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에게 닿을까 봐 (이향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닿을까 봐 (이향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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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어떤 세계는 너무 황홀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향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우리는 서로에게 닿을까 봐』가 시인동네 시인선 262로 출간되었다. 이향 시집에서 ‘밤’과 ‘그늘’과 ‘그림자’는 하나의 계열을 이루면서 ‘낮’과 다른 세계/질서를 구축한다. 그것은 시인과 독자 모두를 ‘밤’의 세계로 데려가고, ‘밤’과 대면시킨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러한 ‘밤’과의 조우에서 공포와 절망을 호소했으나, 이향 시인에게 ‘밤’은 ‘낮’의 밝은 빛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인간의 목소리 때문에 들을 수 없었던 세계가 ‘탄생’하는 매혹의 순간을 선사한다.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이, 시와 예술은 이미-항상 ‘밤’에 탄생한다. 물론 ‘낮’이 있기에 ‘밤’이 존재한다. 하지만 ‘밤’은 ‘낮’의 언어로는 닿을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질서 속으로 이향 시인은 조용히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그 세계는 황홀하다.
저자

이향

경북감포에서태어나2002년《매일신문》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으로『침묵이침묵에게』『희다』가있다.

목차

제1부
돌에게ㆍ13/거울ㆍ14/너의방식으로ㆍ16/접시는매일조심한다ㆍ18/나는공이되어가고있다ㆍ20/쉼보르스카ㆍ22/그렇게알게되었을까ㆍ24/책상은태어난다ㆍ26/연인들은눈이온다ㆍ28/아침마다시집이도착했다ㆍ30/월식ㆍ32/악몽ㆍ34/슬픔을확인하러갔다ㆍ36

제2부
작약ㆍ39/누가장미에게꽃을주었을까ㆍ40/빌어먹을옐로우ㆍ42/삶은계란ㆍ44/두부같은날ㆍ46/액자ㆍ48/오늘의형태ㆍ50/나무는조금만잠든다ㆍ52/우리는같은계절을겹쳐입고도ㆍ54/바다라는감정ㆍ56/안전문자ㆍ58/캐리어ㆍ60/당신의안부ㆍ62

제3부
오,아름다운잠ㆍ65/혼자있을때밤이왔다ㆍ66/허기ㆍ68/질문들ㆍ70/유빙ㆍ72/어쩌다꽃다발을받을때ㆍ74/백일홍ㆍ75/저녁을희게널었다ㆍ76/당근마켓ㆍ78/풀밭ㆍ80/이사ㆍ82/낮달ㆍ83/엔딩크레딧ㆍ84/우리가빛이라생각하는모든것ㆍ86/해남ㆍ88

제4부
북향ㆍ91/입김ㆍ92/언제까지잠들수있을까ㆍ94/세개의바다ㆍ96/여행ㆍ99/백야ㆍ100/사주타로카페ㆍ102/슬픔이돌아올까ㆍ104/그것은겨울이주고간것ㆍ106/문앞에서ㆍ108/긴계절이있었다ㆍ110/봄ㆍ112

해설고봉준(문학평론가)ㆍ113

출판사 서평

이향의시는일상적경험에서시작된다.이것은이향의시가일상을중요하게생각한다거나그세계를충실하게재현한다는뜻이아니다.우리는‘밤’에관해이야기하면서‘나무’가걸어나오기위해서는이미-항상‘나무’가존재해야한다고말한적이있다.이향의시에서‘밤’은‘낮’과완전히단절된시간이아니라는것,‘밤’은‘낮’의이면,타자,그림자,궁극적으로는잔여와유사한것이다.이런맥락에서시인에게일상은빠져나오기위해선차적으로존재해야하는‘낮’의시간이라고말할수있다.이향의시는‘밤’이열어젖히는‘언어’의행로를따라이‘일상=낮’의세계에서벗어나는출구찾기이다.

