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록의 울음이 흰 숲을 가른다 (김재숙 시집)

순록의 울음이 흰 숲을 가른다 (김재숙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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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노래하는 한 소녀를 주목하라!
2022년 《스토리문학》으로 등단한 김재숙 시인의 첫 시집 『순록의 울음이 흰 숲을 가른다』가 문학의전당 시인선 409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의 문장들은 수채화처럼 번진다. 그러나 번짐은 흐릿함이 아니라 감정의 확장이다. 김재숙 시인의 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자주 그늘 곁에서 서성거리게 될 것이다. 햇살이 빠져나간 자리에도 기억이 남는다는 사실, 말이 끝난 곳에서 더 오래 울리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이 시집은 조용히 일러준다. 김재숙 시인은 풍경을 바라보되 소비하지 않는다. 풍경 속에 남아 있는 체온과 잔향,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끝내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정박’에 가깝다. 계절이 바뀌어도 그 자리에 남아 누군가의 마음을 붙잡아 주는 방식, 그것이 김재숙의 시다.
저자

김재숙

경북의성에서태어나동국대사회과학대학원사회복지학석사졸업했다.2022년《스토리문학》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한국수채화공모대전,한국회화의위상전등에서수상하였으며,대한민국통일명인미술대전초대작가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제1부
바위13/그늘아래쓴글14/상생16/향기로번역되는언덕18/산책20/그림자없는시계21/녹색시간22/머무는파랑24/오선지위의까치26/별이빛나는밤28/샛강의속삭임30/정박의시간32/나는번지는중34/고장난라디오36

제2부
작은안부39/계영배40/재너머자전거42/아이비의생존법44/비자림,빛의편곡46/초록을열다47/느린시계의노래148/느린시계의노래250/느린시계의노래352/꽃무늬찻잔54/바늘끝에맺힌시간55/날개의시간56/돌위의낮잠58/고재찻상60

제3부
눈과눈63/빛속에접힌소리들64/검은나비66/오래된책68/대기자70/작천정71/책대신구름을읽다72/민들레바람되어74/먼지의하루76/몬스테라의말78/플라멩코의저녁80/겨울소리82/초대받지않은관객84/스탠드의속삭임86

제4부
봄을데우는굴뚝89/고정관념탈출기90/남겨놓은무늬92/어제의방심94/억새평원96/산의방식97/스투키98/세월이흘러100/스트랜딩102/라벤더104/산책과놀이사이에핀꽃105/설강화106/금전수의반란108/고독은코발트블루110

해설나호열(시인,문학평론가)111

출판사 서평

하이데거는“존재는시간이다”라고하였다.즉우리에게공평하게주어진시간속에서마주친사건의주인공이되어응답하는본질이존재라는것이다.이세상에존재하는개별적모든사물들을존재자라고한다면‘존재’는존재자들을있게끔하는본질이라고할수있다.돌이켜보면존재자로살다가어느순간,존재자체에시선을돌리게된다.특히예술적감각에눈을뜨게된사람들은“땔감도못된다는목공의말에/눈빛이잠시휘청거”(「대기자」)리는순간에일어나는자각이존재와의조우임을알아차리게되는것이다.
다시말해이런조우는모든인간에게일어나는사건은아니다.개별적존재자인나는유한한삶에함몰된나머지회한이나절망에빠지기쉬우며짐짓달관의달콤한환상속에사로잡혀스스로를위무하고자하는열망에사로잡힌다.아무튼‘존재’는시간과함께흘러가지만결코소멸하지않는다.흘러가면서머무르는모순관계속에서시간과존재는쉽게장악할수없는커다란슬픔이다.
김재숙시집『순록의울음이흰숲을가른다』에는많은화가들의그림과그그림들을소재로삼은시들이등장한다.김환기,살바도르달리,모네,고흐,세잔,르네마그리트등서구의인상파에서초현실주의에이르기까지다양하다.이화가들의작품을통해보여지는현실계너머혹은그속에숨어있는또다른세계가존재하고있음을알게될것이다.역으로추상을통해현상을재현하는시(詩)의영역으로이끌고있음을확인할수있다.김재숙시인은자신이목도했던그림들을통해인식하게된관념들을다시자신의생활속에이입하고시화(詩化)하는작업을통해삶의의미를규명하려는시도를보여주고있다.

