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꺼내 오기 (이연자 시집)

벼락 꺼내 오기 (이연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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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서로 모르는 얼굴들 이름 짓기
2019년 《문예바다》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연자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벼락 꺼내 오기』가 시인동네 시인선 276으로 출간되었다. 이연자 시인은 비록 시인으로서의 연차와 이력은 짧으나 내공만은 그 누구 못지않게 웅숭깊다. 그 힘으로 여수해양문학상과 포항소재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연자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 스며들어 흐르는 하나의 연속체로 지속된다. ‘천년의 정원’과도 같은 이 시적 토포스에 새로운 건축을 시도하는 이면에는 과거를 부정하는 데서 비롯하는 의미들의 충돌로 가득하다. 과거 경험으로 주체가 동화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일, 현재를 사로잡는 기억에 대항하여 기억을 지우면서 변신하고 확장하는 생성은 새로운 ‘이름 짓기’로 끊임없이 모색된다. 요컨대 이연자의 시는 ‘감응’과 ‘지각’ 사이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무의식적 사건’, 혹은 발생했다 사라지는 ‘벼락’이다. 모색과 사유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모습이 시인 내부와 외부의 ‘이름’이겠으나, 그 이름은 시인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벼락을 통해 덤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저자

이연자

시인

전남장흥에서태어나2019년《문예바다》신인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시집으로『세개의심장이뛰는연못』이있으며,여수해양문학상과포항소재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제1부
새가슴이된이야기ㆍ13/나무상자ㆍ14/물새와나는ㆍ16/탁자위에수석은ㆍ18/사마귀를부르는밤ㆍ20/밀밭ㆍ21/봄의세금고지서ㆍ22/집중ㆍ24/빗소리는살아있다ㆍ26/여유당일기ㆍ28/물의노래ㆍ29/천년상수리나무ㆍ30/탐진강의별책부록ㆍ32/칸나ㆍ34

제2부
별의이름ㆍ37/옻나무동쪽ㆍ38/벼락꺼내오기ㆍ40/책다락방ㆍ42/백년후봄ㆍ44/어린이대공원놀이동산에대한제비의태도ㆍ46/고양이똥과네발나비ㆍ48/먼길ㆍ49/오후4시ㆍ50/봄빛의후예ㆍ52/화병수집가ㆍ54/목포로도망가기ㆍ56/붉은둘레ㆍ58/새ㆍ60

제3부
유리병속에두고싶은것들ㆍ63/소중한것ㆍ64/금강소나무는그림자들고서있다ㆍ66/배추씨앗을파종할무렵ㆍ68/묵호항ㆍ70/종달리수국ㆍ71/흙집ㆍ72/감기는길고낮잠은왜짧은가ㆍ74/겨울한탄강에서ㆍ76/산수유나무ㆍ78/북쪽ㆍ79/목련나무대출ㆍ80/우물ㆍ82/장흥ㆍ84

제4부
호두나무는힘이세다ㆍ87/해바라기ㆍ88/나를만나러간다ㆍ90/그피냄새ㆍ92/마늘ㆍ93/그사람ㆍ94/백두산꼭대기ㆍ96/귀뚜라미울음은ㆍ98/추석ㆍ100/마중물ㆍ101/그돌덩이ㆍ102/나무도마ㆍ104/서쪽이붉다ㆍ106/밥통ㆍ108

해설신상조(문학평론가)ㆍ109

출판사 서평

[해설엿보기]

