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몸짓에도 눈길을 사로잡던 (이연숙 시집)

사소한 몸짓에도 눈길을 사로잡던 (이연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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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시인이 사물을 떠날 수 없는 이유
2022년 《시와소금》으로 등단한 이연숙 시인의 첫 시집 『사소한 몸짓에도 눈길을 사로잡던』이 시인동네 시인선 272로 출간되었다. 이연숙은 근본적으로 관계 지향적인 시인이다. 이연숙은 항상 바깥을 쳐다보며 사유한다. 바깥의 표정과 소리를 읽는다. 사물들의 잠든 소리를 듣고, 사물들의 지워진 얼굴을 복원한다. 사물들의 눈과 귀가 되어 대신 듣고 대신 보고 대신 운다. 자아와 세계 사이의 이런 수평적 관계 속에서 이연숙의 내면과 세계와 포개진다. 그렇게 세계와의 열린 관계를 지향한다. 낮고 높은 것들이 서로 몸을 숙여 물처럼 수평을 이루는 공간에서 존재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가 열린다. 대화적 관계 안에서 존재들은 상대를 전유하거나 구속하지 않는다. 주체와 대상, 시인과 세계가 서로의 음계를 존중하며 스미고 섞일 때, 아름다운 화음이 생겨난다. 이 시집은 그렇게 열린 정신이 만든 다성적 사유의 결과물이다.


[시인의 말]

눈 오는 새벽
아무도 없는 마을 길을 걸었다.
뒤돌아보니 비뚤 삐둘한 발자국
그 또한 아름다웠다.

2026년 3월
이연숙
저자

이연숙

인천에서태어나2008년《에세이문학》수필등단,2022년《시와소금》시등단했다.수필집『미루나무각시』가있다.

목차

제1부
낙하ㆍ13/폼페이ㆍ14/검은크레파스ㆍ16/이웃사촌ㆍ17/사랑의방식ㆍ18/녹색다방ㆍ20/새몰이ㆍ21/21세기놀부전ㆍ22/잠이오는길ㆍ24/어땠을까ㆍ25/마지막눈ㆍ26/지금308호ㆍ28/내가화장실을떠날수없는이유ㆍ29/아카시나무ㆍ30/유구무언ㆍ32

제2부
바늘꽂이ㆍ35/우물이야기ㆍ36/멈추지않는페달ㆍ38/스위트홈ㆍ39/애초에그들은만나지않았다ㆍ40/달려라은바퀴ㆍ42/꽃무덤ㆍ43/잠든강ㆍ44/할머니의툇마루ㆍ46/봄ㆍ47/빈폴리조트ㆍ48/풍경ㆍ50/책의노후일기ㆍ51/청주가뜨는시간ㆍ52/유령ㆍ54

제3부
일곱번째별ㆍ57/당근은맛있어ㆍ58/어떤편지ㆍ60/눈사람ㆍ61/독한것ㆍ62/에어포켓ㆍ64/5초전ㆍ65/적당한눈의색깔ㆍ66/아름다운일미집ㆍ68/눈물은왜눈에서날까ㆍ70/물의말씀ㆍ71/외딴집ㆍ72/마음의문고리ㆍ74/여섯걸음ㆍ75/노랑붓꽃의속력ㆍ76/달마사일현스님ㆍ78

제4부
큰오빠ㆍ81/나무가되어ㆍ82/마른장마ㆍ84/수평ㆍ86/만월ㆍ87/교동향교ㆍ88/미루나무각시ㆍ90/눈물이나오려는날엔ㆍ92/시와변의상관관계ㆍ94/아버지의소원ㆍ95/겨울벚나무ㆍ96/낡은양말ㆍ98/외양간옆작은방ㆍ100/수레국화를위한기도ㆍ102/11월의장미ㆍ104

해설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명예교수)ㆍ105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이시집을읽어나가다보면얼마지나지않아딱걸리는부분이있다.이문턱같은것,혹은여는문고리같은시들이야말로이연숙시의특별한세계를보여준다.이런시들을무어라불러야할까.사물시?굳이그런이름을붙이지않더라도칠레시인파블로네루다도『기본적인송가(OdasElementales)』(1954)라는시집에서일상의사물들을집중적으로건드려명품송가들을쓴것으로유명하다.그는양말,포도주,토마토,양파,빵처럼너무흔해특별해보이지않는사물들을끌어들여그안에녹아있는삶과세계의특별한흔적들을기렸다.네루다가볼때말그대로‘순수한’,의미부재의사물이란없다.사물엔그것이만난자연과인간의기록이있고,그런기록들은시간과공간과주체에따라매우다양한문양을가지고있다.이연숙시인은사물을상징이나은유의수단으로사용하지않는다.그의사물들은상징이나은유이기도하지만,그자체의미의발원지이다.

화장실작은창문으로검은가죽나무가살고있었지태풍이몹시사나운날에는휘어진가지들이비닐하우스위로비닐을찢을듯위태로웠어사나흘내리비가퍼부으면흙물이도로를다덮고산은품고있던모래알들을토해내곤했어모래알들은스크럼을짜며아래로아래로전진하고검은가죽나무가지들은휘청이며땅으로쏟아졌다가는튕겨올라하늘로솟구쳤어누군가환호성을질렀지저것좀보아나무들이하늘의뺨따구를힘껏치고있어화장실작은창문으로구름도지나고사나운바람도지나가고폭풍우도지나갔어

잠깐그렇게
세상이곧뒤바뀔거같은순간이지나갔지폭우가몰려오면나는뭔지모를기대에차서오래도록화장실작은창문곁을지키게되었어
-「내가화장실을떠날수없는이유」전문

이연숙시인의사물시에는서사가존재한다.화장실의작은창문으로보이는풍경은마치커다란일이일어날것을예고하는듯,서사성(narrativity)으로충만하다.“검은가죽나무”라는무거운이름,태풍이몰려와비닐하우스를찢을듯위태하게바람이불고,흙물이도로를뒤엎는풍경,그리고마침내그검은가죽나무가지들이하늘로솟구치는풍경은절정을향해달리는계시록의이야기같다.화자는화장실이라는작은공간에서거대서사가폭풍처럼일어나는모습을지켜보며“뭔지모를기대에차”있다.화자는이세계의거대한변화를꿈꾼다.“세상이곧뒤바뀔것같은순간”은화자로하여금화장실을떠날수없게만든다.이시는어떤변화의징후만을보여줄뿐,그것도풍경의위태로운상황만을보여줄뿐,그이상의서사로나가지않는다.아리스토텔레스는시-중-종의완결된서사를가진것만을‘이야기(story)’라불렀는데,그렇다면이시에는이야기의시작인지중간인지아니면마지막인지알수없는어떤순간만나와있다.그러므로이시의‘시적인것(thepoetic)’은완결되지않은서사에서텍스트가말하지않은것,침묵하고있는부분에서발생한다.시인에게화장실의창문은무엇을의미하는가.결국모든세계는가장밑바닥에있는생리의프레임으로읽어야한다는뜻인가.세계는급변과반전의순간에가장‘볼만하다’는것인가.중요한것은이야기의종결이아니라과정자체라는뜻인가.“나무들이하늘의뺨따귀를힘껏치”는장면은무엇을의미하는가.밑바닥에있는복수의하찮은것들이모여절대단수하늘의뺨을갈기는일은얼마나많은의미의상징-행위인가.이연숙은단순한사물을기계적은유로바로끌고가지않고,그것자체에서,그것의몸에서,수많은귀결을잠재적으로가지고있는서사를읽어낸다.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