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애인들은 맨날 과거형 (석민재 시집)

친애하는 나의 애인들은 맨날 과거형 (석민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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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랑에 대한 반성과 사랑에 대한 헌신
2015년 《시와사상》 신인상, 201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석민재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친애하는 나의 애인들은 맨날 과거형』이 시인동네 시인선 278로 출간되었다. 석민재 시인은 이 시집에서 사랑의 실패를 말하면서도 사랑을 부정하지 않고, 상처를 말하면서도 상처에 머물지 않으며, 과거를 말하면서도 과거에 갇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인은 ‘사랑’이라는 과거의 감정을 늘 현재형으로써 사유하며, 나의 현실을 망가뜨리는 과거의 잔해가 아니라 나의 현재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감각의 층위로써 거듭 현재화한다. 그렇게 과거형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항시적인 현재화의 발화 속에서, 사랑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안에서 함께 머문다. 그 늦은 앎의 자리에서 석민재의 시는 사랑을 다시 쓺으로써 지나간 우리의 감정에 또 다른 숨을 불어넣는다.
저자

석민재

부산에서태어나경남하동에서성장했다.2015년《시와사상》신인상,2017년《세계일보》신춘문예로등단했다.시집으로『엄마는나를또낳았다』『그래,라일락』,공동시집『시골시인K』,산문집『어쭈구리야구단』이있다.

목차

제1부
십리는길고ㆍ13/두양리은행나무ㆍ14/추위를옷소매에붙이고ㆍ16/숭어가있었대ㆍ18/해의기분ㆍ20/개나리가피었는데개나리를못보고ㆍ22/그믐ㆍ23/명일미용실ㆍ24/북천역에서ㆍ26/신촌입구ㆍ29/귀뚜라미와귀뚜라미ㆍ30/끝물의은유ㆍ32/우수(雨水)ㆍ34

제2부
아멜리에ㆍ37/월운ㆍ38/민다리ㆍ40/평당ㆍ45/미나양장점ㆍ46/전어는며느리를싫어하고ㆍ48/발꾸미발꾸미ㆍ50/서촌구석몰길ㆍ52/이명산약수ㆍ54/생선말리기ㆍ56/생활이라는나무ㆍ58/목련의바깥ㆍ60/벅수ㆍ62

제3부
불가촉ㆍ65/지구를한번에번쩍닦고싶어요ㆍ66/궁상각치우ㆍ68/율원ㆍ69/오늘의언박싱ㆍ70/갑을병정ㆍ72/아무ㆍ74/오이디푸스ㆍ75/해바라기ㆍ78/대서(大暑)ㆍ79/모태ㆍ80/시계가젖었다ㆍ82/저녁의중심ㆍ84

제4부
수련이흔들리고ㆍ87/겹ㆍ88/편의점은많고ㆍ90/바람찬날에꽃이여꽃이여ㆍ92/십리사탕ㆍ94/불일폭포앞에서ㆍ96/노량ㆍ98/이집왜이래ㆍ100/비키스ㆍ102/윤달ㆍ104/사북의비ㆍ106/문화동블루스ㆍ108/소만(小滿)ㆍ110/미역한봉지ㆍ112

