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나비가 된 화가 (정경미 시집)

천경자, 나비가 된 화가 (정경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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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여자는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2005년 《경인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경미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천경자, 나비가 된 화가』가 문학의전당 시인선 405로 출간되었다. 정경미 시인이 시인으로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 우리 미술사에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천경자 화가의 일대기를 시집 한 권으로 엮어낸 것이다. 문학사에 처음 있는 일이지 싶다. 이는 정경미 시인의 끈기와 인내 그리고 천경자 화가에 대한 존경심이 얻은 결과이다. 천경자를 거울처럼 통과한 자리에서 정경미는 이윽고 자기 초상을 다시 불러낸다. 색으로 화가의 일생을 말하고, 색으로 자신의 시를 말하는 정경미의 이번 시집에 주목해 보자.
저자

정경미

경남거제에서태어나2005년《경인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으로『길은언제나뜬눈이다』『거제도시편』『차라투스트라의입』『어린철학자는꽃이지는이유를잊고』『주홍글씨속의유령들』『정경미의거제포구이야기』가있다.한국시인협회,부산작가회의회원.〈가변차선〉동인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지붕없는미술관13/절망과입을맞추는14/여자의전설15/스물두번째의겨울116/스물두번째의겨울218/그대섦은생애20/유년의햇살21/꽃의정한(情恨)22/스물두살의전설24/꽃들의바다26/여자의바다27/비밀의화원28/나의초상30/허드슨의밤32

제2부
나비가된화가35/해바라기36/화가의봄날38/봄의화원39/이상기후40/맨발의여자42/오필리아43/그여자의행상44/환생하는봄46/꽃의외로움47/화가의귀48/그여자의선인장50/아열대51/천경자의남자152/천경자의남자254

제3부
화가가사랑한여자157/화가가사랑한여자258/화가가사랑한여자360/풍경을위작하다62/자화상과의해후63/그여자의습윤(濕潤)64/나비의혼66/전설의화폭68/꽃들의전설69/화가의뒷모습70/허드슨강가에서72/석산(石蒜)무렵74/화가의혼(魂)75/천경자의사막176/천경자의사막278

제4부
백년전그날처럼81/마흔아홉번째의겨울82/백야84/아프리카의슬픔86/불가사리의꿈87/시간이탈88/화가의비애90/붉은가시나무92/나부(裸婦)의화가93/사모아사모아94/여자의우물96/떠돌이꽃98/벽앞의여자99/허드슨강가에서2100/화가의미술관102

해설김보람(시인)103

출판사 서평

정경미의시속에서‘여자’는한사람을넘어서있다.시인은현실의여성을데생하듯옮겨적지않는다.오히려여자의상처와욕망,기력없는오후와서늘한마음,소리내지못한내면의울림을고스란히신화적징후로끌어올린다.시안에서여성은더이상특정한누군가가아니다.서로의고통을뼈째로나누고,서로의상흔을거울처럼비추며,서로의이름이희미해질만큼겹치는집단적존재가된다.이때천경자는현실의화가라기보다,정경미의상상력이닿아도안전하게머물수있는무대처럼작동한다.들뢰즈식으로말하자면,천경자는‘되기(becoming)’의경로다.시인은천경자의얼굴을통과하되,그얼굴에갇히지않는다.공간을채우는것은정경미가오래품어온여성성의원형들이다.그러므로여성은‘존재(being)’나‘소유(having)’의질서로는설명되지않는다.그들은하나의상태에머무르지않고끊임없이‘-되어가는’운동속에서스스로를확장해간다.전설의자국을품은여성,비극의여운을지닌여성,꽃으로환생하는여성,슬픔을등에지고도끝내나비를불러내는여성까지.그모든형상은하나의흐름으로맞물린다.이렇게탄생한‘여자’는현실을벗어나면서도현실을감싸안는서사의문턱을밟고서있다.

뙤약볕아래두꺼비한마리
헛꽃을입에물고

화폭과마주하며살아온
아흔평생이말을걸어온다

보랏빛환상은비를부르고
우렛소리지나간하늘엔
태양의텅빈동공

화가의뜰에쏟아지는황금비
여자의지친손은
혼빠진꽃들을쓸어담는다

붓끝에서흘러내리는용암이
미라로잠든꽃들을깨운다
화원으로찾아드는
나비떼
-「여자의전설」전문

그대표적예가「여자의전설」이다.시는첫행부터“뙤약볕아래두꺼비한마리/헛꽃을입에물고”라는기묘한장면을내던지며독자를단번에생경한세계로끌어들인다.현실의논리로는함께놓일수없는“두꺼비”와“헛꽃”이한프레임안에서맞물리는순간,시는이미신화의문턱을넘어선다.이어지는“보랏빛환상은비를부르고/우렛소리지나간하늘엔/태양의텅빈동공”에서“동공”은빛의중심이빠져나간자리,말로붙잡기어려운공백(outofjoint)의감각을드러낸다.이때의“태양”은더이상생명의상징이아니라,한때격렬히타올랐으나지금은중심이비워진감정의잔흔으로남는다.그러나여성은빈자리에머무르지않는다.자연의기운을흔들고,계절의숨결을흐트러뜨리며환상과현실사이를가로지르는존재로새롭게태어난다.마지막연의“붓끝에서흘러내리는용암이/미라로잠든꽃들을깨운다”라는구절은변환의순간을포착한다.“용암”은상처의뜨거운기운이자창조로향하는움직임이고,“미라로잠든꽃”은오래봉인된그늘과욕망이깨어나는자리다.숨죽인불씨가열(熱)이되고,고통이불꽃의이미지로번질때정경미의‘여자’는마침내다시일어난다.
-김보람(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