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랭드 플랑시 문서철에 새겨진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 (모리스 쿠랑 평전과 서한자료집 | 양장본 Hardcover)

콜랭드 플랑시 문서철에 새겨진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 (모리스 쿠랑 평전과 서한자료집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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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동양학의 선구자 모리스 쿠랑, 평전과 서한자료집 『콜랭드 플랑시 문서철에 새겨진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 ‘한국학의 선구자’ 모리스 쿠랑의 초상. 전 세계 동양학자들이 선구자로 받드는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 1865~1935)은 한국에서도 《직지심체요절》 을 유럽에 처음 알린 《한국서지》 의 저자로, 또 한국도서의 존재를 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이자 한국학을 개척한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다. 《콜랭 드 플랑시 문서철》 에 새겨진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 에서는 동양학의 선구자이자 한국학의 선구자, 모리스 쿠랑의 평전과 모리스 쿠랑의 서한을 수록하여 외교관, 한국학 전문가, 유럽 동양학자였던 그의 세 가지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저자

부산대학교인문학연구소

저자부산대학교인문학연구소는
다니엘부셰(DanielBouchez)전프랑스국립과학연구원한국학연구부장
노미숙(盧美叔,No,Mi-Sug)콜레주드프랑스한국학연구소IGE-AS연구원
신상필(申相弼,Shin,Sang-Phil)부산대학교점필재연구소HK교수
이상현(李祥賢,Lee,Sang-Hyun)부산대학교인문학연구소HK교수
이은령(李恩?,Lee,Eun-Ryung)부산대학교불어불문학과교수
전수연(全壽蓮,Chun,Soo-Yun)연세대학교사학과교수
하상복(河相福,Ha,Sang-Bok)부산대학교인문학연구소HK교수

목차

발간사_김인택
발간사_정출헌
발간사_알랭들리센(AlainDelissen)

제1부모리스쿠랑평전?다니엘부셰DanielBouchez|전수연옮김
잊혀진동양학자,모리스쿠랑
한중일동양순회와『한국서지』
1)쿠랑과파리동양어학교
2)한국주재프랑스공사,콜랭드플랑시
3)한국인조력자들과뮈텔주교
4)『한국서지』의공동저자
5)『한국서지』의학술사적의의
6)쿠랑의미출간명저,『한국관직역대총람』(1882)
7)한국복귀의소망과『한국서지』의출판
전문적학자의길과한국학저술
1)전문적학문연구의길
2)파리국립도서관의중국서목작업
3)『한국서지』의출판과그반향
4)한국학을향한소망과한국학저술들
5)파리동양어학교취직의좌절
리옹대학중국어과교수임용과동양학저술
1)리옹‘중국어강좌’개설의움직임
2)리옹지역정착과리옹대학의중국학강좌
3)쿠랑의학문적역량과그의동양학저술
4)한국학논저들그리고유럽과극동의관계
5)국가박사학위논문
6)리옹대학교수임용과불운의사고
리옹대학교수로서의족적과리옹중법대학[里昴中法大學]
1)일본내프랑스대학건립시도,마지막한국방문,가정문제
2)리옹중법대학건립과리스청[李石曾],차이위안페이[蔡元培]
3)리옹중법대학건립의재정문제와리스청의제안
4)쿠랑의반대안과중국-프랑스의협상과정
5)중국인근로학생입학거부사건
6)리옹중법대학의운영과쿠랑의역할
유럽최초의‘한국사강의’와이루지못한동양학자의꿈

제2부모리스쿠랑서한문
|해제|모리스쿠랑의서한과한국학자의세가지초상
1.프랑스외무부문서고에잠들어있던젊은한국학자의영혼
2.한국고전의새로운문화생태와젊은‘외교관’의초상?한국,서울에서보낸편지(1891.7.3~1892.2.25)
1)자료개괄
2)주한프랑스공사관과젊은외교관의초상
3)한국도서의수집과조사
4)『한국서지』의집필현황및출간계획
3.『한국서지』의출간과‘한국학전문가’의탄생?중국,일본,프랑스에서보낸편지(1892.6.1~1899.12.18)
1)자료개괄
2)『한국서지』의출간과정과재외의동양학학술네트워크
3)한국문명의가능성과한국의외교적현실
4)『한국서지』의완간과한국학연구를향한염원
4.미완의한국학기획과‘유럽동양학자’의초상?프랑스리옹에서보낸편지(1902.7.14~1921.4.24)
1)자료개괄
2)유럽동양학자의초상과한국
3)동양을보는수평적시선
4)미완의한국학저술기획서와한국의고전세계
5.쿠랑의유물에새겨진근대초기한국학자의세가지초상
|자료|빅토르콜랭드플랑시에게보낸모리스쿠랑의서한문
1.한국,서울에서(1891.7.3~1892.2.25)
1891년7월3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1년7월16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1년8월14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1년8월27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1년9월9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1년10월10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1년11월6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1년12월17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1년12월24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2년1월21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2년2월25일,서울콜랭드플랑시공사님
2.중국,일본그리고프랑스에서(1892.6.1~1899.12.19)
1892년6월1일,베이징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3년9월14일,라크루아(LaCroix)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4년3월23일,도쿄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4년7월10일,도쿄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5년8월2일,톈진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7년2월5일,데보르드발모르38번가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7년4월9일,파리데보르드발모르38번가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7년9월20일,라크루아-생-알방성(사부아)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8년6월26일,샹티이방면(우아즈),비뇌이에서콜랭드플랑시공사님
1899년12월18일,샹티이방면(우아즈),비뇌이에서콜랭드플랑시공사님
3.프랑스,리옹에서(1902.7.14~1921.4.24)
1902년7월14일,에퀼리(론)콜랭드플랑시공사님
1903년3월1일,에퀼리(론)콜랭드플랑시공사님
1903년7월17일,에퀼리(론)콜랭드플랑시공사님
1909년2월4일,에퀼리,샹슬리에3번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909년4월20일,에퀼리,샹슬리에3번길콜랭드플랑시공사님
1909년12월28일,에퀼리,샹슬리에3번길(론)
1909년12월29일,에퀼리,샹슬리에3번길(론)콜랭드플랑시전권대사님
1918년4월27일,에퀼리친애하는벗,전권대사님께
1919년1월7일,에퀼리,샹슬리에3번길(론)친애하는벗,전권대사님
1920년2월4일,에퀼리,그랑보길전권대사님
1921년1월5일,리옹,문과대학
1921년4월24일,에퀼리,샹슬리에3번길(론)친애하는벗,전권대사님
4.계획표