해설임지훈(문학평론가)ㆍ113

출판사 서평

지나간뒤에야비로소선명해지는것들이있다.감정도마찬가지다.차마이름붙일수없었던감정들도시간이지나고나면비로소제이름을갖게된다.사랑또한그렇다.어쩌면사랑은현재의충만한감정을통해서가아니라지나가버린뒤에야비로소제얼굴을드러내는감정인지도모른다.사랑의순간에는볼수없었던것들,너무가깝기에오히려흐릿하게만느껴지던감정과인식들은회고속에서비로소제모습을드러낸다.
그렇기에사랑에대한시는늘알맞은시간대로부터살짝비켜선자리에놓여있다.시간이지날수록흐릿해지는것이아니라외려선명해지는것이‘사랑’의감각이기에,사랑에대한시는늘그렇게살짝늦은시간에도착하고마는것이다.사랑에대한시가찬란한시간에대한역사이면서쓸쓸하고지난했던시간을그리는작업이되기도하는것도같은이유가아닐까싶다.그런의미에서사랑에대한시란시간이흘러비로소제모양을갖게된기억과감정들에언어라는몸피를씌우는일이라할수있다.
지금우리가마주한석민재의작품또한그렇다.과거가되어버린시간속에놓인‘사랑’에알맞은언어라는몸피를씌우는일.어떤의미에서이는시의본령에대한충실성이라고도말할수있을것이다.‘친애하는나의애인들’이라는표현처럼,그의시에서화제가되는것들은현재가아닌지나간시간의조각들이다.과거가되었기에오히려더선명해진감각으로,그는자신이사랑한것과놓친것,견딜수없었던것들에대해쓴다.바로그뒤늦은앎의자리가석민재의시가출발하는지점이다.이시집에서사랑의첫얼굴은봄과벚꽃의이미지로나타난다.하지만그것은밝고환한봄이아니다.「십리는길고」에서화자는이렇게말하고있다.

봄은언제나반쯤은가짜라는걸
벚꽃보다상처가먼저였다는걸
아무도몰랐던거야
벚꽃밟는소리로울고부서지는소리로피고
어떤사랑은너무예뻐서계절을망치지
기다리던날에비를부르는말이지
입맞추기직전에돌아서는뒷모습이지
말하지않아도될말을끝내던져버리는
벚꽃은순간인데십리는길고
사랑은언제나빨리끝나고
벚꽃이피어서봄이도망치나봐
여름은사랑의마감일을넘긴채기억을되씹다가
혀끝이쓰고
낙엽은사실벚꽃의후회라는것도모르고
벚꽃보다더슬픈눈이내려도
다시걸어도십리는여전히그자리에있고
넌참끝까지아름답구나
넌참끝까지아름답구나
-「십리는길고」전문

이시에서봄은사랑의시작을알리는계절이지만,그에앞서“벚꽃보다상처가먼저였다는걸”이라말한다.이는시집의핵심적인주제의식으로,우리의생각과달리‘사랑’이란순수히아름다운감정일수만은없다는사실을밝히고있다.사랑은늘상처와함께하며,때로사랑보다상처가우리에게먼저도착하기도하는것이다.어쩌면사랑이피어나는것은바로그상처위인지도모른다.다만사랑하는동안에는그사실을모른다.벚꽃이피었기때문에봄이라고믿고,설렘이있었기때문에사랑이라믿을따름이다.이시에서도화자는그와같은사랑의진실을시간이지나고서야알게된것으로보인다.벚꽃이피기전부터‘나’의계절은이미무수한잔금으로채워져있었으며,그안에는이별의그림자또한늘함께였다는사실.사랑에취해있는동안은알수없는사실들이다.
그가“어떤사랑은너무예뻐서계절을망치지”라고말하는까닭또한이러한뒤늦은앎의문제와무관하지않아보인다.사랑에취해있는동안,계절은그자체로서가아닌사랑의관점을통해다시채색된다.그렇기에우리기억속에서하나의대상이나사물또한그자체로서남는것이아니라,그것을인식했던순간의감정과감각으로채색되어남는다.그기억속에서벚꽃은벚꽃이지만더이상벚꽃만이아닌것이다.어떤표정,어떤말,어떤기다림,어떤돌아섬과함께기억되는것,그것이바로기억속의사물들의모습인셈이다.그렇기에사랑은세계를아름답게만드는동시에,그아름다움때문에세계를견딜수없게만들기도한다.사랑이끝난뒤에도계절은계속돌아오지만,한번사랑의빛으로물든계절은이전과같은방식으로돌아오지않는다.벚꽃은다시피어나지만사랑은다시피어나지않기에아름다움은아픔이되고슬픔이되고야마는것이다.


반복되는생활의틈에서내가지나온슬픔과농담,체념과사랑이어떻게함께자라왔는지를붙들어본기록이다.나의언어는때로거칠고우스우며,때로는칼끝처럼서늘하다.그러나그끝에서끝내놓지못한것은사람에대한애틋한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