산란하는언어의파편들이다.그녀의시적진술들이대체로잘려진상태로제시되는이유도이와무관하지않을것이다.이리영의시에서도착이라는사건의주체자리에는‘그’라는텅빈기표만놓여있을뿐구체적인대상으로채워지진않는다.

당신의셔츠가참푸르다생각하며그생각에오래머물다보니입이마르고그만셔츠에손을담그고싶어져

가본적없는바닷가와그곳을떠도는목소리와
그목소리를등지려는뒷모습들과

셔츠의단추는금세날아가버릴듯새하얗고

당신은단추를다채우는사람,자두를한입베어물고도소매를걷지않는사람,반듯한깃아래가맑게차오른사람,깃끝채워진아주작은단추를만지작거리는사람,구김살없이감춰진셔츠끝단을바지위로더듬는사람,당신은어젯밤머리맡에한컵따라놓은물처럼

미지근한셔츠에팔을서둘러넣고는푸른소매에서아직빠져나오지못한것들을오래생각하다그만발밑에컵을엎지르고발이젖어젖은발로구두를신고집을나서면

가본적없는바닷가와그곳을누르는둥근자갈들과
그자갈위를영원히뒹구는

내손아귀에서자두씨가말라가고

그물기에손바닥이잠시푸르러지는
-「푸른셔츠」전문

이리영의시는대체로감각과이미지의문법에의존하여전개된다.이것은그녀의시편들이의미의계기적연쇄를따르지않는다는의미이기도하다.의미의연쇄와달리감각과이미지의문법에는연속성만큼이나강렬한비약이존재하기마련이다.심리주의소설에서의의식의흐름처럼연속성이존재하지않는것은아니지만의미의층위에서그연속성을발견하기는어렵다.망토의언어라는사실에감각과이미지의문법이더해짐으로써이리영의텍스트는종종오리무중,불가해한텍스트의한계지점까지나아간다.이러한특징은시적진술을제시하는방식에서도분명하게드러난다.한편의시가상당한수의연(聯)으로분절되어있다는것,그분절사이에의미의연속성이드러나지않는다는사실이이를증명한다.요컨대이리영의시에등장하는수많은분절은그녀의시적사고가감각과이미지의층위를따라전개됨으로써발생하는필연적산물처럼보인다.
-고봉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