문학은사회적이고체계적인랑그를재료로시인이무한히창조적으로부려쓴파롤이다.이개인적이고구체적인발화는‘감응(Affection)’과‘지각(Perception)’의유기적관계성을기반으로하면서도무의식의언술로미끄러지는폭이클수록시어의개방적잉여성이라는풍요의장을풍부히펼쳐낸다.질들뢰즈의견해를빌리자면지각은유기체가외부세계를일정한객체나이미지로구조화하여받아들이는대상화의과정이다.이때선택과여과는필수적이다.우리는쏟아지는감각정보중자신에게유용한정보만을선택한다.‘행동의필요’에의해‘저것은꽃’이라이름붙이고고정된형상으로세계를정지시키고구획하는일종의여과작업이지각이다.반면감응은지각과지각사이,혹은자극과반응사이의‘틈’에서발생하는신체적인체험이다.감응은단순히무엇을보는것이아니라,외부의힘이내몸에부딪혀나의상태를변화시키는신체적변용을의미하는데,슬픔,기쁨,전율처럼구체적인형상으로설명하기어려운질적인변화를일컫는다.감응은대상을관찰하는것이아니라,대상과내가만나는접점에서일어나는‘사건’자체에가깝다.이연자의시는‘감응’과‘지각’사이에서발생하는하나의‘무의식적사건’이다.그리고‘무의식적사건’을통과한시의주체는이전과는달라진주체로‘출발’한다.

바오바브나무숲그늘같다

코끼리영혼은푸른빛이라는데
수석은나를바오바브나무가있는곳으로데려간다

해를삼킨바오바브나무
저녁이되자희뜩희뜩한어스름으로출렁거린다

바오바브나무는코끼리가심어놓은우물
그속으로다시돌아가고자
코끼리의영혼은수석으로숨어들었으리라
바오바브나무,수십억광년의어둠에잠겨있으니
까맣게죽은나의발톱에도피가다시흐른다

이세상의마지막코끼리여왕이
풀뿌리하나씩물고숨을고르고있을때
휘어져있는것은저지평선이아니고
몸을벗고가는저달이뜨는입구가아닐까

비를기다리는바오바브나무,사실은
제몸속에코끼리울음같은천둥을키우고있어
원을그리고
크고힘센바람을곁가지에숨겨두었으리라

탁자위의수석은
코끼리의심장에박힌뼈라고
심장의뼈만이땋아낸푸른빛이라고속삭인다
아프리카를다녀온지서른해가지나서야
저영롱한말을알아듣게되었다
-「탁자위의수석은」전문

시는탁자위의‘수석’이라는작고단단한사물을통해아프리카의광활한시간과생명력을복원해낸다.30년전의과거경험과탁자앞에앉은현재의시점,그리고수십억광년이라는우주적시간이초월적으로한데어우러져있는이시는,앙리베르그송(HenriBergson)의‘지속(Durée)’과‘기억’이란담론을자연스레떠올리게만든다.
시간은‘지속’이다.우리는흔히시간을시곗바늘처럼1초,2초나누어진공간화된시간으로이해한다.하지만베르그송은진정한시간은칼로자르듯나눌수없으며,과거와현재가서로스며들어흐르는하나의연속체라고보았다.과거의모든경험은우리삶의모든순간이하나도빠짐없이보존되는‘순수기억(PureMemory)’의형태로우리곁에머물며,특정한사물이나감각을만날때현재로분출된다.순수기억은신체가아니라‘정신’에속하며,우리가의식하지못하는순간에도잠재적인상태로실재한다.예컨대시속에서“아프리카를다녀온지서른해”라는물리적시간은의미가없다.화자가수석을바라보는순간,30년전의아프리카와현재의탁자를둘러싼공간은‘지속’안에서하나로합쳐진다.시인에게‘수석’은단순히돌덩이가아니라코끼리의심장에박힌뼈이자아프리카의기억을불러오는매개체로서의통로다.아프리카에서의경험은사라지지않고수석을응시하는현재안에수석과더불어생생하게살아숨쉰다.
-신상조(문학평론가)



[시인의산문]

일주일에두번나는양주에간다.작년까지묵정밭이었던것을개간하여,올해부터는사과나무,대추나무,앵두나무,보리수나무,감나무등을심었다.밭의울타리를가시달린두릅나무와엄개나무로둘러세워놓았는데도불구하고고라니는제집처럼드나들며새순을뜯어먹는다.고라니는그렇게봄날의안부를전하고있는것이다.밭을경작하는일이꼭시쓰는일과같다.나는여전히나무를모르고,시를모른다.모르니까이김새는일에나는몰두하고싶은것이다.양주에가면움직이는구름,물소리,풀벌레,호젓한바위가내적풍경이된다.경작이라는말은나에게기쁨을준다.정신적으로아름답도록나를가꿔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