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장갑

여우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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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몽유와 몽상의 행복한 시 읽기
200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정란 시인의 『여우장갑』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93으로 출간되었다. 최정란 시인에게 있어 여우장갑을 낀 여우는 또 다른 시적 자아이다. 최정란의 여우는 메말라 있지 않고 동화적이며 나이를 먹지도 않는다. 현대적 문명의 흔적도 없고 고작해야 직립과 피라미드를 이야기할 정도이다. 자유롭고 편안하며 유기적이다. 여우장갑의 주인은 현명하여 제 몸을 드러내지 않고 덫에 걸리지도 않는다. 수유는 양육의 자연스런 방법이지만, 한편으로는 익사에의 공포를 동반한다. 물에 빠져 허둥거려본 사람은 이 기억을 무의식에 저장하고 있다. 최정란의 시편에는 불길이 지펴져 있다. ‘나무와 접 붙고 싶다’는 시인의 세계는 폭발 직전의 불온함으로 가득 차 있다.
저자

최정란

경북상주에서태어나2003년《국제신문》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독거소녀삐삐』『장미키스』『사슴목발애인』『입술거울』이있으며,최계락문학상,시산맥작품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그랑자트섬의오후13/마릴린먼로14/청사포15/산벚나무에이력서를내다16/목도리도마뱀18/시이튼의동물기19/대팻집나무20/토마토22/화살23/물水자를베고자는잠24/사막이보낸편지26/다락방27/자유분방28/모나미볼펜15330/범일동자수점31/네잎클로버32

제2부
우주인공성인35/새36/송다38/웰위치아39/두실역일번출입구40/불속의편지42/꽃밭에서43/목련44/문희,꿈을사다46/낙타편의점47/여우장갑48/강물재판50/혹등고래의외줄타기51/백년동안의고독52/훌라후프54

제3부
수건돌리기57/코피58/넥타이59/반환점60/달빛거미62/비학리의배후63/삼족오(三足烏)64/수국꽃피거든66/벽조목도장67/타래난초68/보름달,70/풀등71/접선72/그리피스조이너의손톱74/아침명상75/맞수76

제4부
불혹79/그림자월장80/과수원이있던자리82/하현83/귀뚜라미환상통84/감동란86/애국가87/파킨슨신전(神殿)88/황태해장국90/카시오페이아자리91/연탄92/거푸집94/삼강나루95/숫돌96/종합선물세트98

해설염창권(시인)99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다니엘키스트(DanielKister)는부조리극과무당굿을비교하면서,양자가모두,어떤불가사의한힘에농락당하는미약한존재로서의인간에서벗어나,우리가살고있는현재와미래를완전히꿰뚫어보고자하는희구속에공통적으로뿌리박고있다고하였다.즉자신의운명을예견하고죽음저너머까지투시하고자하는지극히인간적인발로가예술적으로승화된것이부조리극이나무당굿이라는것이다.시인이시를쓰는행위는‘신내림’을집행하는무녀의중얼거림과유사하다.나무와꽃,새등의자연물과일체감을형성하면서찾아내는예언자적감수성은최정란시인이갖고있는기질적특성이다.이예언자적감수성은그의시가언어로써신학적상상력을구축하는한방법임을보여준다.
물은나무를기르고,나무는불꽃을물고있는데,그중풍부한물방울의양육의지는젊은엄마의본질적속성이다.여성적인풍부한양육의원형은달빛을통해대유된다.달빛에는차고기우는나름의길이있다.전래동화「우렁각시」에서나오는바,물속의모든패류와갑각류들은달빛을닮아몸이가득차오르거나홀쭉하게비워진다.따라서“달의수위가낮아진다”(「과수원이있던자리」)는표현은내몸안에키운것들이썰물처럼빠져나가고,새로운것을채워넣기위해공허를견디는중이라는말과같다.지상을비추는달빛은비우고채우는과정을단한번이라도소홀히한적이없다.

꽃그늘을넘나들며잉잉대던벌들오지않는다
달빛그윽하게깊어지던과수원,달빛고이지않는다
누수가진행된틈으로달의수위가낮아진다
텅빈분화구붉은흙먼지가자옥하게눈을찌른다
물밖에나온물고기처럼바닥이배를뒤집어보인다
몸에도자세히보면달빛새어나간틈이무수히많다
철모르는사과꽃들피어나던마음한채들어낸다
-「과수원이있던자리」전문

시적화자는어느덧불혹을지나면서“몸에도자세히보면달빛새어나간틈이무수히많다”고한다.개체의몸인한여성은자연물인달빛처럼무한히순환의연쇄를이루어낼수없다.유한한삶이며,유한한삶에대한인식은고통을수반한다.“텅빈분화구붉은흙먼지가자옥하게눈을찌”르는데,더이상달빛은고이지않는다.내적으로가득차올라충만한상태가양육의성질을가지고있다면,누수가진행되면서흙먼지가자옥한텅빈분화구는물고기한마리키울수없는불모의상징이된다.텅빈분화구바닥이물고기처럼배를뒤집어보이기때문이다.그런데이와같은인식을실상몸보다마음이먼저알아채는것이문제이다.마음이먼저사막의길을가고있다.“철모르는사과꽃들피어나던마음한채들어낸다”에서그동안자주꽃을피운것은철모르는마음이시킨일이니,그마음한채를들어내어또다시누수의반복을겪지않으리라는다짐을하게되는것이다.
나무는꽃을피우려는본성을가지고있다.그러나나무가철을놓쳐꽃을피운다면,스스로를상하게한다.이를제어하려는의지,이미시간이지났다는확인,이러한사유는단단한목질처럼깡말라있다.나무에게는성장기의흔적이있다.그흔적을하나씩벗겨내어생의물무늬를확인하는작업이대패질이다.대팻집나무는자라나서몸에칼을품고자신의누추한속살을벗겨내는일을한다.이는뫼비우스띠처럼내가나를더듬어내력을확인하는일이된다.
-염창권(시인)

[시인의산문]

언어의장애가언어의위로라는언어의역설을생각해본다.말은상처를주지만말없는말은위로를준다.나아가언어의결핍이수화라는새로운언어를탄생시킨다.말은소리만으로이루어진것이아니다.침묵이야말로더많은것을전할수있다.말없는존재들이손짓으로사랑,배려,위로를전한다.말이사라진자리에서도온기와위로가피어날수있다.나는단지삶의한장면속에서,조용히,손의언어로,따뜻한느낌표하나를건넬뿐이다.홍안의쑥스러움이먼저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