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 문학연구 5 (양장본 Hardcover)

임화 문학연구 5 (양장본 Hardcover)

$20.00
Description
『임화문학연구. 5』 는 2014년 10월 17일 창원대학교에서 열린 제7회 임화문학 심포지엄과 2015년 10월 24일 일본 동경의 무사시대학교에서 열린 제8회 심포지엄의 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7회 심포지엄인 《임화의 마산 시대》는 김재용(원광대), 이양숙(서울시립대), 유성호(한양대)의 발표 및 와타나베 나오키(무사시대)의 특별 강연과, 구모룡(한국해양대), 이선미(경남대), 허정(동아대)의 토론으로 꾸며졌다. 심포지엄 참가자들은 마산 시절 임화와 지하련의 삶을 재조명하고, 그들의 문학적 성취를 마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새롭게 평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저자

임화문학연구회

저자임화문학연구는

김재용:원광대교수
유성호:한양대교수
임규찬:성공회대교수
와다요시히로:히토쓰바시대교수
곽형덕:카이스트교수
염무웅:영남대명예교수
이양숙:서울시립대교수
와타나베나오키:무사시대교수

목차

책머리에

차이의인식을통한조선적근대의성찰?마산시절의임화
김재용

[현해탄]연작과비서구식민지의곤혹
김재용

권환과임화
유성호

임화(林和)와『문학의논리』?임화속의‘임화’가보여주는1930년대후반
임규찬

임화의/와역사주의
와다요시히로

1940,식민지조선문학의행방을둘러싸고?임화와김사량의문학관을중심으로
곽형덕

임화의해방전후?분단과정의내적구조
염무웅

해방직후소설에나타난지식인의감정구조?지하련의?도정?을중심으로
이양숙

이폴리트테느(Hippolyte-AdolpheTaine)와식민지문학?조선과대만에서수용비교
와타나베나오키

출판사 서평

두번의심포지엄과현장답사의성과물
『임화문학연구』5는2014년10월17일창원대학교에서열린제7회임화문학심포지엄과2015년10월24일일본동경의무사시대학교에서열린제8회심포지엄의성과를바탕으로만들어졌다.7회심포지엄인《임화의마산시대》는김재용(원광대),이양숙(서울시립대),유성호(한양대)의발표및와타나베나오키(무사시대)의특별강연과,구모룡(한국해양대),이선미(경남대),허정(동아대)의토론으로꾸며졌다.심포지엄참가자들은마산시절임화와지하련의삶을재조명하고,그들의문학적성취를마산지역의역사와문화를배경으로새롭게평가하는기회를가질수있었다.《임화와식민지조선의프롤레타리아문학》이라는주제의8회심포지엄에서는김재용(원광대),임규찬(성공회대),와타나베나오키(무사시대),염무웅(영남대),곽형덕(카이스트),와다요시히로(히토쓰바시대),손이레(미시간대)의발표와권성우(숙명여대),하타노세츠코(니가타현립대),신지영(히토쓰바시대),손유경(서울대)의활발한토론이이루어졌다.일본동경에서개최된이심포지엄에는한일양국의한국문학전공자들이대거참석하여그어느때보다도흥미진진하고심도있는논의를주고받았다.

임화의마산시절
임화의마산시절은1935년중반부터1937년말까지의시기이다.마산시절의임화는여러가지고통에시달려야했다.가장직접적인것은폐병과의싸움이다.1934년중반무렵에는평양으로가실비병원에입원하였다.1935년중반에는지하련의집이있던마산지역으로옮겨계속해서치료를받았다.1937년말무렵서울로올라오기전까지계속마산에머무르면서병마와싸워야했다.물론투병하면서도굴복하지않고계속하여시대의파도를헤쳐나갔던것이이무렵의임화였다.1934년이후임화는자본주의제3기론에입각한임박한혁명론에서벗어나장구한혁명론에기반을둔새로운사고를펼쳤다.
마산시절의임화에서가장중요한인식의진전은제국의발견이다.무산자시절이후자본주의제3기론에입각한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를신봉하였기때문에일본과조선과의차이에대해서는깊은관심을가지고있지않았다.일본의근대와조선의근대사이에는그경로상에서커다란차이가존재하기에일본의근대를표준으로조선을판단하고분석하는일은추상적이고관념적일수있다는점을깨닫게되었다.그동안일본의프롤레타리아와조선의프롤레타리아사이의공통점만을강조했지만이제그차이에대해서주목하게되었다.일본과조선의근대의차이에대한임화의성찰은마산시기의시와평론모두에서확인할수있다.

식민지조선의프롤레타리아문학
1934년부터1937년까지의약4년간은임화의문학여정에서독특한의미를갖는시기이다.1929년동경으로건너가무산자사활동을하면서부터임화는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를기반으로프로문학을펼쳤다.또한이무렵에는임박한혁명에기여하기위하여온갖실천들을숨가쁘게행하였다.하지만이러한것이무모한것임을알아차린것이바로1933년이후이다.
1934년무렵부터는이러한조급한전망대신에장구한혁명을준비하였다.또한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에입각한프로문학을견지하였지만더이상자본주의제3기론과같은것에매달리지않았다.더욱중요한것은이무렵에이르면일본과조선의차이,제국일본과식민지조선의차이에대해서눈을뜨기시작하였다는점이다.그동안일본의프롤레타리아와조선의프롤레타리아와의연대를강조하기위하여애써무시했던이러한차이들에대해서조심스럽게접근하면서그의미를부각시켰다.그과정에서조선적근대의천착에힘을쏟기시작하였다.이시절에쓴?현해탄?연작은바로이러한임화의자기성찰에서가능할수있었던작품이라할수있다.
1938년이후임화는이러한입장과도결별한다.프로문학은모험이었다는그의유명한진술은그이전시기의자신의문학적행로에대한갱신이었다.

마산과동경에서개최되었던두번의심포지엄과현장답사는임화와지하련이남긴‘(죽은)문자’가아닌‘(살아있는)숨결’을더듬는시간이기도했다.이들이밥짓고이불덮고병을앓고사랑하며글도썼을마산의집과동경의사무실터를둘러보면서,임화문학연구회운영위원과학회참가자들의가슴은감동으로벅차올랐다.이번에출간된『임화문학연구』5는그런점에서또하나의아름다운기록으로남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