녹아내리는시계위에서
시간은흐르지않고
멈춘채꿈을꾼다

뒤틀린그림자의끝에서
늘어나기만하는순간을
주워담는다

기억은바람에흩어지고
실체는유리조각처럼부서진다
거울속나를찾으려다
문득,그림자가없다는것을깨닫는다

초현실의시계는
무한히돌아가고있다
-「그림자없는시계」전문

인용시는1931년제작된살바도르달리의〈기억의지속〉을모티브로한작품이다.현상을감각기관에만의지하는것이아니라무의식에서꿈틀거리는세계를오가는그의그림은녹아내리는회중시계를통해서시간의왜곡을표현한다.다시말하면시간은균일하게흘러가는것이아니라시공간의환경에따라-아인슈타인의상대성이론참조-절대적시간은존재하지않는다는것이다.이런분석은시인에게새로운자각을불러일으킨다.
-나호열(시인,문학평론가)


[책속에서]

말이없다는건
모든것을품고있다는뜻

한자리에오래있으면
기다림도단단해진다

흘러간물소리
부딪혀상처입은것들까지

모른척
등에얹어준다

그렇게바위는
말보다무겁고
침묵보다깊어진다
-「바위」전문


겨울빛을사랑하다
신의눈을가진화가의이야기를
들은적이있다

눈발속을건너온까치가
꿈속가지위에내려앉는다
검은날개와흰눈사이
빛이한박자울린다

정오의햇살은무너진눈위로흩어지고
발자국하나,또하나
뒤돌아보면아무도없다

돌담집엔푸른눈빛,콧수염
겨울빛에반사된누군가서있고
나뭇가지다섯개를잇댄대문위에
까치가산다

까치는날지않는다
투명한오선지위에앉아겨울빛을연주한다
눈송이하나,또하나
숨결처럼흐르는선율

햇빛이속눈썹을파고들때
손끝으로공기를긁었다
날개를활짝펼친까치
빛속으로음표를흩뿌린다

불현듯,꿈의수면에파문이일고
창밖에는그가사랑한겨울빛이
푸른그림자를키우고있다
-「오선지위의까치」전문


그녀는벽을좋아한다
거칠고차가운표면일수록
더단단히매달릴수있다

누군가길을끊으려해도
그녀는옆에서다시방향을만든다
구불구불이어지는몸짓은
포기대신집념의언어다

그녀는혼자서는법을모른다
함께있어야자란다
때로는담벼락,때로는창틀
낯선곳에도서슴없이몸을기댄다

누군가의존이라하지만
나는연결이라부른다
붙잡음이있어야확장도있는법

어쩌면삶은
서로의표면에스며들어
천천히얽히는일
-「아이비의생존법」전문


눈서리를비집고
동백하나햇살을들인다

순록의울음이
흰숲을가르며그림자를씻는다

삭풍속소나무
가지끝에머무를자리를남긴다

발끝의차가움
미소가된다

눈과눈이마주칠때
마음은마음을배운다

눈송이하나
세상의체온으로내려앉는다
-「눈과눈」전문


누구나지워지지않는
구멍하나쯤안고살아가지요

구멍이많아불완전하다고하지만
그틈으로빛을받아들입니다

빛은직선으로만오지않아요
벽을돌아흐르고
바람에밀려흔들리며
숨어든자리에서다시태어납니다

숭숭구멍난자리는
결핍이아니라통로
바람이지나가고,햇살이흩어지고
이름없는목소리조차조용히스며듭니다

나는완벽을닫지않아요
결핍을열어두는법을배웠거든요
그럴수록잎맥은멀리뻗어가고
뿌리는깊게내린다는걸
몸이이미알고있으니까요

어쩌면삶은
자신안에작은틈을내어
빛이머물자리를
슬며시준비하는일인지도모릅니다
-「몬스테라의말」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