밤에나무는나무가되지않으려고하늘로오른다나무에서멀리더멀리가려고부글거리며끓어오른다밤에나무는나무가되지않으려고숲으로간다숲은검게타올라어둠의집을크게가진다밤에나무는춤춘다

다시돌아가지않으려고격렬하게제흰그림자를떨어뜨린다

우리는사랑을가지려고아무렇지도않게밤을밟고지나갔다

나무는안다밤이되어서야오롯이나무가된다는걸숲이거대한불안에휩싸여희게뱉어질때

한쪽가슴에죽은새를안고

은빛촛대를들고
한잎한잎당신을생각하느라

나무는
밤에나무는조금만잠든다
-「나무는조금만잠든다」전문

‘나무’는시인이가장선호하는시적대상이다.첫시집에등장하는“나무는나무에서걸어나오고”(「밤의그늘」)라는진술만이아니라두번째시집에수록된“나무는빗속으로희게타들어가고있다”(「나무의밤」)등에서확인되듯이이향의시에서‘나무’는‘밤’과함께등장해화자를‘낮’의잔여로견인하는대표적인사물이다.이런의미에서‘나무’가이향의시세계로들어가는유력한입구라고말해도과장이아닐듯하다.두번째시집『침묵이침묵에게』역시비탈을기어오르고있는나무의형상으로시작된다.“검푸른치마를걷어올리고나무들이기어오른다”(「비탈」)라는진술이그것이다.“통째로뽑힌나무의하부”(「비탈」)를드러낸채비탈에위태롭게뿌리내리고있는나무의형상,시인에게그것은검푸른치마를걷어올리고비탈을기어오르는한여성의모습으로각인되고있다.이와유사하게인용시에서화자에게‘밤’의‘나무’는“나무가되지않으려고하늘로오”르는형상으로가시화된다.나무가되지않기위해“나무에서멀리더멀리가려고부글거리며끓어오”르는나무는나무이면서동시에나무가아니다.아니,‘낮’과‘밤’에걸쳐있는이사이-존재로서의나무야말로“오롯이나무”가된상태라고말할수도있겠다.왜냐하면‘낮’의시간에속한‘나무’는이미-항상인간을전제한존재,가령풍경의일부이거나인간의삶을위한유용한수단,그러니까‘대상’의수준을벗어나지못하기때문이다.이때의‘나무’는존재하지만이미-항상수단이나도구로서존재할뿐스스로존재감을드러내면서존재하는것,요컨대“오롯이나무”로존재한다고말하기어렵다.
반면‘밤’의시간에속하는‘나무’는나무를빠져나온나무,나무가되지않으려고하늘로솟아오르는나무,“나무에서멀리더멀리가려고부글거리며끓어오르는나무”처럼오직‘나무’로존재할따름이다.“밤에나무는나무가되지않으려고숲으로간다”라는진술처럼시인은‘숲’을나무에서벗어난나무의형태로인지한다.‘숲’이라는새로운배치의일부로서의‘나무’는한그루,즉단독자로존재하는‘나무’와다르다.“밤에나무는춤춘다”라는표현처럼이러한특징은특히‘밤’에분명하게드러난다.시인은숲의일부로서다른나무와더불어어둠에잠긴상태에서바람에흔들리는나무의형상에서“다시돌아가지않으려고격렬하게제흰그림자를떨어뜨”리는듯한모습을발견한다.‘밤’의시간속에서자신의존재감을드러내는‘나무’를가리켜시인은그것이깨어있다고,조금만잠들었다고표현하고있다.어쩌면인간이,인간적인것들이잠든‘밤’이야말로‘사물’이제모습을드러내는시간,즉사물의시간은아닐까.‘인간’의세계가잠에빠질때,그리하여침묵할때비로소‘사물’의세계가입을여는것인지도모른다.이때시인은이사물의목소리를듣는존재일것이다.
-고봉준(문학평론가)


[시인의산문]

돌을무심히던져두거나가끔쓰다듬다가
어느날은물에게돌려주고온적있다.

잘말해주지못한것에대해

애도의방식일까
슬픔은멈췄으나그무늬는아직일렁이고,

그것을뒤집었을때
우리는입을다물었는지모른다.

당신이당신에게가는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