참고문헌
1.자료
2.논저
3.초출문헌

출판사 서평

동양학의선구자모리스쿠랑,평전과서한자료집

‘한국학의선구자’모리스쿠랑의초상

전세계동양학자들이선구자로받드는모리스쿠랑(MauriceCourant,1865~1935)은한국에서도『직지심체요절』을유럽에처음알린『한국서지』의저자로,또한국도서의존재를세계에널리알린인물이자한국학을개척한선구자로기억되고있다.

『콜랭드플랑시문서철』에새겨진젊은한국학자의영혼』에서는동양학의선구자이자한국학의선구자,모리스쿠랑의평전과모리스쿠랑의서한을수록하여외교관,한국학전문가,유럽동양학자였던그의세가지초상을그려내고있다.

먼저제1부에서는모리스쿠랑을‘한국학의선구자’로인식하고그의한국학저술을살피게된가장큰계기로쿠랑을잇는또다른재외의한국학자,다니엘부셰교수의‘모리스쿠랑평전’을수록하고있다.다니엘부셰교수는그가주목하기전까지한국과프랑스양측에묻혀있던모리스쿠랑이란존재를발굴했으며모리스쿠랑의초상을‘한국학의선구자’로재조명하고그의한국학논저를집성하여학계에널리알린가장큰공헌자이다.

다니엘부셰교수의‘모리스쿠랑평전’은쿠랑관련신자료의발굴과쿠랑의한국학저술전반에대한면밀한엄선및실증적고찰을통해작성된중요한학술적인연구성과이며,30여년지난오늘날의눈으로보아도여전히유효한훌륭한수작이다.즉,부셰교수는쿠랑이남긴『한국서지』를비롯한그의한국학전반이지닌공과를엄정한시선에서평가했다.또한모리스쿠랑의평전에서는쿠랑이출판한주요중국?일본연구와그가리옹에서35년간담당했던강의도취급하고있다.더욱이참고로제시한자료는불중?불일관계에관해현재까지거의연구되지않았던몇가지외교문제를명확히해주고있다.1919년쿠랑의도쿄파견이그한예이며,특히리옹중법대학[里昴中法大學,Institutfranco-chinoisdeLyon]의창립과운영에그가담당한역할은중국사학자들의관심을끌만한문제이다.이처럼다니엘부셰교수의‘모리스쿠랑평전’은오늘날쿠랑의한국학저술을검토할때반드시참고해야될큰영향력과비중을지닌선행연구이다.

다니엘부셰가남긴평전은또한한편의학술적논문으로전달되지않는매력적인힘을동시에지니고있다.그것은무엇보다『한국서지』를비롯한그의한국학저술로는잘포착되지않는다양한그의초상들과삶의노정이그려져살아있는듯생생하게묘사된모리스쿠랑의초상이다.

다니엘부셰의모리스쿠랑의평전에서,독자는자연스럽게모리스쿠랑의한국문명에대한사랑과그로인해결코녹녹하지않았던한국학자로서의삶을대면하게되며,그를외국인이아니라우리가상속하고갚아야할부채를전해준한사람의한국학자로재인식하게된다.

프랑스외무부문서고에잠들어있던
젊은한국학자의영혼

이렇듯부셰교수가쿠랑의초상을복원할수있었던큰원동력은오늘날까지도여전히검토되지않은쿠랑이남겨놓은유물때문이었다.이유물은부셰교수에게큰영감을제공해준자료로,쿠랑이주한프랑스공사플랑시에게보낸서한문이다.이자료는부셰교수의발굴이후에도프랑스파리외무부문서고에여전히잠들어있었다.

2013년이자료를입수한부산대학교인문학연구소?점필재연구소는프랑스외무부문서고에소장된모리스쿠랑이콜랭드플랑시에게보낸육필서한33종을콜레주드프랑스한국학연구소와공동작업을통해,재구[입력및전자화]및번역작업을마무리하여그결과물을이책『『콜랭드플랑시문서절』에새겨진젊은한국학자의영혼』에담았다.

쿠랑의서한속에는1905년을사늑약즉,대한제국멸망이전까지한국학연구와논저집필을간절히염원했던젊은한국학자의영혼이보존되어있다.이는『한국서지』만으로는발견할수없는쿠랑의초상이며,더불어『한국서지』를통해(재)발견해야할쿠랑의초상나아가한국고전의가능성이기도하다.쿠랑의서한문에담긴그의초상은한국학이제도적이며학술적으로부재했던시대의‘한국학자의초상’이며동시에우리가한국의근대학술사안에끌어안아야할‘젊은한국학자의영혼’인것이다.